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라테는 단순한 격투술이 아니라 평화와 절제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 핵심에는 “가라테에 선제공격 없다(空手に先手なし)”라는 가르침이 자리한다. 이 원칙은 모든 ‘품새(型)’가 예외 없이 ‘받기(受け)’ 기술로 시작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가라테가 지향하는 평화주의적 가치를 드러낸다.
“가라테에 선제공격 없다”는 말은 결코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단순한 기술 규칙이 아니라, 다툼이나 갈등 상황에서도 폭력에 의존하지 말라는 삶의 지혜다. 실전적으로는 상대의 공격을 기다린 뒤 이를 피하거나 받아내고, 필요할 때만 반격하라는 가르침이다.
류큐 왕국 시대, 오키나와는 중국·일본·미국 같은 강대국들 사이에 놓인 작은 섬나라였다. 무기 사용이 금지된 역사적 조건 속에서 가라테는 맨손 호신술로 발전했고, 자연스럽게 방어적 태도와 평화주의적 정신을 형성하게 되었다.
역사 속 가라테의 선구자들은 이 철학을 거듭 강조했다.
- 후나코시 기친(船越義珍)은 “가라테에 선제공격 없다”를 평생의 모토로 삼았다.
- 캰 쵸토쿠(喜屋武朝徳)는 “평생 가라테 기술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수련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은 “남을 때리지 않고 남에게 맞지 않으며, 아무 일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좌우명으로 인간관계의 조화를 강조했다.
- 마츠무라 소콘(松村宗昆)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적의 혼란을 기다리고, 고요함으로 적의 소란을 제압한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이처럼 가라테의 철학은 공격보다 절제와 방어를 우선하는 삶의 태도를 일깨운다.
가라테의 모든 품새는 반드시 막기로 시작한다. 공격 기술로 시작하는 품새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품새를 수행하다가 방향을 바꿀 때도 예외 없이 받기가 선행된다. 이는 곧 ‘가라테에 선제공격 없다’는 정신이 구체적인 수련 체계에 깊숙이 반영된 결과다.
막기 기술은 단순히 팔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 히가온나 모리오(東恩納盛)는 막기는 ‘스리아시(摺り足)’와 ‘사바키(体捌き)’ 같은 신체 움직임을 동반해야 하며, 팔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 히가 미노루(比嘉稔)는 막기에는 단전의 힘과 회전력이 필요하며, 이는 ‘가케테(掛け手)’ 훈련과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 치넨 켄유(知念賢祐)는 막기가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 인내와 전진을 통해 주도권을 유지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 시마부쿠로 젠포(島袋善保)는 “가라테는 호신술이며, 상대가 공격할 때만 받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품새 속의 받기는 단순한 방어를 넘어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주도권을 지켜내는 철학을 담고 있다.
결국 가라테는 기술 습득을 넘어 인격 수양의 길을 제시한다.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강인함을 기르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싸움을 피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정신을 추구한다.
‘가라테에 선제공격 없다’는 단순한 무술 규범을 넘어 삶의 태도를 가르친다. 품새의 시작이 막기로 이루어지는 이유 역시 이 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 원칙을 통해 가라테는 기술뿐 아니라 절제와 평화라는 가치를 전하는 무형의 유산임을 보여준다.
오키나와 가라테의 철학은 공격보다 방어, 폭력보다 평화를 택한다. 품새 속에 담긴 막기 기술과 선구자들의 가르침은 가라테가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평화와 인격 수양의 길임을 분명히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