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세의 성막을 계승한 솔로몬 성전, 크기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
성막에서 성전으로, 계승과 확장의 의미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할 때 철저히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성막의 설계도를 계승했다. 성전의 구조와 기구는 성막을 확대한 형태였다. 이는 성전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 곧 죄인이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막이 이동식 구조였다면, 성전은 고정된 영구적 건물로 자리 잡았다. 그 변화는 곧 이스라엘 공동체가 광야의 나그네 길을 지나 약속의 땅에 정착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단순히 모세의 성막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 아니었다. 성전은 성막보다 훨씬 더 웅장하게 지어졌다. 성전의 크기, 장식, 기구 하나하나에 ‘확장’과 ‘강조’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와 제사의 비중이 이스라엘 공동체 삶의 중심임을 드러내는 신학적 메시지였다.
초대형 제단 : 희생 제사의 비중을 드러내다
역대하 4장은 성전 제단의 크기를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길이 20규빗(약 9m), 너비 20규빗(약 9m), 높이 10규빗(약 4.5m)에 이르는 제단은 성전의 폭과 거의 맞먹는 거대한 규모였다. 제단은 제사의 중심 무대였기에, 이처럼 크게 만든 것은 제사의 중요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희생 제사는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니라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제단 위에서 피 흘려 드려진 제물은 죄 사함과 화해를 상징했다. 따라서 성전 제단의 크기는 제사의 절대적 필요성과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서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강조한다. 오늘날 독자가 이 기록을 바라볼 때, 크기에 집착하는 건축적 호기심을 넘어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단절과 그 회복의 통로를 어떻게 마련하셨는지를 묵상할 필요가 있다.
성전의 ‘바다’ : 정결과 거룩의 상징성
성전 안에는 또 하나의 초대형 기구가 있었다. 바로 제사장이 제사 전에 몸을 씻는 물 대야였다. 역대하 4장은 이 대야의 크기를 지름 10규빗(약 4.5m), 높이 5규빗(약 2.3m), 둘레 30규빗(약 13.5m)으로 기록한다. 그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사람들은 이를 ‘바다’라 불렀다.
제사장의 정결 예식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필수적 절차였다. 몸을 씻지 않고는 성전의 거룩한 영역에 들어설 수 없었다. ‘바다’라는 이름은 단순한 물통 이상의 상징을 내포한다. 그것은 죄와 불결함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표징이었다.
또한, 성전 안에 바다와 같은 거대한 물 대야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 즉 혼돈의 바다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연결되어 있다. 바다는 단순한 정결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질서와 주권의 상징이기도 했다.
숫자와 크기에 담긴 신학적 메시지
솔로몬 성전의 제단과 바다는 단순한 과시용 건축물이 아니었다. 모든 치수와 규모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신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제단의 거대한 규모는 ‘죄 사함을 위한 희생’의 절대적 필요를, 바다의 방대한 크기는 ‘정결과 거룩’의 필연성을 상징했다.
더 나아가 성막에서 성전으로 이어지는 계승 구조는 신앙 공동체의 정착과 확장을 반영한다. 하나님은 유랑하는 광야의 백성과 함께하시던 분이자, 가나안에 정착한 공동체의 중심으로 여전히 임재하시는 분이었다. 따라서 성전의 크기는 단순히 물리적 웅장함이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시각적으로 새기게 했다.
오늘날 성전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달라졌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단번에 드려진 희생 제사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결이 이제 믿는 자의 삶 속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대하 4장에 기록된 성전의 거대한 제단과 바다는 여전히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 죄 사함의 필요, 정결함과 거룩함의 가치 말이다.
솔로몬이 성막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전을 건축하면서, 제단과 바다를 거대하게 세운 것은 단순한 건축적 선택이 아니라 신학적 선언이었다. 제단의 크기는 희생 제사의 절대성을, 바다의 규모는 정결함의 필연성을 드러냈다. 모세의 성막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확장한 솔로몬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크기 속에 담아낸 것이다.
오늘날 교회 건축이나 신앙 공동체의 삶 역시 본질적으로 동일한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경외, 그리고 죄와 불결함에서 떠나 거룩으로 나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역대하 4장이 지금도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