에베레스트의 산간마을 바송춘의 새벽은 찬바람이 살 속을 스민다. 은하수가 설산의 봉우리들을 마치 오작교를 이어 놓은 것 같이 히말라야의 하늘을 가득 채운다. 고요한 밤하늘의 별들이 손에 잡힐 듯 크고 가까워 보이니 설산은 더욱 강하고 신비롭고 가깝게 느껴진다.

초모랑마의 일출을 보기 위해 바송춘의 숙소 앞에서 우리가 타고 갈 소형 버스를 기다린다. 초모랑마 국립공원 안에서는 환경 보호와 국경 통제를 위해 개인 차량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이동하는 행동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에서 제공하는 환경 차를 이용하여 지정된 장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약간 늦게 도착한 버스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검문소가 나오는데 공안이 차 안으로 들어와 손전등으로 여권을 보면서 일일이 얼굴을 확인한다.
차는 깊은 협곡의 심연 속으로 빨리듯 들어간다. 만년설이 녹아 하얀 우윳빛과 푸른빛의 물이 실개천을 따라 흐르고, 산은 온통 적갈색과 황갈색이다. 빙하수가 흘러가는 실개천에서 자라는 파란 풀과 키 작은 나무들을 보니 생명의 끈질김과 신비로움에 경외감을 느낀다. 온통 바위와 돌, 그리고 흐르는 물과 설산뿐인 황량한 풍광을 보고 더할 수 없이 희열의 감정이 용솟음치니 나는 원초적 인간임이 분명하다.

협곡을 지나자 나타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산 지대의 거친 평원에는 이끼가 파란 풀처럼 펼쳐져 있고, 흐린 날씨에 사람이 날아갈 정도의 강풍이 분다. 구름은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높이에 떠 있어 금방 땅에 닿을 것만 같다. 더 이상 차량 진입이 허용되지 않는 종점에서 모두 내려서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한다. 아직 여명이 걷히지 않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EBC) 텐트촌 뒤로 중국 오성기가 걸린 공안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EBC는 가을부터 눈이 내리고 쌓여 얼어붙는 동토의 땅이 되어 텐트촌을 운영하는 원주민들이 철수하기 때문에 날이 풀리는 봄이 될 때까지 텐트촌 영업은 중지된다고 한다.

고도는 계속 높아지고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 지지만 주위의 6천 또는 7천 m 이상 되는 설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에 순간의 풍광을 만끽하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텐트촌을 지나 계곡 안으로 들어가니 돌담 너머로 지붕이 없는 집들과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 보인다. 해발 5천 m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야크 떼와 양 떼 목축을 하며 살았다니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조금 있으면 '대지의 여신이 나타나겠지.' 하는 기대감 때문으로 발걸음이 빨라지자, 호흡은 가빠진다. 가도 가도 눈앞에는 히말라야 연봉들만 보일 뿐 우뚝하니 하늘을 꿰뚫는 초모랑마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골짜기 안으로 쭉 들어가니 멀리서 정말 높은 산 하나가 삐쭉 튀어나와 있다. 바로 대지의 어머니, '초모랑마'다.

바위 턱에 앉아 끊임없이 바뀌어 나타나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정상의 산봉을 조망한다. 마치 내가 세상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네팔 쪽 EBC에서 바라본 남쪽 전경과는 전혀 다른 티베트 쪽 에베레스트의 북면 전경은 순백의 수직 절벽으로 이루어져 그야말로 장관이다. 정상에 쌓인 눈이 바람에 흩날리면서 구름처럼 하늘을 수놓고 있는 전경은 그저 황홀할 뿐이다. 에베레스트는 순간적으로 휘몰아치는 구름 사이로 숨어버린다.

이제 하늘을 찌를 듯한 에베레스트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평생 살아가면서 몇 번 가질까 말까 하는 환희와 경외심이 솟구치는 순간이다. 초모랑마 정상은 '신이 허락해야' 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1년 중 10~20일 정도만 맑게 개고, 그 외는 흐린 날씨라고 하는데 오늘 성산의 온전한 모습을 본 우리들은 정말 축복받은 존재들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경치가 시시각각 변한다. 무언가 홀린 듯 계곡으로 들어간다. 산소가 평지의 3분의 1 수준이라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고 호흡은 거칠어지고 몸도 불이 나듯이 타오른다. 티베트어와 중국어로 표기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 표지석에 도착하니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고 어두운 흑갈색의 흙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옥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너무 황량하고 쓸쓸하다. 멀리 우뚝 솟아 위용을 뽐내는 높은 설산만이 고고할 뿐이다.

초모랑마의 하늘은 너무 푸르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정이 눈앞에 장엄하게 드러나니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거세게 밀려온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표지석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인증샷 찍기에 여념이 없고,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젊은 친구들도 보인다.

중국 국기가 그려진 마지막 표지석 앞에 서서 초모랑마의 여신에게 경배를 드리고 한참을 머무른다. 주봉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쭉쭉 뻗어 올라간 봉우리들이 마치 나한상처럼 주봉을 감싸고 있고, 산자락에는 비단 띠처럼 휘돌아져 흐르는 푸른 개천 너머 바깥쪽 역시 기암절벽을 이룬 거벽의 산들이 정중동의 천군만마 떼처럼 금방이라도 지축을 흔들며 내달릴 기세다.

초모랑마를 오르는 좁고 험한 계곡의 상류에는 어김없이 빙하가 흘러내려와 개천을 이루고 빙하 너머로 찬란한 빛깔의 설벽과 시려운 바람까지 극렬한 자연을 보여준다. 바람을 타고 구름이 몰려온다. 나를 휘어 감고 구름이 저 발아래로 차고 내려간다. 계속되는 아름다움에 마냥 주저앉아 오래도록 쉬고 싶은 곳이다. 더 이상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차단기를 넘어서 계속 나아가고 싶지만 전신주에 설치된 CCTV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어 시간이 한참 후에 발걸음을 돌린다. 내려가다가 몇 번이나 초모랑마를 돌아본다. 아까는 위엄과 위용이 하늘을 찌를 듯했는데 이제는 자애 넘치는 부모처럼 애잔하고 애틋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하산 길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5,154m)에 있는 닝마파 소속의 룽부스사원(绒布寺)에 들린다. 본래의 사원은 이곳에서 3km 정도 더 들어간 곳에 있었는데, 1902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사원 입구에 높이 치솟은 하얀 스투파는 얼마 전 일어난 지진의 충격에도 잘 견뎌내고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치도록 배려해 주신 부처님께 감사의 예를 올리고 이곳에 상주하는 비구니스님들과도 따뜻한 눈빛으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사원 문을 나서니 문득 일곱 색깔 무지개가 스쳐 지나간다. 이게 업장이 소멸하는 것일까. 고개를 들어보니 룽부스사원 산 위에 숱한 업장을 덮고 있는 타르쵸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내려오면서 라싸에서 초모랑마로 가면서 경험했던 범상치 않았던 일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우연은 지나가는 바람이지만, 인연은 머무는 별빛이다.′ 그래서 인연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찾아오며,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내 안의 빛과 같은 존재다.
이번 여름이 가기 전, 낯선 길 위에서 동고동락했던 인연들과 계곡 물놀이를 가서 여행 내내 온몸을 달구었던 고산병의 열기를 씻어낼 요량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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