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명예퇴직한 김길홍(54세, 가명) 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생 직장’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던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은퇴 후 그는 사회와 단절된 듯한 공허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평소 관심 있던 사회복지 분야를 탐색하던 그는 ‘주거복지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접하게 됐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기본 토대라는 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제 경험을 살려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죠.” 김 씨의 말이다.

주거복지사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단순히 거처를 연결해주는 것을 넘어,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와 지원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는다. 취업 준비로 고시원에 장기간 머무르는 청년, 임대료 부담으로 이사를 거듭하는 저소득 가정, 휠체어 이동조차 힘든 노후 주택에 사는 고령자까지. 주거 문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존과 직결되며, 주거복지사는 이들의 삶을 ‘집’에서부터 지탱해주는 존재다.
김 씨가 처음 만난 사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전기와 수도가 끊긴 채 지내던 독거 어르신이었다. “그분은 ‘살 집은 있어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에 계셨습니다. 처음엔 대화조차 어려웠는데, 행정 지원과 봉사단체를 연결해 드리면서 서서히 삶의 의지를 되찾으셨죠.” 김 씨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청년층은 높은 전·월세와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해 고시원·반지하·쉐어하우스 등 열악한 주거 환경에 내몰리고, 고령자들은 고립과 건강 문제까지 더해져 주거 위기를 겪는다. 주거복지사는 이런 문제들을 행정과 복지 서비스, 지역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조율자’ 역할을 한다.
김 씨는 “처음엔 단순히 상담이나 서류 절차를 돕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삶 전반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일이더군요. 주거 문제는 곧 삶의 문제였습니다”라며 사명감을 드러냈다.
주거복지사 제도는 비교적 최근 도입된 제도다. 국토교통부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주거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에 따라 양성 과정과 자격 제도가 마련됐다. 그러나 아직 제도적 기반은 미흡하다. 인력 수급이 충분하지 않고, 현장에서 요구되는 전문성에 비해 처우 개선도 더디다.
김 씨는 “주거복지사로서 활동하며 가장 절실히 느낀 건 ‘연속성’입니다. 일회성 지원으로는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장기적인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주거 약자들이 삶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주거복지사가 단순한 ‘복지 행정 지원자’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의 핵심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 확대 △지속 가능한 재정 지원 △주거와 복지를 아우르는 통합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인생 2막, 새로운 사회적 사명
김길홍 씨의 선택은 ‘퇴직 후 제2의 직업’이 아닌, 사회적 의미를 실현하는 길이었다. 그는 지금도 매주 현장을 누비며 주거 약자들의 삶을 기록하고, 작은 변화들을 쌓아가고 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주거복지사로 일하면서 제 삶이 더 풍요로워졌어요. 누군가에게 희망의 사다리가 된다는 건 그 어떤 성취보다 값진 일이었습니다.”
주거복지사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있는 제도이지만, 분명히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하고 따뜻해지기 위해 필요한 존재다. 김 씨의 사례는 ‘인생 2막’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집은 삶의 출발점이며, 주거복지사는 그 출발선에 서 있는 이들을 위한 든든한 동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