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엽 칼럼] 집(House vs Home)

정동엽

[수상소감]

 

부족한 사람의 글을 좋게 보아 당선시켜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문학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안전하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미안 뉴스는 AI시대에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리는 의미 있는 매체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칼럼] 집(House vs Home)

 

역사와 함께 건설은 시작되었다. 인류의 조상들은 혹독한 자연환경과 맹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동굴 같은 곳에서 모여 살았다. 불을 발견한 뒤 사람들은 화롯가에 모여 살았고, 이것이 집의 기원이었다. 집은 외부로부터 나와 가족을 지켜주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수천 년이 지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은 도시를 만들었고, 인구 증가와 함께 집은 점점 높아져 100층이 넘는 건물까지 생겨났다. 첨단 과학, 막대한 자본, 수많은 노동력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며칠 전 후배의 집들이에 갔다. 신축 아파트 단지는 세련되고 깨끗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40평이 넘는 넓은 공간과 대리석 주방, 샹들리에, 고급스러운 거실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후배 부부와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그 집의 온기를 증명했다. 그러나 집값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지역이 서울의 부촌도 아닌데 가격은 상당히 높았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신혼부부가 열심히 맞벌이를 해도 마련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둠 속 고층 아파트들의 불빛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아파트가 밤늦도록 환히 빛나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작아지고 자괴감이 들었다. 중산층 이하의 삶은 점점 위협받고, 행복은 집값과 정비례하는 듯 보였다. 경제적 위기가 닥쳐 집을 잃는다면 과연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집은 소유 여부와 평수, 가격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도구가 되었다. 집이 없으면 평생의 한이 되고, 집이 있어도 더 큰 집을 향한 욕망은 끝이 없다. 심지어 상류층도 불안과 공허에 시달린다. 결국 문제는 ‘집값’이 아니라 ‘집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이다. 집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개념으로 돌아갈 때 제 역할을 한다. 태곳적 화롯가에서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앉던 시간처럼, 집은 관계와 인간성을 회복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수십억의 저택에서도 불행할 수 있고, 작은 월세집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소유에서가 아니라 존재에서 비롯된다.

 

한 가정의 행복지수는 집의 가격과 정비례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실제로 이혼한 가정의 첫 번째 이유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생활고였다. 남편이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하여 수입이 단절되거나 감소하면 많은 빚과 함께 생활고에 빠지게 되는데 사랑에 뿌리를 둔 부부관계도 금세 금이 가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행복은 사라지고 자존감은 급격히 하락한다.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심한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새 이 지역에서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경우가 몇 번 있기도 했다. 그것도 어린 자녀와 함께.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들은 좀 더 고급스럽고 평수도 넓고 가격도 비싼 집을 원하고 있다. 그런 집을 소유하면 나의 가치와 자존감, 행복지수도 동반 상승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집을 소유하면 정말 그렇게 될까? 여기에는 상대적 빈곤이란 개념이 존재한다. 중산층이지만 좀 더 높은 중산층이 존재하고 그 위에는 상류층이 있다. 더 높은 중산층마저도 상류층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의식이 있다. 이 피라미드 구조는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더 심해진다. 수백억의 재산을 소유하고도 불안 증세를 호소 하고 고독과 허무함, 공허감에 시달리고 마침내 인생의 의미를 잃은 채 쓸쓸히 지내다가 생을 마감하거나 때로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일반 서민들은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들의 행동을 솔직히 잘 이해하지 못한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5년 3월 기준, 전국 주택매매가격지수는 96.2 (기준 2021.6 = 100.0)로, 과거 기준보다 낮아진 상태다. 같은 시점 전세가격지수는 93.7로, 매매 대비 전세의 상대적 하락폭이 크다. 즉, 집값 상승 압력이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며, 특히 대출·부담 측면에선 여전히 큰 압박이 존재한다. 주택 구입 부담도 여전하다. 한국의 주택구 입 부담지수(K-HAI, 중위소득 가구의 대출 상환 부담 지표)는 전국 평균 기준으로 주택 구입 능력 대비 부담 수준이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 이 지수가 높다는 것은, 중산층 가구가 평균 집을 사기 위해 감당해야 할 원리금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 

 

이혼 및 경제 문제의 상관성도 유의미한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혼인 건수는 약 22만 2천 건, 이혼 건수는 약 9만 1천 건이다. 과거 통계 분석을 보면, 이혼의 주요 사유 중 하나로 ‘경제 문제(금전적 곤란)’가 일정 비중을 차지해 왔다. 사회학 연구에서는 여성의 경제력 증가, 개인주의 확산, 기대치 변화 등이 이혼율 상승 배경으로 거론된 바 있다. 한국 학술 정보(KCI)에서 이 통계들은 단순 수치가 아니라, 개인 경험과 사회 구조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집값의 부담이 늘고 경제적 안정이 흔들릴수록, 가정생활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것이다. 

 

21세기 인류는 놀라운 문명을 이루었지만, 기후위기와 불평등은 여전히 심각하다. 개발은 자연과, 도시 개발은 사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제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도시와 시골이, 부자와 서민이, 자본과 일자리가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모두가 살 수 있는 사회가 된다. 공공주택 확대, 공동체 회복 운동, 인문학적 교육 강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집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집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좋은 집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그 집을 가치 있게 만든다. 집은 House가 아닌 Home이 되어야 한다.

 

작성 2025.10.23 07:25 수정 2025.10.2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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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