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연기는 냄새가 아니라 맛이다.” 처음엔 약간 갸우뚱하지만, 막상 제대로 익어나온 고기의 황금색과 그윽한 향기를 맡고나면 사람들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리얼바비큐는 불이 아닌 열로 익히는 작업이다. 맛의 깊이는 연기가 깊숙이 관여한다. 그래서 바비큐는 열의 요리이면서 동시에 연기의 요리다. 열과 연기 사이의 조화, 그 미세한 어울림의 결과물이 접시에 오른다.
그 조화의 시그널이 바로 푸른연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흔히 “푸른연기를 찾아서”라고
말하지만, 연기 자체가 파랗게 타는 것은 아니다.

연소 과정에서 충분히 잘게 분해된 불완전 연소의 고운 입자들이 빛의 산란에 의해 옅게 보이는데 그 빛이 푸르게 보일 뿐이다. 쉽게 말해, 적당히 뜨겁고 적당히 마른, 완전연소와 불완전연소 사이에서 나오는 연기가 그 적당한 농도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바비큐의 초보자들이 하는 실수중 하나는 연기를 가두거나 회색의 진한 연기를 피우고, 하얗고 꾸역꾸역한 연기를 자랑스러워 할 때, 고수들은 슬쩍 고개를 저으며 통풍구를 열고 농도를 조절한다.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연기, 바로 그 “푸른색의 연기”를 찾기 위해서고, 그 작은 행동과 스킬이 바비큐 맛의 방향을 결정한다.
바비큐 연기는 나무에서 나온다. 활엽수, 특히 참나무 계열이나 과일나무의 속살이 각별히 선호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직이 치밀해 열에 반응하는 방식이 예측 가능하고, 향이 복합적이면서도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매너가 있다. 껍질의 오염, 수액의 과다, 덜 마른 수분, 수지 성분의 불균형 같은 변수들을 잘 정제하고 법제해야 한다.
결국 장인이란 불을 다루는 사람이라기보다 열과 연기를 다루고 일관성있는 열과 연기가 재료에 미칠 영향을 예측해 거기에 어울리는 상황을 연출하는 사람이다.
연기의 안전성에 대해 논쟁이 이어지는 것도 이 대목과 연결돼서 생각해야 한다.
바비큐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면, 적어도 연기의 성분과 농도, 발생 조건은 가급적 더 안전하게 제어하는 연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바비큐에 대한 욕망을 포기할 수 없다면, 최소한의 안전은 지켜내야 하니까 말이다.
바비큐의 철학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인내와 절제의 미학”이다. 열은 적당해야 하고, 그 적당함이 음식 조리과정에서 인내와 자제력을 갖출 때 비로소 품격있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연기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함의 산물이다. 완전히 타버린 재는 더 이상 연기를 피우지 못하고 맛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맛의 미학은 그래서 늘 적당한 경계선 위에서 극대화 된다.
연기는 나되 불은 붙지 말아야 하고, 수분은 필요하되 젖어있지 말아야 하며, 습기를 머문 상태, 이 좁은 경계의 틈 사이에서 피어나는 것이 푸른색의 연기다.
그 보이진 않는 경계선상에서 치우치지 않고 붙잡아 지속시킬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을 한 점의 고기를 굽는다.

연기는 눈으로 보이고 혀보다 코에 먼저 신호를 보내지만 코가 먼저 설득되었다고 혀가 무조건 동의하진 않는다.
냄새는 풍성한데 맛이 텁텁할 때가 있다. 그것은 과훈연의 결과다. 연기는 향의 언어로 말하지만, 지방과 단백질, 수분과 표면반응의 결과는 맛의 문법으로 답한다.
이 관계가 어긋나면 음식은 쉽게 균형을 잃고, “첫 입은 좋은데 끝이 무겁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푸른연기처럼 미세한 입자들이 짧고 정확하게 고기 표면을 스치듯 영향을 미치면 말이 적어
도 설득력 있는 연설처럼 기억에 남는 완벽히 조화로운 맛을 낸다.
바비큐가 유난히 ‘깔끔하게 떨어진다’고 느낄 때, 사실 우린 그 보이지 않는 열과 연기의 조화를 읽고 최상의 균형을 맛보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안전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연기에 포함된 일부 성분이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우려는 오래되었다. 다만 변수와 조건이 많아 “무조건 해롭다” 혹은 “전혀 문제 없다”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래서 실천적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지나치게 젖은 나무나 제재목, 도장을 한 나무나 약품 흔적이 있는 방부목재는 절대 사용하면 안된다.
통풍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완전 연소와 불완전연소 사이의 교모한 줄타기를 통해 과도한 재와 그을음을 관리하는 자신만의 콘트롤 루틴을 만든다.

소스와 당 성분이 많은 바스팅Basting과 글레이즈Glaze는 마무리 타이밍을 뒤로 미뤄 탄화 리스크를 줄인다. 바비큐를 포기하지 못할 거라면, 적어도 가급적 안전한 연기를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무다. 일상의 즐거움에는 때때로 책임이 따라야 다음 즐거움을 약속할 수 있다.
인문학적으로 보면, 바비큐는 공동체의 불 앞에 모이는 의례에 가깝다. 연기는 그 의례의 공간을 신성하게 만드는 성스러운 존재가 된다. 연기가 피어오르면 사람들은 멀리서도 모여든다.
시야를 가리는 자욱한 안개가 아니라, 추억을 장을 만들기 위해 불러 모으는 신의 초대장인 것이다.
누군가는 화덕을 돌보고, 누군가는 샐러드를 다듬고, 누군가는 소스의 간을 본다. 이 작은 분업은 결국 살아있는 공동체의 신뢰를 만드는 관계다. “탄 좀 더 넣을까?” “아니, 통풍구를 닫고 좀 기다리자.” 이런 사소한 대화가 파티의 분위기를 만든다. 연기는 말을 하지 않지만 모두가 그 냄새의 의미를 안다. 불량한 연기와 선량한 연기는 냄새부터 다르다. 음식의 운명뿐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대화와 리듬까지 바꿔 놓는다. 그래서 잘 만든 바비큐는 결국 ‘본능과 관계의 맛’으로 기억된다.
또 한 가지, 연기는 시간의 기술이다. 마음이 급한 사람에게 연기는 대개 회색이다. 불을 키우고, 나무를 쑤셔 넣고,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 연기는 한없이 사나워진다.
반대로 온도와 산소, 연료의 균형을 차분히 맞춘 연기는 순하고 얌전해진다. 마치 잘 훈련된 호흡처럼 길고 고르다. 기다림을 견딘 시간의 고기 속으로 스며들며 연기는 냄새로 와서 맛으로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
훌륭한 바비큐가 남기는 최고의 인상 중 하나는 “손댄 것 같지 않은 자연스러움”이다. 가장 많은 신경을 쓴 사람이 가장 티를 안내 듯, 그 역설이 요리의 품격을 만든다.
끝으로, 재료와 연기의 궁합을 잠깐 짚어보자. 붉은 고기의 광택과 지방의 녹는점, 콜라겐으로의 전환, 표면의 수분 상태는 연기의 입자 크기와 온도, 체류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같은 나무라도 토막의 크기, 건조도, 배치에 따라 향의 정도가 달라지고, 통풍의 각도 하나가 고기의 맛을 바꾼다. 이 디테일의 조합이 바로 ‘맛의 정체성’을 만든다. 누군가에겐 사과나무의 산뜻한 단향이, 또 다른 이에겐 참나무의 묵직한 그을림이 영원히 기억된다. 그래서 좋은 바비큐는 레시피보다 ‘공간의 행복’에 가깝다. 여러 번의 경험과 실험이 쌓여, 결국 당신만의 푸른연기를 만든다.
바비큐에서 연기는 냄새가 아니라 맛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연기는 충실한 과정의 맛이다. 과함을 경계하되 정체성을 잃지 않는 태도, 안전을 고민하되 역할을 겁내지 않는 태도, 개인의 행복을 즐기되 함께 나누는 태도. 불을 피우는 일은 늘 책임을 부른다. 하지만 그 책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한 점의 고기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접시 위에 올라오는 것은 결국 한점의 고기지만 입 안에는 사람과 사람들끼리 나눈 웃음과 대화, 친절한 태도가 남는다.
바비큐에서는 열이 열일한다. 하지만 연기없이 그 맛은 완성되지 않는다. 연기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야 하며 흐르고 스며야 한다.
우리 옛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나 불편부당不偏不黨같은 말이 있지만 그것보다 지공무사(至公無私)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것이 바비큐에서 연기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죽어가는 재상 기해(箕奚)에게 군주가 다음 재상의 천거를 명하니 자신의 원수인 해호(解狐)를 천거한다. 이에 놀란 군주가 그 이유를 물으니 "군주께서 다음 재상을 물으신 것은 재능과 덕망을 갖춘 인재를 찾기 위함이지, 저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물으신 것이 아닌줄 압니다. 해호는 뛰어난 인재이니 마땅히 추천하는 것입니다."

바비큐에서 연기가 가지는 반전이 그런 것이다. 맵고 역해서 모든이들이 피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재능과 역할은 능히 재상의 자리와 견주어도 진배가 없을만큼 그 역할이 크다 할 것이다.
재상의 자리가 낮지않듯 연기없는 바비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당해야 한다. 해호와 같이 원수가 천거할 정도로 역할과 정체성이 확실하고 행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멈추고 가두지 말아야 한다. 계속적으로 흘려야 한다. 지속적으로 흐를 때 회색의 불쾌한 연기는 밀려 사라지고 새로운 연기가 발생하며 그 연기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푸른색으로 보일 때, 바비큐의 정체성과 가치는 빛이나는 것이다.
사사로움 없이 긍정적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 할 때 지공무사至公無私의 세상은 완성되는 것이다.
칼럼리스트
프로바비큐어
바비큐프로모터
바비큐 작가
현,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