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5년 10월 25일, 서울대 인문대학 일대에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는 “사이비 역사학 및 뉴라이트 역사학 비판”을 표방했지만, 실제 현장은 달랐다. 식민사학적 관점을 공유한 학자들이 모여 민족사학을 사이비로 매도하며 일종의 ‘식민사학 부흥성회’를 방불케 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발표와 토론 내내 "객관적 역사학”이라는 이름 아래 민족사학을 조롱하거나 배제하는 발언이 쏟아져 이후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학문적 토론의 장이 아닌 ‘기억의 전쟁’을 재현한 그 현장은 한국 근대사 인식의 단층이 여전히 봉합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식민사학과 민족사학의 대립은 단순한 학문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해방 80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은 ‘기억의 전쟁’이며 한국 근대의 가장 오래된 미결 사건이다. 우리는 여전히 ‘누가 과거를 정의할 권리를 갖는가’를 두고 싸우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학은 단죄되지 않은 친일 구조 위에서 재편되었다. 조선총독부에 부역한 식민사학자들은 처벌은 커녕 대학과 교과서 체제를 장악했고 반면 독립운동의 전통을 잇는 민족사학은 제도 밖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식민사학은 제도적 승리, 민족사학은 도덕적 승리라는 해괴한 공식이 만들어졌다. 이 불균형이 바로 오늘의 대립을 낳은 구조적 뿌리다.
문제는 이 논쟁이 시민에게는 학자들의 감정싸움으로만 비춰진다는 점이다. 언론은 대개 ‘극우 왜곡 vs 국뽕 민족주의’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화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라는 피로감에 역사적 판단력을 잃게 한다. 이러한 피로감은 “둘 다 극단이다”라는 인식을 강화시키면서 결국엔 기존의 ‘정설’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동한다. 식민사관이 여전히 교과서의 언어와 제도권의 관성을 지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계 내부의 태도 또한 문제적이다. 식민사학은 ‘객관성’을 내세우며 시민의 감정을 배제하고, 민족사학은 ‘정체성’을 내세우며 도덕적 분노로 응집한다. 두 입장은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시민을 배제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한쪽은 “전문가의 진실”, 다른 한쪽은 “피해자의 도덕”으로만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시민은 언제나 듣는 자리에만 머문다.
따라서 우리의 질문은 이제 달라야 한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왜 이런 해석이 가능해 졌는가”를 묻는 것이 역사교육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역사교육의 목표는 정답 주입이 아니라 해석의 권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습자들이 직접 사료를 비교하며 체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역사교육이 다양화 되어야 한다. 이 때 교사는 ‘정답의 전달자’가 아니라 ‘사관의 구조를 드러내는 안내자’여야 한다.
한편, 민족사학 역시 감정적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진정한 민족사학은 “우리의 위대함”이 아니라 “누가 역사에서 지워졌는가, 누구의 고통이 말해지는가”를 묻는 학문이어야 한다. 역사교육은 상처의 반복이 아니라 책임의 윤리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를 되찾는 일은 복수의 언어가 아니라 공공의 윤리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립의 본질은 ‘역사 서술의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다. 그 권리가 특정 학자 집단의 전유물로 남는 한, 역사는 언제든 정치적 무기로 전락한다. 그러나 그 권리가 시민에게 돌아올 때 역사는 더 이상 시험 과목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언어가 될 것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기억이 아니라, 기억을 해석할 자격이다. 그것이야말로 '해방 이후의 진정한 해방'일 것이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