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지! 가이산!
중지(中止)! 해산(解散)! 이라는 말은 일본 경찰이 사용했던 말이다. 1940년 주기철 목사님은 금강산 수양관에서 200여 명이 모인 목사, 선교사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금강산 수양관은 그 옛날 하나의 장로교회가 있을 때,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인 한석진 목사가 주축이 되어 세워진 수양관이었다. 당시 금강산 절경이 있는 곳에 기독교 수양관이 세워진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식 사진을 보면 모두가 상투를 틀어 올리고 갓을 쓰고 있는데, 유일하게 한석진 목사만이 상투를 잘라 버리고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석진 목사는 진취적이고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명산 중 가장 아름다운 곳에 교역자 수양관을 세웠다. 필자가 대신대 총장을 역임하고 있을 때, 전국의 총장들이 단체로 모여 금강산에 갔었다. 그러나 공산당은 교역자 수양관을 그냥 둘리 없었다. 아예 때려 부숴버렸다. 그나마 몇 년이 지난 후 남북 화해 기간이 끝나 금강산에 갈 수 없었다.
1939년 주기철 목사는 농우회(農友會) 사건으로 경북 의성 경찰서에 검속되어 7개월 동안 고생을 했었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는 1940년 금강산 수양관에 목사, 선교사 200여 명이 모인 부흥회에 강사로 초청받았다. 주 목사는 이 집회에서도 여전히 생명을 내걸고 말씀을 선포했다. 금강산 수양관 주변에는 일본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었고, 주기철 목사의 설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설교가 절정에 이르자, 경찰들은 일제히 <쥬~지! 가이산!> 즉, <중지하라! 해산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공권력이 주기철 목사의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정치가 종교를 짓뭉개 버린 것이다. 결국 그 집회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고, 목사, 선교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일제가 목사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설교를 선동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면 당시 주기철 목사님의 설교를 요점 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김린서 지음, 한국교회 순교사와 그 설교집, 1962. p.174下 참고).
「오늘의 목사는 곧 선지자요, 예언자이다. 우리는 여러 예언서에서 선지자의 권위를 찾아볼 수 있지만, 특히 엘리야에게서 잘 볼 수 있다. 북조(北朝) 이스라엘의 7대 왕 시대는 남조(南朝)의 여호사밧 때와 함께 부강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물질의 풍성은 정신적 부패를 가져왔다... 이세벨은 당대의 여걸이요, 열열한 우상 숭배자였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과 바알의 구별이 없어졌고, 도덕적으로 부패했고, 정치적으로는 권력 계급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백성들을 견책하며 특히 왕가(王家)를 향하여 사정없이 공격했다...오늘 목사의 권위는 서 있는가? 못 서는가?」
이 설교를 듣고 있던 일본 경찰들은 <아합>을 <천황>을 암시하고, <바알>은 신사를 공격하는 것이 분명했으나, 그 말이 수사권을 발동시키지는 못했다. 주기철 목사는 다시 <예레미야의 권위>라는 대지의 제목으로 두 번째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이었으나, 굵은 베옷을 입고 40년 동안 망해가는 조국을 향해 울면서 ‘유다는 망한다!’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다, 전승에 의하면 민족주의자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고 한다. 당시 <평안하다> <나라가 잘 되어 간다> 는 집권 당국과 시대에 아부하는 자가 많았음에도, 예레미야는 비록 혼자였지만, 말씀대로 외치는 참 선지자였다. 선지자는 <멸망의 경고>와 <장래의 소망>을 분명히 가르치는 것이 사명이요, 선지자의 권위이다!」 여기까지 말할 때도 일본 경찰들은 가만히 있었다.
계속해서 주기철 목사는 <세례 요한의 권위>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증거 하기 시작하면서 <일사각오(一死覺悟)>를 결심하게 된다. 그의 설교는 다음과 같다.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은, 임금 앞이라고 해서 할 말 못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담대하게 헤롯의 죄를 책망하면서 존 낙스의 예를 들었다. 존 낙스는 가톨릭 여왕 메리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녀에게 번번이 직언을 하였다. 결국 메리 여왕은 존 낙스를 보기만 해도 벌벌 떨었다. 종교 개혁 시대, 마틴 루터(M. Luther)는 재판을 받으러 갔을 때,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당시 루터는 <내 글은 성경대로 기록했으니 한 마디도 취소할 수 없다!>라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생사여탈의 대권(大權)을 쥐고 있는 임금 앞에서, 그 죄를 책망하는 세례 요한도 <일사각오>였다. 낙스도, 루터도 <일사각오>였다. 일사각오 후에야 예언자적 권위가 서는 것이다! 여러분! 몰라서 말을 못하는가! 왜 벙어리 개가 되었는가? 오늘 목사도 <일사각오> 연 후에 할 말을 하고, 목사의 권위에 선지자의 권위가 서는 것이다. 일개 경찰관 앞에서 절절매고 있는가!」
여기까지 듣고 있던 경찰들은 <쥬~지! 가이산, 中止! 解散!>이라고 소리쳤다. 그 후 주 목사님은 제4차 검속되어 그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옥중에서도 설교했다. 그런데 평양 노회는 주기철 목사를 파면하고, 산정현 교회를 폐쇄했다. 주기철 목사님과 손현보 목사님의 메시지는 다르지 않다.
손현보 목사님이 감옥에 가 있다. 그런데 그 교회 사람들은 과거 평양노회가 했던 것처럼, 일부 목사·장로가 오히려 손 목사님을 탄핵하겠다는 말이 들린다.
순교자의 전통을 이어왔다는 교회가, 맞기는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