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추방

최민

인간은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이기에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 존재에 관한 깊은 고찰을 해 본적이 있었던가. 도대체 인간은 무엇이기에 고찰해야 할 만큼 복잡한 존재인가. 근심 걱정 없는 상태가 행복이라면 불행은 무엇인가.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 상태가 불행인가.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인간 존재에 대해 저 밑바닥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러시아 시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추방’은 영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으면서 또 한 편으로는 편했다. 이 이중적 구조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영화 ‘추방’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러시아 시골, 황량하고 고립된 고향 마을로 가족을 데리고 돌아온 알렉스, 그 황량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결핍을 만들어 내고 고독에 묻혀버릴 것 같은 묘한 쾌감마저 든다. 러시아 영화가 주는 미묘한 상징들이 곳곳에 가득 차 있다. 알렉스가 짊어진 서사의 깊이를 이 황량함이 대신해 주는 느낌이 든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이 추구하는 영상미는 인간의 감정을 하나하나 자연과 연결시키며 강렬함을 주고 있다. 그 강렬함에 중독되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게 된다. 

 

폐쇄적인 사회, 소통이 없는 사회에서 정신적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고 소통을 습관적으로 피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특히 오랫동안 지속된 공산 체제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여 주고 있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 체제 탓만은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인생을 마음먹은 대로 살았던 적이 있던가. 정적이 사회, 정적인 가정이 주는 고립감은 나무에 붙어사는 벌레처럼 삶을 갉아먹고 종래에는 그 나무까지 무너트리고 만다. 그 고립의 위험성을 영화 ‘추방’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알렉스는 총상을 입고 찾아온 형 마크의 응급 치료를 한 뒤, 도시 생활을 떠나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아버지가 살던 시골의 옛집으로 돌아간다. 시골에 정착한 알렉스는 뭔지 모를 불안감에 싸여 있는 것 같은데 어느 날 아내 베라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임신은 했지만 당신 아이는 아니라고 고백한다. 알렉스는 베라의 말에 충격을 받지만 애써 이 상황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알렉스는 강압적으로 베라에게 낙태를 요구한다. 결국 알렉스는 동네 사람들 몰래 의사를 데려와 베라에게 강제로 낙태 수술을 받게 한다. 

 

“그녀가 좀 이상한 것 같아”

 

알렉스는 베라가 죽기로 결심한 사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베라는 낙태 수술로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죽고 만다. 베라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 있기도 전에 형도 죽고 만다. 알렉스는 슬픔을 억누르며 시골집을 폐쇄하고 아이들은 지인에게 맡긴 체 형 마크가 준 총을 자동차 수납함에 넣고 로버트를 찾아간다. 베라에게 임신을 시켰다고 믿는 로버트를 죽일 작정이었지만, 자동차 수납함에서 권총을 꺼내다가 형 마크가 넣어 논 베라의 편지를 발견한다. 

 

로버트와 마주 앉은 알렉스는 베라가 우울증으로 자살했을 때 도와준 사람이 로버트였으며 베라 배 속에 있던 아이는 바로 알렉스의 아이였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알렉스의 무관심 속에서 우울증으로 죽어가던 베라, 베라의 고통을 눈치채지 못했던 알렉스는 결국 베라와 배 속의 아이까지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알렉스는 깊은 절망에 빠져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자신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자책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고향을 떠나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도 그 허허롭던 풍경이 잔상처럼 마음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아이들이 맞추는 퍼즐놀이, 안개 낀 숲길, 물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장면들은 우리의 감정선을 강하게 끌어들인다. 그 감정 안에서 베라의 두려움과 불안이 그대로 마음 안에서 요동치는데 알렉스의 담담하고 말 없는 표정과 뒤엉켜 묘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이토록 무심함과 이토록 침묵적인 감정과 이토록 매혹적인 풍경이 만들어내는 영화의 공허감은 무엇일까. 거대한 슬픔에 압도당했지만 그 압도의 강도를 고독으로 견뎌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알렉스와 베라, 그리고 형 마크의 절제된 몸짓, 무표정, 침묵과 눈빛은 과잉되지 않았지만, 모자라지도 않았다. 러시아라는 이미지와 어울렸지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의 구조를 파헤쳐보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냉담한 서사라는 비판이 존재하지만 나는 ‘추방’이 주는 이미지에 더 마음이 끌린다. 서사도 나쁠 건 없는데 시각으로 말하는 영화가 아닐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추방’은 철학적 은유다. 가족이라는 은유, 사랑이라는 은유, 배신이라는 은유를 통해 인간 존재를 묻고 있다. 그러나 난 인간 존재에 대해 아직도 답을 얻지 못했다. 아마 영영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베라는 말한다.

 

“죽음을 위한 탄생을 만들어주고 싶진 않아요”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5.10.07 11:39 수정 2025.10.0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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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