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도제(徒弟)와 신앙의 길

커피인문학

커피의 세계에서 실력은 책이나 이론으로만 쌓이지 않습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그렇듯, 한잔의 커피에는 손끝의 감각, 눈으로 익히는 디테일, 그리고 몸으로 체득하는 경험이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커피는 도제 과정을 통해 전수(傳受) 되어 왔습니다. 선배의 손을 유심히 관찰하고, 스승의 움직임을 따라 하며, 작은 습관 하나까지 몸에 새겨 넣는 과정이 바로 배움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제빵·제과나 도자기 기술이나 그 어떤 전문성을 요구받는 기술이 필요한 분야는 글로 배울 수 없고, 반드시 눈으로 보고 손으로 익혀야 하는 법입니다.

 

유럽에서의 마에스트로 전통

 

이러한 도제 과정의 뿌리는 유럽의 마에스트로(Maestro)’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에스트로란 원래 음악과 미술, 그리고 장인 세계에서 스승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서는 화가와 조각가들이 작업장을 운영하며 제자들을 거두었고, 제자들은 수년간 스승의 곁에서 붓을 씻고 물감을 개며, 반복된 모작(模作)을 통해 점차 기술을 익혔습니다.

 

커피 역시 이 흐름을 이어받아, 이탈리아의 바(Bar)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제적 전통이 자리 잡았습니다. 바리스타는 단순히 커피를 내리는 기술만 익히는 것 뿐만 아니라, 스승에게 커피의 온도, 물줄기의 흐름, 잔을 돌리는 각도까지 배우며, 그 환대의 정신을 익혀야 했습니다. 바리스타가 생활 예술가로 존중받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스승이 옆에서 시연하고, 제자가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며 몸에 새기는 과정은, 기술이 기능을 넘어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신앙의 배움 또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신앙생활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은 교과서적 지식이 아니라 삶 속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신앙생활을 잘하는 선배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기도와 헌신, 인내와 사랑을 관찰하며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치 바리스타 제자가 스승의 손동작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눈을 크게 뜨듯, 신앙의 후배 역시 믿음의 선배를 유심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이 말씀은 곧 신앙의 길도 도제의 길임을 보여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삶으로 따라하는 그 과정을 통해 신앙은 점차 깊어지고 단단해집니다.

 

커피와 신앙, 전수되는 향기

 

커피 한 잔에 담긴 깊은 향이 스승에게서 제자로 전해지듯, 신앙의 향기도 그렇게 이어집니다. 글로 배울 수 없는 손끝의 감각처럼, 신앙의 진실함도 단순히 지식뿐만 아니라 선배들의 삶을 통해 스며듭니다. 우리가 믿음의 선배를 존경하며 관찰하고 따를 때, 언젠가 우리도 또 다른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 신앙의 향기를 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커피와 신앙생활은 닮아있습니다. 둘 다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삶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커피가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되듯, 신앙도 믿음의 선배들의 삶 속에서 아름답게 빚어지는 것입니다.

 

| 최우성 목사

 

태은교회 담임 / 강원대학교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 알고 보면 재미있는 커피 인문학 저자 / 농학박사(PhD) / 목회학 박사(Dmin)

작성 2025.09.17 11:14 수정 2025.09.1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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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