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 휘하 전라좌수군은 5월 4일(이하 음력) 여수 전라좌수영에서 제1차 출전을 개시하였다. 전라좌수군은 5월 4일 저녁 경상우도 소비포에서 밤을 지내고, 5월 6일에는 경상우수군과 합세한 뒤 거제도 송미포에서 밤을 보냈다. 그리고 5월 7일 옥포해전과 합포해전을 치렀으며, 5월 8일에는 적진포해전을 치렀다. 조선 수군의 제1차 출전 경과는 충무공 이순신의 장계 '옥포파왜병장 玉浦破倭兵壯'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옥포해전 직전 조선 수군이 이동한 경로에 대해 현재 학계에서는 소위 ‘남로설’과 ‘북로설’이라는 두 가지 설을 제시하고 있다. 옥포해전 직전 조선 수군이 거제도 남쪽 바다를 거쳐 옥포로 이동했다고 보는 것이 남로설이며, 이와 달리 조선 수군이 견내량을 넘어 거제도 북쪽 바다를 거쳐 옥포로 이동했다고 보는 것이 북로설이다.
2019년 열린 '제57회 거제옥포대첩 학술 세미나'에서 정진술 교수가 안방준(1573~1654년)의 문집 '은봉전서'에 수록된 '부산기사'의 내용을 근거로 남로설이 타당하다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부산기사는 지세포(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조라포(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 양암(거제시 능포동 양지암) 등 구체적인 지명까지 언급하며 옥포해전 직전 조선 수군의 경로를 서술하였기 때문에, 신빙성이 높은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거제문화원에서 2023년에 출간된 '거제 역사의 남겨진 이야기'에 수록된 '옥포해전 출전 경로와 송미포는 어디일까'라는 제목의 글도 여러 사료와 기존 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종합하여 남로설을 뒷받침하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펼쳤다. 앞에서 언급한 학술 세미나 발표 내용과 함께 '옥포해전 출전 경로와 송미포는 어디일까'는 남로설이 옳다는 것을 거의 확증하는 연구 자료이다.
2024년 역사문화학회에서 출간된 '지방사와 지방문화' 27-2에는 '증병조참판정공전의 임진왜란 초기해전 기록 고찰'이라는 논문이 수록되었는데, 남로설과 관련하여 그동안 학자들이 간과해온 바를 지적하는 내용이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해당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옥포해전 출전 경로와 송미포는 어디일까'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지만 논문의 설명이 조금 더 자세하다. 다음은 옥포파왜병장에 서술된 옥포해전 직전 기록이다.
이순신 장계「옥포파왜병장」
"7일 꼭두새벽 한꺼번에 배를 출발하여 적선들이 정박해 있는 천성, 가덕을 향해 가다가 오시경(11~1시) 옥포 앞바다에 이르러 척후장 사도첨사 김완, 여도권관 김인영 등이 신기전을 쏘아 변보를 알리므로 적선이 있음을 알고 다시 여러 장수에게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산처럼 신중하도록 엄히 전령한 다음 …"
옥포파왜병장에 따르면 조선 수군은 옥포해전 직전 천성·가덕을 향해 이동하다가 옥포 앞바다에 이르러 옥포에 적선이 정박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성과 가덕은 각각 지금의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에 있던 경상우수영 소속 진포인 천성진과 가덕진을 말한다. 옥포파왜병장에 언급된 당시 조선 수군의 이동 경로와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조선 수군이 옥포에 적이 있다는 정보를 접한 뒤 옥포 앞바다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천성과 가덕을 향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옥포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적이 옥포에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만일 북로설 경로를 따라 거제도 북쪽 바다를 거쳐 천성과 가덕으로 이동하면, 그 과정에서는 옥포 앞바다가 나오지 않는다. 거제도 최북단에서 옥포까지는 직선거리로 15km가 넘는 상당히 먼 거리이며, 임진왜란 시기 거제도 북쪽 바다 주변에는 영등포·제포·안골포·율포 등과 같은 경상우수영의 주요 진포가 여럿 포진되어 있었다. 북로설의 경로를 따라 나아가면, 그 과정에서 영등포 앞바다나 제포 앞바다 등은 나와도 옥포 앞바다는 나오지 않는다. 즉, 북로설은 옥포파왜병장의 기록과 맞지 않는 설이다. 이에 비해 남로설 경로를 따라 거제도 남쪽 바다를 거쳐 천성과 가덕으로 이동하면, 그 과정에서 옥포 앞바다가 나온다.
아래 그림은 거제도 일대를 보여주는 현대 지도에 조선시대 주요 진포와 북로설·남로설 경로를 표시한 것이다. 이 그림에 표시된 북로설·남로설 경로를 따라가보면 지금까지 설명한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결론을 알고 나면 특별한 것이 없지만,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옥포파왜병장 기록을 간과하여 남로설과 북로설의 논란이 계속 이어져 왔다. 필자의 추정이지만 임진왜란 초기 연구자인 이은상, 최석남, 이형석, 조성도와 같은 분들은 옥포파왜병장의 기록에 나타난 조선 수군의 이동 경로를 쉽게 이해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설명할 필요조차 못 느꼈던 것 같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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