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점 하나, 숨 하나

마침표의 시적 정서 읽기

1. 들어가기

 

시에서 마침표는 내용과 의미의 완성을 암시한다. 마침표 뒤에 이어지는 시적 정서와 여운은 마침표 자체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대신 시의 내용과 그 의미의 맥락에서 발생한다. 마침표는 시의 내용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독자에게 여전히 열려 있도록 한다.

 

물론 시적 정서가 ‘열린 종결’ 혹은 ‘미완성 형태’로 계속해서 발전할 때도 많다. 만약 정서의 흐름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싶다면 줄임표(……), 물음표(?), 느낌표(!) 등의 다른 문장 부호가 더 적합할 것이다. 마침표는 내용과 의미의 완료를 선언한다. 완성된 종결이 독자에게 여운을 주는 것이다. 마침표는 문장을 마무리하는 기능을 갖지만, 그 자체로 여운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여운은 보통 문장의 내용, 운율, 심상, 의미, 마침표 이후의 여백과 침묵 등이 결합하여 생기는 해석적 효과이다. 여운을 풀어 나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2024년 교육부 검정, 창비 발행 『고등학교 문학』(2025)에 실린 김소월(1902~1934)의 「접동새」(227쪽)에는 초판본(중앙서림, 1925) 원문(198~199쪽)에 하나도 없는 마침표를 2~5연 끝에 하나씩 찍었다. 천재교과서 발행 『고등학교 문학』(2025)에 실린 윤동주(1917~1945)의 「쉽게 씌어진 시」(200~201쪽)에는 초판본(정음사, 1948) 원문(50~51쪽)과 동일하여 이 글에서는 원문과 동일한 텍스트로 간주한다. 동아출판 발행 『고등학교 문학』(2025)에 실린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229~230쪽)에는 초판본 원문과 달리 쉼표를 마침표로 세 곳(1, 2, 9연 끝), 쉼표를 생략하여 공백으로 두 곳( 8연 끝, 9연 1행 끝)을 변환하였다. 

 

문학 교과서 시에 원문과 달리 마침표를 삽입하거나 변형하는 유사한 사례가 있다. 원문 이후 참고 문헌을 그대로 반영한 사례도 변형에 동의한 결과적 산물이다. 이는 읽기, 표현, 언어, 문학의 유기적 원리 이해라는 국어 교육의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이다. 시행 끝에 마침표를 추가하거나 변형하여, 시적 정서를 특정 의미로 변화시킨다. 이는 보편성의 표준 해석을 유도하기 위한 교육적 편집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시 교육이 시적 정서의 체험이라면, 원문과 교과서 사이의 호흡 차이를 학습자에게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왜 이곳에 마침표를 찍었을까?” 혹은 “생략했을까?” 이런 질문만으로도 해석의 문법과 상상력은 풍성해진다. 이는 평가 지향적 읽기에서 체험 지향적 읽기로 이동하는 첫걸음이다.

 

마침표와 관련한 선행 연구는 임유종이 『한국문화 연구, 제2집』(1997.12.)에 발표한 「시의 문장 부호 사용에 관하여」에서 파편적 연구이긴 하지만, 기술한 부분이 있다. 그는 “시에서 마침표의 사용은 자의적이다.”(192쪽)라며 강조하면서 “마침표가 사용되면 앞선 내용을 독립적으로 단절시켜 주는 의미 효과가 있고 사용되지 않는 경우는 앞뒤 내용의 연결성이 강화될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이는 낭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195쪽)라며 주장했다. 여기서 ‘자의적’이라는 표현은 시인이 정서나 형식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시의 음악성, 음성적 리듬, 언어적 선택, 심상 등도 시적 정서의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침표만으로 정서를 완전히 규명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이를 고려하면서 마침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초판본의 원문과 교과서 비교’, ‘철학적 해석: 존재, 침묵, 해석’,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별 분석: 시적 정서의 닫힘과 열림’, ‘나가기’ 순으로 살펴보려 한다.

 

 

2. 초판본의 원문과 교과서 비교

 

초판본의 원문과 교과서에서 마침표의 유무와 그 위치에 따라 시적 정서의 흐름은 미세하게, 때로는 크게 달라진다. 김소월의 「접동새」와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를 중심으로, 초판본의 원문과 교과서가 어떻게 정서의 흐름과 해석을 변화시키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먼저 아래 표1에서 두 시의 마침표 전략 비교를 요약하여 읽어 본다.

 

 

시에서 마침표는 정서의 흐름을 끊기도 한다. 한순간에 멈추기도 한다. 마침표를 통해 시의 정서가 어떻게 형성하고, 변형하는가? 이를 이해하는 것은 시 해석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이런 의문만으로도 시적 정서와 해석의 여백을 확장할 수 있다. 

 

특히 교육적 목적을 가진 교과서는 마침표를 삽입하거나 생략하는 방식으로 시적 정서의 닫힘 또는 열림을 해석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텍스트의 해석 방향이 크든 작든 달라질 수 있다. 시가 갖는 정서의 여백과 열린 해석을 중시하는 원문, 해석을 명확하게 유도하려는 교과서, 이 둘 사이에는 호흡의 차이가 있다. 요컨대 교과서 편집은 호흡의 리듬을 재구성한다. 

 

먼저 두 시의 원문을 비교하여 마침표가 어떻게 시적 정서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확장시키는지 살펴본다. 이를 교과서와 비교함으로써 문학 교육에서 편집이 갖는 의미를 논의할 것이다. 각 시의 원문이 가진 정서의 흐름, 교과서가 주는 정서의 ‘종결’ 혹은 ‘확장’의 효과, 이를 비교 분석한다. 이를 통해 시의 해석에서 문학 편집이 영향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살펴본다. 가급적 원문의 띄어쓰기와 붙여쓰기를 그대로 살리면서 한문은 괄호 처리를 하여 읽어 본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접동 

 

진두강(津頭江)가람 가에 살던누나는 

진두강압마을에 

와서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뒤쪽의 

진두강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너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죽은 우리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니저 참아 못니저 

야삼경(夜三更) 남다자는 밤이깁프면 

이산 저산 올마가며 슬피웁니다 

 

― 김소월, 초판본 원문 「접동새」 전문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김소월, 창비 교과서 「접동새」 전문

 

 

「접동새」는 김소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슬픔과 애절한 정서가 중심에 놓인 시이다. 원문과 교과서를 비교해 보면, 마침표의 사용 여부와 위치에 따라 정서의 흐름과 해석이 달라진다. 원문에서 마침표를 채택하지 않은 점은,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의 흐름을 강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시행들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고 음악성을 갖춘 흐름으로 이어 간다. 독자가 각 시행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거나 상상하고, 반응할 수 있는 호흡을 제공한다. 이때, 각 시행은 끊임없이 연결된다. 독자는 불완전한 호흡이나 끝나지 않은 정서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시 전체는 하나의 연속적인 시적 정서로 이어진다. 독자는 마치 끝없는 시간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원문에서 마침표를 채택하지 않은 것은, 독자에게 감정의 흐름을 끊어짐 없이 지속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교과서는 문법적 명확성을 우선시하지만, 시의 원래 흐름과 정서를 제한할 수 있다. 마침표의 명확한 구분이 오히려 독자의 창의적 해석을 제약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시는 고정된 해석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의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두는 것이 특성이다. 따라서 원문이 가진 정서적 깊이를 온전히 느끼려면, 마침표 없이 시를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원문의 “누나는 /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라는 4연 결행은 마침표가 없다. 이는 슬픈 접동새 설화로 이어지는 정서를 더 강하게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 시적 화자의 고통과 상실이 한순간에 드러난다. 그 정서가 더 길게 울리도록 하는 효과이다. 반면, 교과서에서는 마침표가 2~5연 끝에 4회 등장한다. 이 마침표는 때로는 시의 흐름을 끊고, 때로는 정서의 흐름과 여백을 만들어 낸다. 독자가 시를 읽을 때, 연마다 정서를 정리하게 만드는 효과를 일으킨다. 이때 마침표가 정서를 명확하게 구분 짓고, 시의 흐름을 단절시킨다. 교과서에서도 1연의 “접동 / 접동 / 아우래비 접동”의 끝에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이는 원문 그대로 청각적 심상과 리듬을 타고 흐르는 음악성을 살리기 위함일 것이다. 소쩍새의 가청적 울음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청각적 심상의 정서를 열어 놓은 것이다. 

 

원문은 마침표 없이 흐름과 정서를 지속시킨다. 교과서 수록본은 마침표로 인해 정서를 단절하거나 정리하도록 유도한다. 마침표는 시적 정서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독자가 시를 해석하는 방식에도 침투한다. 마침표의 유무나 위치에 따라 독자는 시의 흐름을 다르게 경험한다. 원문에서 마침표를 생략하여 그 여백을 통해 슬픔과 고통이 계속해서 밀려오는 효과를 준다. 반면, 교과서에서는 마침표를 통해 시의 정서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독자가 간결하고 일관성 있게 해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로 말미암아 원문은 더 넓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교과서는 상대적으로 정서의 범위를 좁히는 경향을 보인다.

 

두 텍스트의 차이는 단순히 문법적인 차이를 넘어서, 시적 정서의 흐름과 해석의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원문에서 마침표의 사용을 통해 정서가 흘러가고 여백을 만드는 방식은 시의 흐름을 더 자유롭게 한다. 교과서에서는 정서를 좀 더 고정적으로 보편성의 해석으로 나아가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교과서가 훌륭한 시를 망쳐 놓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교육 목적과 부합한 시의 감상과 해석 효과가 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초판본 원문 「쉽게 씌어진 시」 전문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동아출판 교과서 「쉽게 씌어진 시」 전문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원문과 교과서 두 텍스트 간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 마침표가 시의 해석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그 차이로 인해 독자가 느끼는 정서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쉼표와 마침표의 사용에 대한 부분은 시의 리듬과 역동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런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원문에서 쉼표와 마침표를 번갈아 채택한 점은, 문장이 이어지는 듯하면서도, 때로는 정서를 멈추게 하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이는 시의 리듬에 영향을 미친다. 독자가 시의 흐름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멈춘다. 다시 되새기며 사유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반면, 교과서에서는 쉼표를 마침표로 바꾸고, 일부 쉼표를 생략하여, 문장의 흐름이 더 단단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 방식은 시를 정확하고 명확한 해석으로 유도하려는 교육적 전략일 것이다. 그만큼 시의 불확실성이나 모호함을 제한할 수 있다. 시에서 불확실한 여백이 주는 의미를 소홀히 여길 위험도 도사린다.

 

원문에서 쉼표와 마침표를 번갈아 채택하여 역동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 독자는 각 시행에 멈춰서 자기만의 해석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마침표로 모든 문장을 마감하여 시의 의미를 일관된 해석으로 좁히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독자마다 호흡의 개인차가 있지만, 통상 쉼표는 한 박자, 마침표는 세 박자 정도 쉰다. 원문과 교과서는 이런 호흡의 변화가 있다.

 

이는 편집 방향에 맞게 학생들이 시를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하지만 시의 중첩적, 다성적, 다층적인 의미나 복합적인 정서의 흐름을 시인의 의도와 다르게 느끼거나 해석할 여지가 있다.

 

또한, 교과서에서도 원문의 6연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라는 물음표를 그대로 채택한 이유는 시적 정서의 전환 효과를 살리기 위함일 것이다. 시적 정서의 전환 효과에는 마침표보다는 줄임표(……), 물음표(?), 느낌표(!) 등이 더 적합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읽힌다. 이와 같은 교육 해석학적 접근을 철학적 해석으로 확장하여 읽어 본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5.11.19 10:34 수정 2025.11.1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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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