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이스탄불의 야경, 그 뒤에 숨겨진 짙은 그림자
이스탄불의 저녁, 보스포러스 해협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지면, 수천 개의 모스크에서 아잔(Adhan) 소리가 울려 퍼진다. 갈라타 다리 위에는 고등어 케밥을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관광객들은 이 신비로운 오리엔트의 정취에 취해 셔터를 눌러댄다. 겉보기엔 여전히 아름답고 활기찬 제국의 수도다. 하지만 그 화려한 풍경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썩어문드러진 살점이 보인다.
한때 '유럽의 호랑이'라 불리며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튀르키예. G20의 당당한 일원이자,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하던 희망의 나라. 그러나 지금 그곳에는 희망 대신 절망이, 번영 대신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만이 남아 있다.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선 노인의 굽은 등과, 조국을 등지기 위해 이민 가방을 싸는 청년들의 눈망울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이 아름다운 땅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이제, 수백 년 동안 오스만제국 때부터 이어진 눈부신 황금기가 어떻게 참혹한 몰락의 서막이 되었는지, 그 서늘하고도 비극적인 5가지 장면을 복기해보고자 한다. 이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모두 경계해야 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과정에 대한 생생한 부검 보고서이다.
1. 달콤했던 독배: 성공이라는 이름의 마취제
2002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등장했을 때, 튀르키예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다. 그는 부패한 기득권을 청산하겠다고 외쳤고, 서방 세계는 그를 '온건한 이슬람 민주주의자'라며 치켜세웠다. IMF의 처방을 충실히 따른 결과, 경제는 연평균 7%씩 성장했다. 인플레이션은 잡혔고, 리라화에는 힘이 실렸다.
당시 이스탄불의 거리는 활력이 넘쳤다. 사람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꾸었고, EU 가입이 목전에 다가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달콤한 독배였다. 경제적 풍요는 국민의 눈을 가리는 안대와 같았다. "경제가 좋은데 독재면 어때?"라는 안일한 타협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성공에 취해 감시의 눈을 감아버린 그 순간, 권력은 서서히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배가 고플 때가 아니라, 배가 부를 때 가장 위험하다는 역설을 우리는 그때 깨달아야 했다.
2. 균열의 시작: 나무 한 그루가 쏘아 올린 거대한 공포
2013년 5월, 이스탄불 탁심 광장의 게지 공원. 쇼핑몰 건설을 위해 나무를 베어내려던 포크레인을 막아선 것은 소수의 환경 운동가였다. 하지만 정부의 무자비한 진압은 잠자던 시민들의 양심을 깨웠다. 좌파와 우파, 세속주의자와 독실한 무슬림, 튀르키예인과 쿠르드족.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 같았던 이들이 '반(反)독재'라는 깃발 아래 하나가 되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때 에르도안이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실존적 공포'였을 것이다. 그는 시위대를 향해 "약탈자(Çapulcu)"라 부르며, 이 모든 것이 국가 전복을 노리는 외세의 음모라고 규정했다. 그때부터였다. 그에게 국민은 더 이상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 편'과 '적'으로 나뉘는 전쟁의 대상이 되었다. 한때 국가 통합의 상징이었던 지도자가 스스로 국민 분열의 주동자가 된 비극적 순간이었다.
3. 신이 내린 선물: 피로 씻어낸 민주주의
2016년 7월 15일 밤,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하늘을 가르던 전투기의 굉음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군부의 쿠데타 시도는 시민들의 저항으로 하룻밤 만에 진압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비극은 동이 튼 후에 시작되었다. 에르도안은 이 참극을 두고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신의 선물이라니. 수백 명이 죽은 그 밤이 어떻게 선물일 수 있는가? 그것은 자신의 정적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쓸어버릴 수 있는 '명분'을 얻었기 때문이다.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광기 어린 대숙청이 시작되었다. 판사, 교사, 경찰, 군인 등 15만 명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거나 감옥에 갔다. 단순히 반대파를 제거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두뇌'와 '양심'을 도려낸 것이다. "설마 나까지?" 하던 공포가 "다음은 내 차례"라는 확신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튀르키예의 시스템은 뇌사 상태에 빠졌다.
4. 에르도안 경제학: 상식을 비웃는 대가
2017년, 개헌을 통해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쥔 술탄은 이제 경제학 교과서마저 새로 쓰기 시작했다. "이자는 만악의 근원이다. 금리를 낮춰야 물가가 잡힌다."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경악할 만한 이 궤변은, 튀르키예에서 거역할 수 없는 진리가 되었다.
이슬람 율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자신의 지지 기반인 건설업자들에게 싼 이자로 돈을 퍼주기 위한 꼼수였다. 시장의 복수는 냉혹했다. 2012년 1달러에 1.8리라였던 환율은 30리라, 40리라를 향해 끝없이 추락했다. 화폐 가치가 휴지 조각이 되자, 기괴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스탄불은 전 세계 관광객으로 미어터진다. 외국인들에게 튀르키예는 '가성비 천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식당 창문 너머, 현지 서민들은 정부가 싸게 파는 빵(Halk Ekmek)을 사기 위해 비를 맞으며 몇 시간씩 줄을 선다. 관광객에게는 천국, 자국민에게는 지옥. 한 나라 안에 두 개의 세상이 잔인하게 공존하는 것, 이것이 '에르도안 경제학'의 민낯이다.
5. 2430년의 형벌: 법치(法治)의 탈을 쓴 사법 살인
경제가 무너지자, 민심은 동요했다. 2019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샛별 에크렘 이마모을루가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것은 에르도안에게 뼈아픈 일격이었다. 2023년 재선에 간신히 성공한 에르도안은, 이제 가장 강력한 잠재적 대선 경쟁자인 이마모을루를 제거하기 위해 '사법부'라는 칼을 빼 들었다.
과거에 낡은 졸업장 문제를 트집 잡고, 억지스러운 모욕죄를 씌우더니, 급기야 테러 지원이니 간첩이니 하는 혐의들을 덧씌우기 시작했다. 검찰이 구형하는 형량의 숫자는 현실 감각을 잃었다. 수백 년, 수천 년의 징역형이 난무하는 튀르키예의 법정에서, '2430년'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형량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도전하면 뼈도 못 추린다"라는 섬뜩한 협박이자, 법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음을 알리는 사망 선고다. 정적을 투표가 아닌 감옥으로 보내 제거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질식사했다.

폐허 위에서 다시 묻다
지금 튀르키예의 청년들은 조국을 떠나고 있다. 2023년, 2024년 해를 거듭할수록 이민자 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그들은 배가 고파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상식이 통하지 않아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떠나는 것이다.
튀르키예의 비극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경제 성장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 한때 '유럽의 호랑이'였던 나라가 병든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깨어 있지 않은 시민을 둔 모든 국가가 맞이할 수 있는 섬뜩한 미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이지만, 무관심을 먹으면 순식간에 말라 죽는 연약한 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스포루스의 파도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구슬프게 들리는 것은, 그 속에 섞인 사람들의 한숨 소리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