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시대, 한반도의 '홀로서기'는 가능한가?

-혈맹의 유효기간은 끝났고, 철저한 손익계산서가 지배하는 '이익 동맹'의 시대가 도래.

-미국의 핵우산이 찢어질 때를 대비해, 일본 수준의 '독자적 핵 잠재력'을 반드시 확보해야.

-평화는 강대국에게 구걸하는 적선이 아니라, 힘과 전략을 갖춘 자가 쟁취하는 전리품.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2025년 겨울, 워싱턴에서 걸려 온 전화

 

2025년 11월의 어느 차가운 아침, 청와대 집무실의 붉은 전화기가 울린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다시 돌아온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외교적 수사가 생략된 날것의 요구를 던진다.

 

"한국은 부자 나라다.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을 공짜로 지켜줄 수 없다. 방위비 분담금을 지금의 5배인 100억 달러로 올리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전까지 주한미군 1개 여단을 괌으로 철수시키겠다. 그리고 나는 곧 김정은을 만날 것이다. 그는 나를 좋아한다."

 

전화는 끊겼다. 통역관의 손이 떨리고, 참모들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이것은 단순한 가상이 아니다. 머지않아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서늘한 현실의 예고편이다. 우크라이나에 떨어진 '11월 27일 최후통첩'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혈맹(우방)'이라는 따뜻한 단어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바야흐로 '청구서 동맹'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미국의 우산이 접힐 때, 우리는 비를 맞으며 떨 것인가, 아니면 우리만의 튼튼한 우비를 꺼내 입을 것인가.

 

환상의 붕괴: '피'보다 진한 것은 '장부'다

 

지난 70년간 대한민국 안보의 공기(Air)와도 같았던 '한미동맹'은 거대한 지각변동을 맞이했다. 우리는 흔히 미국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트럼프 2.0' 시대의 본질은 다르다. 그에게 동맹은 가치가 아니라 철저한 '손익계산서(Balance Sheet)'다. 적자가 나면 가차 없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비즈니스일 뿐이다.

 

이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는 6·25 때 함께 피 흘린 형제"라며 감정에 호소하는 외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바이든 시대의 '가치 동맹'은 트럼프 시대의 '이익 동맹'으로 빠르게 대체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낭만적인 동맹관(觀)을 폐기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상인의 현실 감각과 칼을 가는 무사의 비장함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생존 전략 1: 워싱턴의 언어로 설득하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미 협상의 언어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를 지켜달라"라는 하소연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는 것이 미국에 이득이다"라는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평택의 험프리스 기지를 보라. 그곳은 단순한 한국 방어 기지가 아니다. 중국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미국의 최전방 불침항모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 기지다. 우리가 트럼프에게 내밀어야 할 카드는 바로 이것이다.

 

"당신들이 한국에서 철수하는 순간, 태평양의 방어선은 일본 오키나와나 괌으로 후퇴해야 한다. 그 막대한 비용과 중국에 태평양을 내어주는 지정학적 손실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배터리 공장들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를 '방위비의 확장된 개념'으로 포함해 청구서를 다시 써야 한다. 트럼프는 숫자에 민감하다. 우리는 그가 거부할 수 없는 숫자를 만들어 내밀어야 한다. 안보는 이제 구걸이 아니라 거래다.

 

생존 전략 2: 고슴도치의 가시를 세워라

 

그러나 거래만으로는 부족하다. 거래가 깨질 경우를 대비한 '플랜 B', 즉 독자적인 힘이 필요하다. 미국의 핵우산이 찢어질 수도 있다는 공포는 우리에게 '자체적인 억지력'을 요구한다. 당장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핵무장을 선언하는 건 국제적 고립과 경제 제재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바로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Latent Nuclear Capability)'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 내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적, 물질적 토대를 마련해 놓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미 원자력 협정'의 개정이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여 핵물질의 농축과 재처리의 길을 열어야 한다.

 

동시에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과 괴물 미사일 전력을 비약적으로 증강해야 한다. 주변국, 특히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한국을 건드리면 우리도 치명상을 입는다"라는 공포를 느끼게 해야 한다. 사자처럼 상대를 물어뜯지는 않더라도,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고슴도치의 가시'는 반드시 필요하다.

 

생존 전략 3: 외교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지금까지 한국 외교는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리는" 구조였다. 미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동맹은 굳건히 하되, 미국이 흔들릴 때 우리를 지탱해 줄 다른 기둥들이 절실하다. 이것은 '배신'이 아니라 '위험 분산(Hedging)'이다.

 

우리는 '미국 올인' 전략에서 벗어나 외교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야 한다. 유럽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 그리고 IP4(인도태평양 4개국: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와의 연대를 강화하여 미국의 고립주의를 견제하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껄끄러운 관계인 일본과의 전략적 제휴도 냉정하게 고려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는 원칙 있게 대응하되, 안보 분야에서는 일본을 지렛대(Leverage)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가 한국을 패싱하려 할 때, 일본과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어 미국의 이탈을 막는 방파제로 삼아야 한다. 감정은 뜨겁게 가지되, 머리는 차갑게 식히는 '실리 외교'만이 난세를 헤쳐나갈 길이다.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다: 남남갈등의 늪

 

하지만, 이 모든 외부의 위협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우리 내부의 분열이다.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해오거나 북한이 핵으로 위협할 때, 우리 사회가 "미국 말대로 하자"는 쪽과 "반미 자주"를 외치는 쪽으로 극단적으로 갈라져 싸운다면, 우리의 협상력은 '제로(0)'가 된다.

 

적은 항상 성문 밖이 아니라 성벽의 틈새를 노린다. 트럼프나 김정은보다 무서운 것은 '남남갈등'이라는 안보의 구멍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초당적인 '대한민국 안보 독트린'이다.

 

외교·안보 문제만큼은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한목소리를 내는 '레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정치권은 표를 얻기 위한 선동을 멈추고, 국민들에게 냉혹한 국제 현실을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 방위비 증액이나 자체 무장 강화에 따르는 경제적 고통과 세금 부담에 대해 미리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국론이 통일되지 않은 나라는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쉬운 먹잇감일 뿐이다.

 

1905년의 무기력과 2025년의 의지

 

역사의 시계를 120년 전으로 돌려보자. 1905년 을사년, 우리는 힘이 없어서, 전략이 없어서 강대국들의 밀실 거래(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했다. 그때 우리는 비가 쏟아지는데 우산도, 우비도 없이 맨몸으로 서 있었다. 그 결과는 36년의 식민지라는 참혹한 겨울이었다.

 

그러나 2025년의 대한민국은 다르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6위권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다. 반도체와 배터리로 세계 공급망의 목줄을 쥐고 있으며, K-방산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힘이 아니라, 그 힘을 사용할 '전략'과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의지'다.

 

트럼프 2.0 시대의 파고가 아무리 높고 거칠더라도, 우리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비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정교한 생존 전략을 짠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강대국의 장기판 위에서 희생되는 '졸(卒)'이 아니다. 우리는 판을 흔드는 '키 플레이어(Key Player)'가 될 수 있다.

 

동맹의 청구서가 날아든 날, 우리는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평화는 구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적선이 아니라, 준비된 자가 쟁취하고 관리하는 전리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워싱턴을 향해 원망의 눈길을 보낼 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신발 끈을 동여맬 시간이다. 비는 내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젖지 않을 것이다.

 

작성 2025.11.22 21:44 수정 2025.11.2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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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