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디카시의 이론적 한계와 상상력의 층위 (3)

신기용

Ⅳ. 상상력의 층위: 정동에서 문화적 코드화까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상상력을 공상(空想)과 다르다고 보았다. 감성과 지성의 중간쯤에서 지성에 이르는 통로를 여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상상력(구상력)이란 “직관의 다양을 하나의 형상(形象)으로 종합하”는 능력(A120), “대상이 직관 속에 현존하지 않더라도 이것을 표상하는 능력이”(B151)라고 했다. 상상력을 수동적인 ‘재생적 상상력’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 ‘산출적(생산적) 상상력’으로 구분했다. 특히 ‘산출적 상상력’을 ‘초월론적 상상력’이라고 봤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or Coleridge, 1772~1834)는 ‘일차적 상상력’과 ‘이차적 상상력’으로 구분했다. ‘콜리지의 상상력’의 ‘일차적 상상력’은 작가가 ‘보는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이므로 칸트의 ‘재생적 상상력’과 비슷하고, ‘이차적 상상력’은 ‘예술적 창조’라는 의미이므로 칸트의 ‘산출적 상상력’과 비슷하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Louis Pierre Bachelard, 1884~1962)는 “상상력이란 오히려 지각 작용에 의해 받아들이게 된 이미지들을 변형시키는 능력이며, 무엇보다도 애초의 이미지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이미지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또한, ‘재생적 상상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명확히 구분했다. ‘재생적 상상력’은 지각이나 기억에만 관련된 상상력이고, ‘창조적 상상력’은 실재나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상상력이라고 했다. ‘재생적 상상력’이 ‘창조적 상상력’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1. 디카시 창작 과정: 재생적 상상력과 창조적 상상력

디카시의 창작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상상력의 단계(재생적 상상력과 창조적 상상력)를 거치지만, 대부분의 디카시 작품은 창조적 상상력으로 확장하지 못한다. 재생적 상상력에 머무르는 경향이 강하다.

 

가. 재생적 상상력(칸트의 재현적 상상력, 콜리지의 일차적 상상력, 바슐라르의 감각적 이미지)

기존의 감각적 경험이나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재현하는 과정이다. 디카시의 창작은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감각적 반응을 포착하여 디지털 이미지로 기록한다. 그 이미지를 언어화하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이는 칸트의 재현적 상상력과 콜리지의 일차적 상상력에 해당하며, 바슐라르의 감각적 이미지가 그대로 언어화되어 재현되는 작업(재생적 상상력)이다.

 

디카시는 주로 기존의 감각적 순간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 과정은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에 의존하며, 창조적 상상력으로 확장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한다.

 

나. 창조적 상상력(칸트의 산출적 상상력, 콜리지의 이차적 상상력, 바슐라르의 이미지 변형)

기존의 감각적 경험을 새로운 형상과 의미로 변형하고 창출하는 능력이다. 디카시에서 창조적 상상력은 기존의 감각적 경험을 새로운 형태로 변형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디카시 작품은 창조적 상상력에 의해 새로운 의미나 상징을 창출하는 과정으로 나아가지 않고, 기존 감각을 재현하는 데 그친다. 

 

디카시가 재생적 상상력에 머무는 이유는 기존의 감각적 순간을 재구성하고 기록하고 설명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를 넘어서 새로운 의미나 형상을 창출하는 창조적 변형을 시도하는 작업이 부족하다. 새로운 상징이나 새로운 의미의 생성 없이, 감각적 순간의 기록과 재구성만을 다루는 디카시 작품들이 많다.

 

다. 왜, 창조적 상상력으로 확장하지 못하는가

디카시의 대부분은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감각의 기록에 그친다. 이는 재생적 상상력의 범주에 속한다. 감각적 순간을 새로운 형태로 변형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은 창조적 상상력으로 확장을 요구하지만, 디카시에서 이를 실현하는 작품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이론에 따르면, 지각과 기억에 의존하는 상상력은 재생적 상상력이다. 창조적 상상력은 실재나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이는 감각적 이미지의 변형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디카시는 기존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즉, 재생적 상상력에 머문다. 이미지의 창조적 변형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는 디카시의 주요 한계로, 감각적 순간을 기록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의미와 상징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

 

라. 소결론: 디카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제언

디카시 창작의 발전을 위해서는 창조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기존 감각적 경험을 새로운 형태로 변형하고 심화된 의미를 창출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디카시의 진정한 창조적 확장은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기존의 감각적 순간을 넘어서 새로운 예술적 형태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디카시는 단순히 감각적 순간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예술적 창조의 가능성을 열어 갈 수 있다.

 

2. 상상력의 층위: 정동에서 문화적 코드화까지

디카시 창작은 단순한 ‘사진+짧은 시’의 결합이 아니다.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다층적 상상력의 작동을 요구하는 복합적 과정이다. 이 과정은 이미지와 언어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정서와 경험을 포착한다. 이를 네 개의 층위(정동→심상화→의미 재구성→문화적 코드화)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각 단계는 창작과 해석에서 상상력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분리한다. 디카시가 그 자체로 풍부한 의미를 창출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 정동(Affect): 감각의 즉각적 반응

정동은 이미지와 마주한 순간, 언어 이전의 비언어적 감각과 정서가 일으키는 즉각적 반응이다. 디카시 맥락에서 보면, 사진 속 대상이 일으키는 직접적인 감각적 충격이 주도한다. 이 단계에서는 이미지가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한다. 그 자극은 정동적으로 발현한다. 예를 들어, 사진 속 강렬한 색채나 빛의 대비가 독자에게 즉각적인 감각적 반응을 일으킨다. 이는 한 장의 가을 들판 사진을 본 순간, 서늘한 공기, 낙엽의 바스락거림 같은 촉각적·청각적 잔향이 몸에 파동을 일으킨다. 이때는 언어나 의미를 떠나 순수한 감각적 경험이 중심이 된다. 이 단계는 언어 이전 상태이기 때문에 감각이 매우 강렬하게 전달된다. 감각과 정서가 주도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정동(affect)은 이성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적 반응이나 몸의 반응을 의미한다. 이는 논리나 분석보다는 감각, 분위기, 감정의 흐름에 기반하며, 비이성적 사유의 산물로 분류한다. “그 사람의 말을 듣자마자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예문은 논리적 이유나 분석 없이, 어떤 말이나 분위기만으로도 몸과 감정이 즉각 반응하는 현상을 보여 준다. 이런 반응은 ‘비이성적 사유’, 즉 ‘정동’의 전형적인 예이다.

 

나. 심상화(Image Formation): 감각의 시각적 및 언어적 형상화

심상화는 정동 단계에서 받은 자극이 머릿속에서 장면으로 형성된다. 그 감각적 자극을 언어적 심상으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디카시 맥락에서 보면, 이미지가 뚜렷한 비유나 상징적 심상으로 변형된다. 예를 들어, 들판의 이미지를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이의 발자국이나 노을 속의 고백 같은 형태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는 이상옥의 “사진과 시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공존”하는 지점이 바로 이 과정에서 나타난다. 사진에서 얻은 감각적 자극이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다시 언어적 표현으로 이어진다. 이는 감각을 형상화하는 과정이다. 여기서는 비유적 상상력과 언어적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단계에서 창작자는 감각을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형태로 변환한다.

 

심상화를 상상력의 층위로 살펴본다. “나는 어릴 적 할머니댁 마당에서 뛰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푸석푸석한 흙바닥, 낮게 깔린 황토 담벼락, 감나무에서 떨어지던 풋감과 홍시까지,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이 그대로 떠오른다.” 이 예문은 과거에 경험한 장면을 머릿속에 ‘재생’해 떠올리는 것이다. 지각과 기억에 의존하는 ‘재생적 상상력’의 예이다.

 

“나는 언젠가 하늘을 나는 도시가 생겨날 거라고 상상한다. 그곳에서는 건물들이 공중에 떠 있고, 사람들은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이 예문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새롭게 만들어 낸 장면이다. 실재나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창조적 상상력’의 예이다.

 

다. 의미 재구성(Meaning Reconstruction): 맥락 속의 서사와 메시지 생성

의미의 재구성은 심상화된 이미지를 개인의 경험이나 사회적 맥락, 문화적 배경에 맞추어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디카시 맥락에서 보면, 사진 속의 이미지를 단순한 자연적 요소로 끝내지 않고, 이를 서사적 구조로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사진 속 들판을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마을로 해석하거나,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이는 저작권 문제나 상업화 비판이 중요한 의미를 창출하는 지점에서 이 단계는 특히 중요하다. 디카시는 단순히 개인적 경험을 넘어 사회적·문화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창작자는 감각적 이미지를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결합하여 의미를 재구성한다. 이는 시인의 개인적 해석과 사회적 맥락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의미 재구성을 상상력의 층위로 살펴본다. “나는 학교 종소리를 단순한 수업 시작 알림이 아니라, 모험의 문을 여는 마법의 소리로 상상한다. 종이 울리면 우리는 또 다른 세계로 떠나는 탐험가의 길을 걸을 것이다.” 이 예문은 학교 종소리라는 익숙한 요소의 의미를 기존과는 전혀 다르게 변형해 상상한 것으로, ‘변형적 상상력’의 사례이다. 일상적인 사물에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창조적 상상력’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서 놀던 그 시절은 외로움이 아니라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연습이었다. 그때의 고요함이 지금의 상상력의 씨앗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예문은 과거의 경험(혼자 놀던 기억)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다. ‘해석적 상상력’의 예이다. 단순한 기억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자기 이해와 연결한 점에서 ‘창조적 상상력’에 해당한다.

 

라. 문화적 코드화(Cultural Encoding): 집단적 상징으로 편입

문화 코드화는 개별 창작물을 문화적 상징 체계에 통합하는 과정이다. 창작물은 개인의 감각적 경험을 넘어서 사회적·문화적 기호로 확장한다. 디카시 맥락에서 보면, 개별 창작물이 온라인 커뮤니티, 전시회, 문학 행사 등을 통해 반복·재사용·패러디하면서,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상징적 자산으로 변환한다. 예를 들어, ‘섬진강 디카시 축제’에서 자주 등장하는 강·물·길 이미지는 지역 정체성과 결합하여 문화적 코드로 재편성한다. 이는 특정 이미지나 시행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문화적 코드로 반복한다. 이를 통해 디카시는 집단적 경험과 연결하고, 문화적 전통이나 관습과도 결합한다. 이 단계에서는 개별적인 창작물이 문화적 기호로 변형한다. 독자와 사회는 이를 공유된 상징으로 소비하고 재구성한다.

 

문화 코드화는 상상력 단계까지 가지 않은 이성적 사유의 산물이다. “흰색은 서양 문화에서는 결혼과 순결을 상징하지만, 동양 문화에서는 죽음과 상복을 상징한다.” 이 예문은 같은 색(흰색)이라도 문화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코드화’되어 있다. 이는 이성적 사유로 체계화된 문화 상징 체계의 예이다. 사람들이 공통된 의미를 부여하고 따르는 규칙이기 때문에, ‘이성적 사유의 산물’인 문화 코드화에 해당한다.

 

 

이를 다시 요약하면, 정동은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이다. 아직 언어화나 해석 이전의 층위이므로 비이성적 사유(이성과 상상력과 다른 층위)로 분류한다. 심상화는 심상 형성과 시각적 은유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형상화한다. 창조적 상상력의 핵심이다. 이는 재생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심상화할 때 창조적 상상력까지 확장한다. 의미 재구성은 심상에 사회적, 개인적 의미를 덧입히는 행위이다. 해석과 메시지를 부여한다. 변형적, 해석적 상상력이다. 이는 결국, 창조적 상상력이다. 문화적 코드화는 사회적 기호 체계를 활용하고 반복한다. 패러디하는 전략이다. 이성적 사유의 범주에 속한다.

 

3. 재생적 상상력까지만 확장해 나가면 에세이

디카시의 특성상, 그 작품들이 재생적 상상력의 산물에 가까운 만큼, 사실상 ‘에세이’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에세이와 디카시의 공통점은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순간을 담아내는 방식에 있다. 에세이는 자기 경험이나 주관적 사유를 중심으로 글을 풀어낸다. 디카시도 마찬가지로 주관적 감각을 디지털 이미지와 문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기 경험이나 감각적 직관에 의존한다. 두 장르의 형식적 특성은 매우 비슷하다.

 

가. 디카시의 에세이 성격

디카시의 시적 창작 방식이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에 기반한다. 그것이 재생적 상상력을 통해 다루어진다고 해도, 그 결과물은 문학적 창조라기보다는 체험의 기록에 가깝다. 디카시가 다루는 자연이나 사물에 대한 직관적 감정이나 순간적 인식을 디지털 이미지로 포착하고 텍스트화하는 방식은 사실상 에세이가 갖는 개인적 경험의 재현과 유사하다.

 

에세이는 논리적 사고보다는 감성적 표현을 중요시하는 갈래이다. 자기 고백이나 감정의 탐구가 주요한 특징이다. 디카시 또한 주관적 감각을 표현한다. 이 측면에서 에세이 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디카시는 시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내용이나 형식이 기존의 시적 창조와는 다르게 주관적 직관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에세이처럼 자기적 경험을 담아내는 성격이 강하다.

 

나. 재생적 상상력의 한계

재생적 상상력이란, 기존의 감각적 경험이나 이미지를 변형하거나 다시 구성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디카시에서 디지털 이미지로 포착한 순간의 사진은 직관적이다. 기존의 자연이나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이 점에서 디카시는 창조적 상상력이라기보다는 재생적 상상력을 활용한다. 결국, 그 창작물이 새로운 창조라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다룬 기록이다.

 

따라서, 디카시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감각이나 경험을 반복하고 재현하는 작업이다. 문학적 창조보다는 재현이나 기록에 더 가까운 결과물이다. 이 점에서 디카시를 에세이의 특성을 가진 작품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다. 에세이와 디카시의 차이점

디카시가 ‘에세이’ 특성을 띤다고 볼 수 있지만, 그 형식이나 매체는 여전히 시적 표현을 포함한다. 디카시는 디지털 매체를 사용하여 감각적 이미지를 포착한다. 그 이미지를 텍스트로 변환하는 새로운 시적 실험이기도 하다. 에세이와 디카시의 차이점은 형식적 차이에 있다. 에세이는 글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논리적이고 서술적인 형태인 반면, 디카시는 디지털 이미지와 언어의 결합을 통해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라. 소결론: 디카시 = 에세이 특성

디카시는 직관적 사유의 산물이다. 더 나아가면, 재생적 상상력에 기반한다. 새로운 창조적 상상력이라기보다는 기존 경험의 재구성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에세이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시적 창조보다는 개인적 경험과 감각의 기록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디카시를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로 정의하는 것은 다소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을 담아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에세이 성격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

 

결국, 디카시는 기존의 감각적 경험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내용을 디지털 매체를 통해 기록하는 재생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창조적 상상력을 추구하는 전통적 시와는 다른 문학적 접근법을 보여 준다.

 

 

4. 디카시 창작물을 볼 때면 디카에세이가 적합

‘디카에세이’라는 장르가 옳은가? 가장 중요한 ‘날시’의 개념은 크나큰 오류이다. 디카시가 ‘에세이’이고 재생적 상상력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장르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 출발점에서 이론적 맹점, 특히 ‘날시’라는 개념에 대한 문제는 그 핵심적인 오류 중 하나이다.

 

가. 디카시의 한계: 날시의 오류

‘날시’라는 개념은 정동 단계의 직관적 사유에서 출발한다. 때로는 감정 단계의 직관적 사유의 산물이다. 디카시의 이론은 시적 창조와 직관적 반응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 결국, ‘직관적 사유’와 재생적 상상력, ‘창조적 상상력’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날시’가 정동적 감정의 순간적인 직관적 반응을 포착한다고 한다면, 이는 지각과 기억에만 의존하는 재생적 상상력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적 창조라기보다는 감각적 반응의 기록에 더 가깝다.

 

이 직관적 반응을 시적 창조로 착각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는 ‘날시’라는 개념을 완전히 새로운 창조로 해석하려는 시도에서 발생한 문제이다. ‘날시’가 말하는 것은 극단적인 순간적 감동이나 감정적 반응이 아니다. 단지 감각적 경험의 재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시적 창조적 상상력으로 발전시키기에는 이론적 모순이 존재한다.

 

나. 날시와 시적 창조의 구분

시는 창조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경험을 변형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예술적 행위이다. 날시는 본질적으로 직관적이고 순간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날시를 시의 출발점으로 삼는 디카시는 시적 창조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감각적 경험의 기록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에세이’ 성격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날시의 개념은 시적 창조라는 전통적인 이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창조적 상상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다. 직관적 사유나 감각적 반응을 바탕으로 한 시적 재현은 시적 창조와는 다른 차원의 활동이다. 결국, 날시의 개념은 디카시의 이론 자체에서 큰 맹점을 형성하는 요소이다.

 

다. 디카에세이라는 장르의 가능성

디카시가 에세이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을 포착하는 데 그치고, 시적 창조의 차원을 넘어서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디카시의 중심이 날시와 같은 직관적 반응에 있다면, 그것은 결국 에세이의 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다. ‘디카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나올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디카시가 감각적 경험을 기록하는 방식에 치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기반성이나 경험의 기록에 가깝기 때문에, ‘에세이’ 특성을 띤다.

 

디카시가 문학적 창조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감각적 순간이나 직관적 사유를 디지털 매체로 포착하고 재현하는 작업에 머문다. 디카에세이라는 이름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그 의미에서 디카시는 에세이의 하위 장르로 볼 수도 있다. 이 이론적 오류가 바로 디카시의 본질적 한계를 형성하는 주요 원인이다.

 

라. 날시와 창조적 상상력의 차이

‘날시’가 단순히 직관적 사유에 기반한 감각적 반응이라면, 그것은 상상력이라기보다는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지각이나 기억에 의존하는 재생적 상상력에도 미치지 못한다. 창조적 상상력은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기존의 것을 변형하여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날시는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경험을 재현하는 방식이므로 창조적 상상력의 발현이라기보다는 감각적 경험의 기록에 가까운 것이다.

따라서 날시의 개념을 창조적 상상력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질적인 오해이다. 디카시가 날시를 바탕으로 한다면, 그것은 시적 창조라기보다는 체험의 기록에 가까운 ‘에세이’이다.

 

마. 소결론

결국, 디카시는 ‘날시’라는 개념을 정동적이고 직관적인 감각 반응으로 정의함으로써, 시적 창조와 감각적 재현의 차이를 명확히 하지 못하는 이론적 한계를 드러낸다. 디카시가 창조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재생적 상상력에 의존하는 한, 그것은 ‘에세이’ 성격을 벗어나기 어렵다. 날시라는 개념 자체가 오류를 내포한다. 디카시는 결국 에세이 갈래에 가까운 작업이다. 시적 창조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따라서 디카시는 시라기보다는 ‘디카에세이’라는 새로운 갈래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론상의 맹점과 장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날시의 개념과 창조적 상상력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5. 날시와 영감에 결부하는 것이 타당한가

디카시의 이론에서 날시 다음으로 영감을 중시한다. 이것이 맹점이다. 아래와 같이 디카시 창시자와 디카시 문인협회 회장의 주장을 읽어 본다.

 

시인이 영감으로 포착한 현실 자체를 ‘날시’(그렇다고 모든 현실이 날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로 보고 그것을 육화하듯이 언어로 옮겨 놓는다.

― 이상옥, 『앙코르 디카시』, 15-16쪽.

 

디카시는 시인의 창작 역량과 노력에, 영감(靈感)을 더하고 섬광(閃光)의 시간이 함께 작동하는 예술 형식이다. 

― 김종회, 『디카시, 이렇게 읽고 쓰다』, 64쪽.

 

이론상의 오류 ‘영감’! ‘날시’는 직관적 사유의 산물이라 내면화의 문제이지 영감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영감을 외부에서 내부로 오는 감을 말한다. 물론 영감의 의미 중에 내면의 뜻도 있다. 오해의 소지가 분명하다. 영감 대신 내면화라는 용어가 적확하다.

 

‘날시’를 영감과 연결 짓는 것은 이론적 맹점을 더욱 부각시키는 지점이다. 날시가 직관적 사유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내면화의 과정이지, 외부에서 내부로 오는 영감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영감이라는 용어는 한국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 디카시 이론에서 ‘날시’ 개념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 영감의 문제: 외부에서 내부로 오는 것

‘영감’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내면으로 오는 갑작스럽고 신비로운 자극을 의미한다. 즉, 주술적이다. 이는 예술적 창조를 이끌어 내는 초자연적 또는 초월적 요소로 간주한다. 예술가가 외부 세계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 작품을 창조하는 과정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디카시 이론에서 말하는 ‘날시’는 직관적 사유의 산물이다. 이는 내면에서 나오는 직관적 반응에 가깝다. ‘날시’는 자극받은 순간의 감정적 반응을 포착한 결과물이다. 이는 ‘영감’이라기보다는 ‘내면화된 감각적 반응’에 해당한다. 즉, 외부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면화된 감정이나 경험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나. 내면화와 영감: 이론적 혼동

이론적으로 볼 때, 날시를 영감으로 설명하는 것은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영감이 외부 자극에 의한 초자연적인 경험에 가까운 반면, 날시는 이미 내면화된 경험이나 직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다.

 

영감이 외부에서 무언가가 작용하여 내면을 자극하는 과정이라면, 날시는 이미 내부에 존재하는 감각적 경험이나 감정적 반응이 즉각적으로 표현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날시를 영감으로 설명하는 것은 내면화 과정과 외부의 자극을 통한 창조적 출발을 혼동하는 결과를 낳는다.

 

다. 영감 대신 내면화가 적절한 이유

내면화는 내부의 경험이나 감정, 직관이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서 인식되고 반응하는 과정을 말한다. 날시는 이런 내면화된 감각이나 직관적 사유가 즉각적으로 언어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영감’보다는 ‘내면화’라는 용어가 훨씬 더 적절하다. 내면화는 외부 자극보다는 내부의 이미 형성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반응을 의미한다.

 

즉, 날시는 내부에서 이미 발생한 감각적 반응이나 직관을 디지털 매체로 포착하여 문자화하는 과정이다. 그 개념을 영감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론적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라. 내면화와 디카시

디카시는 날시를 바탕으로 내면화된 직관을 표현하는 것이다. 내면화는 본래 외부 자극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내부에서 형성된 감정이나 경험을 깊이 인식한 결과로, 날시의 본질과 맞아떨어진다. 이 관점에서 디카시는 내면화된 직관을 포착하고, 그것을 문자로 변환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설명했을 때, 디카시는 단순히 영감을 받는 순간을 시적 언어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감각적 경험을 즉각적으로 포착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감’이 아닌 ‘내면화’가 디카시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 훨씬 더 정확하고 명확한 용어이다.

 

마. 소결론: 영감의 개념을 넘어서

결국, 디카시의 이론적 맹점 중 하나는 바로 ‘날시’라는 개념을 영감으로 설명하면서 생긴 혼동이다. 영감은 외부에서 내면으로 들어오는 자극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날시는 이미 내면화된 감각적 반응을 즉각적으로 포착하는 것에 가까운 개념이다. 따라서 ‘날시’를 영감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론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내면화’라는 용어가 훨씬 더 적절하고 명확하다.

 

디카시가 내면화된 감각적 경험을 디지털 매체로 포착하여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은 영감의 개념보다는 내면화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일관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이 점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디카시 이론의 핵심적인 개선 방향이어야 한다.

 

6. 창조적 상상력으로 나아가는 방향 제시

날시의 사진은 정동 단계의 직관적 사유의 내면을 끌어내는 단계, 언어로 풀어내는 단계는 많이 나아가도 결국 재생적 상상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를 창조적 상상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날시라는 정동의 단계에서 벗어나고, 현실을 설명하는 표현에서 벗어나 사진과 글이라는 두 가지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단절하거나 해체해야 한다.

 

날시라는 개념이 정동 단계의 직관적 사유를 기반으로 한다면, 그것이 재생적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 상상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진과 글이라는 두 매체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단절하거나 해체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은 매우 핵심적이다.

 

가. 날시: 정동 단계의 직관적 사유

우리가 날시를 정동 단계의 직관적 사유로 이해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내면화된 감각이나 감정이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이다. 이는 사실상 기존의 감각적 경험을 재현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사진이라는 디지털 매체와 문자라는 언어적 매체를 결합하여 그 경험을 포착하고 재현하는 것에 머물 수 있다.

 

이 경우 날시는 정동적 반응을 즉각적으로 포착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는 재생적 상상력에 가까운 반복과 재구성의 영역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 사진을 찍고, 그 감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기보다는, 이미 경험한 감각을 재현하는 작업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재생적 상상력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 사진과 글의 상호 보완적 관계: 창조적 상상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한계

디카시에서 사진과 글은 원래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사진은 감각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그 이미지를 언어로 풀어내는 글이 그 의미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이 방식은 정동적 경험을 시각화한다. 그 시각적 경험을 언어로 풀어내는 일종의 재현적 과정에 가깝다.

 

창조적 상상력이란, 기존의 경험이나 사물을 변형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사진과 글이라는 두 매체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만 작용하는 한, 그것은 기존의 것을 단지 재구성하거나 재현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창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상호 보완적 관계를 단절하거나 해체해야 한다.

 

다. 단절 혹은 해체: 창조적 상상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

사진과 글의 관계를 단절하거나 해체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

 

(1) 사진과 글의 결합을 넘어서기

디카시가 사진과 글을 결합하는 방식은 이미 그 자체로 재현과 기록에 집중한다. 이 결합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진이 단순히 감각의 포착을 넘어서서 창조적 상상력의 발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사진을 독립적인 예술적 표현으로 전개해야 한다. 이때 사진은 더 이상 단순히 정동적 감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해석과 상상력의 창출을 위한 매체로 기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글 역시 사진의 해석이나 재구성에 그치지 않고, 사진과 독립적인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 글은 사진의 의미를 확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새로운 창조를 이끌어 내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현이다. 이때 사진과 글이 각각 자율적인 재현적 공간을 형성하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재생적 상상력을 구현한다.

 

(2) 사진 자체의 상상력 강화

사진은 본래 시각적 이미지를 포착하는 매체이다. 그것이 순간 포착이라서 감각적 재현이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재생적 상상력을 뚫고 창조적 작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진이 직관적 순간이나 정동적 감정을 단순히 포착하면 곤란하다. 새로운 시각적 해석과 변형된 이미지를 통해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사진은 그 자체로 시각적 언어로 기능하며, 그 의미를 확장하고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

 

(3) 언어의 창조적 변형

글 역시 사진과 독립적인 창조적 작업이어야 한다. 언어는 단순히 감각을 묘사하거나 사진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다. 사진의 해석을 넘어서고, 이를 재현하는 재생적 상상력을 뛰어넘어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언어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상상력의 매체이어야 한다. 사진을 넘어서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라. 소결론: 창조적 상상력으로의 전환

날시는 정동적 직관의 산물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도 그 자체로는 재생적 상상력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이를 창조적 상상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진과 글이라는 두 매체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해체하고, 각각을 독립적인 창조적 표현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사진은 직관적 감각의 포착을 넘어서서 창조적 상상력의 발현이어야 한다. 글은 사진을 설명하거나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독립적인 작업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날시의 개념을 정동적 반응과 재현을 뛰어넘고 새로운 창조로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사진과 글의 결합이 아니라, 각각의 매체가 창조적 공간을 만들어 간다.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고 변형할 수 있도록 하는 상호 독립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디카시는 재생적 상상력을 넘어서, 창조적 상상력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Ⅴ. 나가기: 비평 이론의 확장 가능성과 대안적 틀 제시

디카시를 단순한 ‘사진과 짧은 시의 병치’로 정의하는 한, 그것에 대한 비평 또한 감각적 인상 비평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디카시는 정동을 기점으로 한 상상력의 층위를 따라 다양한 의미 작용의 국면을 발생시키며, 매체 환경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창작 주체와 수용 구조를 전제로 한다. 이에 본 장에서는 디카시의 본질을 보다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기 위한 비평 이론의 확장 방향과 대안적 이론 틀을 제안한다.

 

1. 이미지-텍스트 수용 이론의 도입 필요성

디카시는 이미지와 언어가 병렬적으로 결합한 텍스트이다. 이 결합은 단순한 합산이 아닌 수용자의 감각 및 해석 경험 속에서 상호작용적 의미를 형성한다. 이러한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수용 미학(Rezeptionsästhetik)과 함께 ‘이미지-텍스트 이론’의 적용이 필수적이다.

 

볼터(Jay David Bolter, 1951~ )의 ‘리미디에이션(remediation)’은 새로운 매체가 기존 매체를 재맥락화하거나 흡수함으로써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디카시에서 텍스트가 이미지를 ‘보충’하거나 ‘재구성’하는 구조를 분석하는 데 유효하다.

 

미첼(William John Thomas Mitchell, 1942~ )의 ‘이미지-텍스트 관계론’은 시각적 상상력과 언어적 의미화 과정 사이의 긴장을 강조한다. 디카시 비평에 적용할 수 있는 분석 도구를 제공한다.

 

2. 정동 이론의 층위화와 상상력의 구조 분석

기존 디카시 비평은 ‘정동적 반응’을 감각적 충동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동 이론의 철학적 함의를 축소하는 것이다.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에 따르면, 정동은 감정과 다르게 지각 이전의 잠재적 운동성이다. 개인의 반응을 넘어 집합적 감각 체계의 일부로 작용한다.

따라서 디카시 창작은 단순한 감정의 언표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층위를 따른다.

 

정동 – 비자발적 감각 자극(날시)

심상화 – 감각의 내면화 및 이미지화

언어화 – 언어적 형상화 및 구조화

문화 코드화 – 수용자 문화와의 접속

 

이와 같이 정동→심상화→언어화→코드화로 이어지는 다층적 구조를 전제할 때, 비로소 디카시의 창작 논리와 의미 작용을 비평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3. 창작 주체의 분산과 기술 매개적 상상력

디카시는 단지 개인의 감정 표현물이 아닌, 기술 매개에 의해 조건지어진 창작물이다. AI로 생성된 이미지, 자동 캡션 기능, SNS 알고리즘 등의 요소는 디카시 창작 과정에 본질적으로 개입한다. 이는 창작 주체가 고립된 개인이 아닌, 기술과 상호 작용하는 ‘분산된 주체’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요한 비평 관점은 다음과 같다. 디지털 인문학은 창작 주체를 기술적 환경 속에서 재정의한다. 알고리즘적 상상력 이론은 창작을 의도적 표현이 아닌 기계적 가능성과 감각의 협동 산물로 간주한다.

 

4. 디카시 비평을 위한 통합 틀 제시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여, 이 글은 디카시 비평 및 창작을 위한 5단계 통합 분석 프레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이 통합 프레임은 디카시를 감각적 산물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디지털 시대 감각-기억-기술이 교차하는 복합 텍스트로 인식하는 기반을 제공한다. 더불어 이러한 구조적 접근은 디카시의 창작 교육, 비평 이론 정립, 디지털 문학 일반에 대한 이론적 모델로도 확장될 수 있다.

 

비평은 단순히 결함을 지적하는 행위가 아니라, 창작의 의미 층위를 탐색하고 확장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디카시는 기존 문학 이론의 경계를 교란한다. 동시에 새로운 해석 프레임을 요청하는 복합적 양식이다. 따라서 향후의 디카시 비평은 기존 문학의 심미적 범주를 넘어, 디지털 감각의 인식론적 전환을 고려하는 통합적 이론화 작업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5.09.03 10:31 수정 2025.09.0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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