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줄스

최민

따뜻한 이야기는 따뜻한 가슴을 갖게 한다. 폭력, 패륜, 전쟁 등 지구에서 흥행하는 이야기들은 너무 자극적이다 못해 폭력을 조장한다.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자신도 모르게 성인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시한부 같은 것이다. 매일 지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봐도 존속살인인 흔한 일이고 마약으로 도시 전체가 죽어간다는 보도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여기서 전쟁이 터지면 도미노처럼 저기서 또 전쟁이 터진다. 학교폭력으로 연예인 누구는 나락 가고 물난리 불난리는 왜 이렇게 자주 나는지, 지금 지구는 병들어 있는 게 맞다. 

 

그런데 가끔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으로 톡톡톡 내리는 단비는 금세 땅으로 스며들고 그 땅에 박제되어 있던 동물들에게 생명을 준다. 그런 생명의 비 같은 이야기가 바로 영화 ‘줄스’다. 그냥 따뜻하다. 큰 감동도 없고 반전도 없지만, 메말랐던 마음속에 잔잔하게 스며든다. 쓸쓸하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하고 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 참신한 영화 ‘줄스’는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다. 우리가 생각하는 외계인은 줄스가 아니다. 지구 밖에서 오는 존재라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고정관념에 찬물을 확 끼얹고 있다. 

 

줄스는 귀엽다. 아이처럼 키도 작고 표정이 없다. 외계에서 왔으니, 말이 통할 리 없지만 꾹 담은 입술은 마치 토라진 아이처럼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영화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발휘해서 지구인들을 몰살시키거나 개조하거나 노예로 삼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 버렸는데 줄스는 그런 우리의 상상을 깨부순다. 외계인이 주인공 뒷마당에 불시착했는데 오히려 소외되고 고독한 노인들에게 동화 같은 판타지를 선사해 준다.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성 회복과 인류애를 가득 충전할 수 있다. ‘줄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미국 시골 마을에 은퇴한 노인 밀턴은 홀로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밀턴은 홀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무관심한 사회와 가족과의 관계 단절로 초기 치매 증상까지 겪으며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가족이 있지만 떨어져 살고 있는 딸은 그저 의무적으로 얼굴만 비친다. 이웃과도 별다른 소통 없이 자신의 집에 갇혀 고독과 외로움을 친구삼아 하루하루 살아간다. 밀턴에게 하루하루는 단조롭기 짝이 없는 고독 그 자체였다. 말할 상대도 없이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거나 무의미한 생활루틴을 반복하면서 삶의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밀턴의 뒷마당에 UFO가 추락하게 되고 외계인이 나와서 추락한 UFO를 고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밀턴은 그 외계인이 안쓰러워서 집으로 데려와 돌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이웃에 사는 노인 샌디에게 들키게 되고 또 다른 이웃 조이스에게도 들키게 된다. 세 노인은 이 외계인에게 ‘줄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다. 밀턴과 이웃 노인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픔을 나누며 진정한 대화를 하게 된다. 연약해 보이는 외계인 생명체 줄스를 돌보면서 함께 노래 부르고 과거의 상처와 꿈을 추억하면서 점차 삶의 의욕을 되찾게 된다. 

 

줄스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저 조용하게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뽐내며 위로를 준다. 조이스는 줄스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의 꿈과 사랑을 털어놓으며 감정에서 해방하고 샌디는 다시 웃을 수 있는 자신에게 설렘을 느낀다. 세 노인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자연스럽게 치유하며 유대감을 형성해 나간다. 외계인 줄스를 중심으로 세 노인들은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서로를 진심으로 의지하고 돌보는 심리적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존재 자체가 가치가 있음을 인정받으면서 작은 사회와 연결되고 서로를 치유해 나간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변화가 이 세 노인에게 일어나게 된다. 외계인 줄스는 이 세 노인의 변화와 희망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줄스가 외계로 떠난 후 노인들은 각자의 삶에서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남은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생로병사 중에 늙음은 누구나 겪게 된다. 노년의 외로움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들다. 노인이 되어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되고 늙어도 희망이 있다는 걸 깨우쳐준다. 

 

외로움과 고독은 인간에게 숙제다. 노인이어서 특별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도 결국 인간에게서 치유 받는다. 외계인 줄스는 세 노인의 말을 ‘들어주는 존재’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존재를 인정받는 동물인지 모른다. 줄스는 마치 반려동물처럼 그저 옆에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안을 받는다. 우리는 외롭지 않기 위해 유튜브를 보고 데이트앱을 사용하고 티비를 본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동물이다.

 

줄스는 외계인인 ‘이방인’이지만 세 노인에게 환대받으며 가족 같은 존재가 된다. 사회적 소외계층이나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정말 중요한 것이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넘치지 않는 유머와 따뜻한 감정이 균형을 잃지 않고 섬세하게 엮어낸 영화다. 우리는 다 늙는다.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 영화는 미래의 내가 될 수도 있다. 노인천국이 된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노인의 외로움과 고독 사회적 냉대 등으로부터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밀턴은 외계인을 보며 말한다.

 

“미안해, 혼자 산 지 오래되어서”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5.08.26 10:11 수정 2025.08.26 11:07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오수를 즐기는 고양이들
익어가는 벼
생명
2025년 8월 22일
여름과 그림자
[Acoustic Remix] 어쿠스틱 리믹스로 완성된 명곡! #lose..
어쿠스틱 감성으로 재해석한 팝송!! 듣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플레이리스트..
이 노래 같이듣고싶은 사람 있어?..고백하고싶을때 노래 추천 1위
너가 들어주면 좋겠어..마음을 전하고 싶을때 들려주는 노래
2025년 8월 21일
햇살과 매미 소리
광복 80년 만에 졸업장 받는 독립운동가들 / KNN
사진 한 장 없는 독립투사의 마지막 한 마디 #광복절 #독립운동 #독립운..
[자유발언] 국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나팔꽃
차은우급 아기냥
한연자시니어크리에이터 건강기능식품 케이와이비타민 #마크강 #ai
새의 자유
가을하늘
백범의 길 백범 김구 찬양가 #애국의열단 #애국 #의열단 #독립운동가 ..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