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품종과 그 뿌리
커피는 꼭두서니과에 속하는 코페아(Coffea) 종의 식물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주로 마시는 커피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아라비카(Arabica), 로부스타(Robusta), 그리고 리베리카(Liberica)입니다. 이 가운데 아라비카가 세계 커피 유통량의 약 70%를 차지하며 가장 널리 소비되고, 로부스타가 약 30%를, 리베리카는 소수 지역에서만 소비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아라비카를 스리랑카(옛 실론)에 심었으나 녹병과 각종 병충해로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이때 아라비카를 대체할 품종을 찾아 나섰고, 아프리카 콩고 지역에서 발견한 커피가 바로 로부스타입니다. 향미 면에서는 아라비카에 비해 단순하고 쓴맛이 강하지만, 더위와 병충해에 매우 강하여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계보의 뿌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코페아 유게니오이데스(Coffea eugenioides)'입니다. 이 종은 작은 열매를 맺고 맛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의 근원이 되는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마치 겉으로는 미미해 보이지만,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씨앗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커피의 품종은 120여 종에 이르지만, 실제로 인류가 일상에서 즐기는 것은 30~40개 품종에 불과합니다. 이는 수많은 가지와 뿌리 중에서 인류의 문화와 취향 속에 깊이 뿌리내린 품종이 선택되어 전해져 왔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마엘과 로부스타 – 투박한 강인함
유게니오이데스가 다른 종과 만나 후손을 낳은 결과 중 하나가 로부스타입니다. 로부스타는 투박하고 쓴맛이 강하지만, 뜨거운 기후와 각종 병충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며 세계 커피 산업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과 닮아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자라 거칠고 투박했지만, 그 후손들은 사막의 전사로 강인한 생존력을 발휘했습니다. 역사의 황량한 광야에서 이스마엘의 후손이 살아남았듯, 로부스타 역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삭과 아라비카 – 부드러운 향기
또 다른 후손, 아라비카는 전 세계 커피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인류가 가장 사랑하는 품종이 되었습니다. 아라비카는 향기롭고 세련된 맛으로 수많은 문화권에서 커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아라비카 커피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삭은 온유하고 평화로운 성품으로 기억되며, 그의 삶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신앙을 온순하게 이어받은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후손인 야곱과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각기 다른 개성과 사명을 지녔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신앙의 계보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아라비카가 다양한 품종으로 뻗어나가면서도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 것과 닮아 있습니다.
커피와 신앙의 교차점
커피의 세계와 신앙의 세계는 흥미롭게도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 유게니오이데스 : 작고 미미한 존재 같았지만, 역사의 위대한 출발점이 됨.
♧이스마엘 = 로부스타 : 거칠고 투박했지만, 강인한 생존력으로 시대와 환경을 버팀.
♧이삭 = 아라비카 : 부드럽고 향기롭게 세상을 변화시키며 계보를 이어감.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오랜 세월과 역사를 통해 이어져 온 생명의 계보를 담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의 작은 순종이 세대를 넘어 구원의 역사로 이어져, 결국 오늘날 우리의 신앙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한 잔의 커피, 한 줄기의 믿음
한 잔의 커피에는 로부스타의 강인함과 아라비카의 부드러움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작은 씨앗 같았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으로 이어진 것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유게니오이데스가 인류의 커피 문화를 꽃피운 조상이 되었습니다.
커피 한 잔 속에도 커피의 조상 유게니오이데스의 유전자가 이어져오고 있는 것처럼, 성도들에게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유전자가 이어져 왔습니다. 이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우리 다음세대들에게 더 멋진 믿음의 유전자를 물려주면 좋겠습니다.
글 | 최우성 목사
태은교회 담임 / 강원대학교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 알고 보면 재미있는 커피 인문학 저자 / 농학박사(Ph.D) / 목회학 박사(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