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역사] 9. 패총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 어로, 수렵, 채집의 중심

일본 본토와 다른 독자적 시대 구분

바다와 숲에서 얻은 자원이 만든 생활 문화

조개 교역과 늦은 농경 사회의 출현

돌도끼ⓒ오키나와현립박물관・미술관

오키나와의 고대사는 일본 본토의 시대 구분과 다르다. 죠몬 시대나 야요이 시대라는 개념이 아닌, 토기가 등장하기 전의 후기 구석기 시대와 토기 사용 이후 약 7,000년 전부터 12세기까지 이어진 패총시대로 나뉜다.

 

이 시기의 오키나와는 따뜻한 기후와 풍부한 자연 환경 덕분에 굶주림과는 거리가 있었다. 덕분에 농경으로의 전환이 늦어졌고,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어로, 수렵, 채집의 중심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패총 시대 초기 유적은 대부분 해안가에 위치한다. 이는 당시 생활의 중심이 바다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난조시 사키타리 동굴에서는 약 2만 3천 년 전 제작된 세계 최고(最古)의 낚싯바늘이 발견돼, 이미 패총 시대 이전부터 어로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음을 입증한다.

 

후기에는 해안으로 정착지가 옮겨지며 교역과 어로가 더욱 중시됐다. 야요이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지에서 조개로 만든 추가 다량 출토된 것은 그물을 활용한 집단 어로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산호초가 발달한 오키나와 바다는 다양한 해산물을 제공했고, 사람들은 조개껍데기로 도끼, 칼, 목걸이 같은 생활용품과 장신구를 만들었다.사냥은 집단적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잡은 동물은 공동체 내에서 평등하게 분배되었다. 

 

미야코지마와 오키나와 본섬 남부에서 발견된 코끼리 화석, 각지에서 발견된 사슴 화석은 당시 사람들이 대형 동물까지 사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토기의 등장은 단순한 발명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단단한 열매나 줄기, 새싹 등을 끓여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채집은 한층 생활에 밀접해졌다. 풍부한 자연환경 덕분에 오랫동안 채집은 주요한 생계 수단이었다.

 

오키나와에서 나는 고호우라 조개와 이모 조개는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일본 본토로 전해졌다. 야요이 시대부터 고분 시대에 걸쳐 약 800년 동안 이어진 이 교역은 ‘조개의 길’로 불리며 활발한 문화 교류의 증거로 평가된다.

 

특히 미야코·야에야마 제도에서는 동남아시아 문화와의 연결을 보여주는 조개 도끼 등 독자적 유물도 발견돼, 오키나와의 교역이 넓은 문화권과 이어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노왕시 우에하라 누바루 유적에서 약 2,700년 전의 밭 흔적이 발견되며, 농경이 예상보다 일찍 시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농경 사회는 12세기 무렵에야 성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경이 정착되면서 사람들은 촌락(ムラ)을 이루어 공동 생활을 시작했고, 노동과 식량 관리, 제사를 이끄는 ‘카시라(かしら, 우두머리)’가 등장했다. 카시라는 신과 소통할 능력을 지녔다고 여겨졌다.

 

오키나와의 패총 시대는 한마디로 ‘어로·수렵·채집의 중심’이었다. 풍요로운 자연 환경 속에서 공동체적 삶을 이어가며, 교역을 통해 일본 본토와 연결되었고, 점차 농경이 도입되면서 사회적 변화로 나아갔다.

 

이 시기는 단순한 생존의 시대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오키나와 고대사의 중요한 한 장이었다.

 

작성 2025.09.16 09:14 수정 2025.09.1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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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