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1973- ) 작가는 경기 수원 출신으로 청주대학교 철학과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승옥 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많은 따뜻하며 독자들을 보유한 작가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단편 11편이 수록되어 있는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의 첫 번째 소설로 권고 퇴직당한 50대 여성이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이 살아온 삶의 주변을 둘러보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이병자’는 적금 만기 몇 달을 앞두고 오래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을 하게 된다. 퇴직을 하던 날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아픈 사람을 의미하는 ‘병자’라는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50이 넘어 회사에 미련은 없었지만, 적금 만기만 되면 스스로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녀에게 평생 여행은 없었다. 한 번은 출장을 겸한 두 번의 제주도 여행이 유일한 여행 경험이었지만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모든 세상이 TV를 통해 다 나왔다. 소파에 누워 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여행이었다. 퇴직 후 주인공은 세계 여행을 다니는 것이 목표였지만 그녀에게 아무도 퇴직 이후의 계획을 묻지 않았고 그 흔한 축하 꽃다발도 없다.
오 남매 중 막내인 그녀의 나이 열아홉 때 아버지가 목을 매 자살하고, 오빠들은 집을 떠났다. 큰오빠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둘째 오빠는 그럭저럭 국숫집을 하며 살고 있다. 셋째 오빠는 교도소에 있고 넷째 오빠는 병으로 죽었다. 결국 엄마와 단둘이 남았을 때 그녀는 학교 선생님의 주선으로 중학교 행정사무실에 다니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고향을 떠나 제법 큰 학교로 이직을 했다.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기 위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다. 주인공과 배우들의 이름을 적는다. 그녀는 듣기만 해도 청춘 같은 이름, 듣기만 해도 운이 좋을 것 같은 이름, 그런 이름이 아니라 듣기만 해도 달리기를 잘할 것 같은 이름을 갖고 싶었다. 열 개의 이름을 후보로 적어 냉장고에 포스트잇으로 붙여 놓고 달리기를 잘할 것 같은 이름은 끝까지 붙어 있을 것이라고 떨어지는 포스트잇을 이름 후보에서 제외하기 위해 문을 세게 닫는다. 그러든 중 서서히 여름이 다가온다. 아파트 장에 다녀온 후 냉장고에 붙어 있는 ‘지원’과 ‘진명’이라는 두 개의 이름 포스트잇을 향해 바람을 세게 불어 ‘진명’이 떨어지고 그녀는 이름을 지원이라고 정하기로 한다.
그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오는데 ‘박우석’이었다. 예전에 사귀다가 아버지처럼 중간에 말을 끊지 않는 남자라고 엄마에게 소개해 준 남자, 박우식의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막내 며느리로 구김살이 없는 여자를 얻고 싶다고 했고 박우석은 집을 나오는 주인공을 따라 나오지 않았다. 그를 잠시 카페에서 만난다. 그의 아내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죽었고 그는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에게서 계속 연락이 오지만 그녀는 그를 만나지 않는다.
아파트 앞 분수대에서 아이 하나가 강아지와 함께 세게 나왔다 약하게 나왔다 하는 분수를 피해 놀고 있다. 그녀는 분수대로 달려가 들어간다. 아이와 대화한다. 아이는 방학이라 할머니 집에 놀러 온 것이라며 아빠랑 둘이 산단다. 방학을 시작하면 할머니에게 오고 끝나면 아빠에게 간단다. 물이 나오는 시간이 끝났는지 분수가 멈춘다. 그녀는 비가 오지 않는데 옷이 젖은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것만 같다. 그러나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여름방학을 누구나 물놀이를 하는 법이니까.
여기 인생의 거친 파고를 넘어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50을 넘게 살아온 여자의 삶이 있다. 그녀는 아픈 가정사와 가족관계를 겪고 사랑에도 실패했지만, 자신의 삶을 위해 성실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병자’라는 이름이 아픈 사람을 떠올리는 이름이었지만 그녀는 앞으로의 삶은 건강하게 재미있게 살려고 한다. 퇴직 후 처음 만난 여름을 여름방학으로 마주하는 순간이다. 주인공은 말한다.
늘 설레고 기다려지는 그 여름방학이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노년을 앞둔 중년에게도 있다는 것, 앞으로 자신 앞에 펼쳐질 물놀이, 영화 보기, 박물관 가기, 체험학습, 물고기 잡기 등 그 뜨겁고 황홀한 여름을 기대하라고 말이다.
[민병식]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시인
현) 한국시산책문인협회 회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뉴스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2 전국 김삼의당 공모대전 시 부문 장원
2024 제2회 아주경제 보훈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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