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반복 된다 : 오늘의 세계 갈등, 과거의 전쟁이 남긴 그림자
독일 철학자 헤겔은 “역사와 경험이 가르치는 것은, 국민과 정부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비관적인 통찰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을 바라볼 때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세계 지도를 펼쳐보면 국경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수많은 피와 협상, 전쟁과 타협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흔적임을 알 수 있다.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필요한 통찰의 도구다.
제국의 몰락과 새로운 갈등의 씨앗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세계는 거대한 제국의 흥망성쇠를 경험했다. 오스만 제국의 해체는 중동 지역의 국경을 새롭게 그렸고, 이는 오늘날 이라크·시리아·이스라엘 등에서 이어지는 분쟁의 근원이 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에 굴욕감을 안겨주었고, 이는 곧 히틀러의 부상과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로 이어졌다.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문명은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무능으로 스스로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제국의 몰락은 외부의 적 때문만이 아니라 내부의 분열과 균열에서 비롯됐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제국이 남긴 경계는 여전히 불안정한 화약고 역할을 하고 있다.
냉전 이후의 세계, 균형을 잃은 국제 질서
1945년 이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주도하는 냉전 체제를 경험했다. 이 시기 갈등은 두 진영의 대리전 형태로 나타났지만 일정한 균형이 유지되었다는 역설적인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세계는 ‘단극 체제’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미국은 세계 경찰을 자처했지만,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패권의 한계를 드러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을 단순히 억압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스며 있는 관계망으로 설명했다. 그는 “권력은 어디에나 있다. 모든 곳에서 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냉전 이후의 분쟁은 국가 대 국가의 충돌만이 아니라 테러리즘, 사이버전, 경제 제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충돌로 확장됐다. 균형을 잃은 세계는 오히려 더 예측 불가능한 불안정성 속에 놓이게 됐다.
종교·민족 갈등, 과거에서 오늘로 이어지다
세계 곳곳의 갈등은 단순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종교적·민족적 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발칸반도의 세르비아·보스니아 충돌, 중동의 유대교와 이슬람교 갈등, 아프리카의 부족 분쟁은 그 뿌리가 깊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이를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설명했다. 집단은 위기를 맞으면 특정 타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강화한다. 이러한 구조는 과거 십자군 전쟁에서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반복된다. 역사는 인간이 타자를 이해하기보다 적대시하는 방식을 얼마나 쉽게 택하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인류, 반복되는 충돌의 경고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멜로스 대화에서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해야 할 일을 당한다”라는 아테네 사절의 냉혹한 말을 기록했다. 2,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제 질서를 설명하는 데 유효하다. 강대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개입하고, 약소국은 그 틈바구니에서 희생된다.
역사학자 윌 듀런트는 “전쟁은 역사에서 변함없는 상수이며, 평화는 그저 잠시 주어지는 휴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나 역사가 단지 전쟁의 연속이라면 인류는 결국 파멸로 향할 수밖에 없다. 역사의 교훈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폭력의 반복을 끊고 평화를 제도화할 지혜를 마련해야 한다.
오늘날의 분쟁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수세기 동안 축적된 역사적 갈등의 결과다. 철학자 칼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가 맞닥뜨린 갈등은 결코 희극이 될 수 없다. 지도 위에 남은 과거의 그림자를 직시하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지혜를 찾는 것이 인류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