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시간을 타고 미래를 여행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구원할 수 있을까. 한 치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가끔 미래에 대해, 시간에 대해, 혹은 ‘나’라는 물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득하고 아득한 시간의 틈새에서 ‘나’라는 존재는 무슨 의미가 있을지 생각의 숲을 달려가 보기도 한다. 그런 생각은 사유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다. 소설로, 시로, 영화로, 노래로 풀어내면서 인간탐구 여행을 떠난다. 이번에 본 영화가 바로 그런 이야기 ‘루퍼스’다.
‘루퍼스’는 한 인간의 구원기다. 시간여행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아주 오래된 인간적인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충돌하며 삶은 반복되고 그 충돌 속에서 진정한 자신과 마주할 때 진정한 변화가 싹튼다. 그 변화가 바로 구원이다. 그 구원은 가장 어둡고 고독한 순간에 만날 수 있다. 자기 파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구원이 아니라 인간성 회복을 통해 ‘나’라는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 선택되지 않은 삶의 가능성은 젊은 나와 늙은 나의 운명을 시간처럼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그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황량한 들판 한 가운데, 할머니와 소년이 버스에서 내린다.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년에게 잘 적응하며 살라는 당부를 남기고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순식간에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이 사건을 맡은 경찰관 ‘휴’는 이 소년에게 할머니가 죽은 과정을 물어보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며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소년이 불쌍해 자기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게 된다. 경찰관의 아내는 소년 ‘루퍼스’의 행동이 마치 오래된 노인 같은 이상함을 느낀다. 노파의 시신을 조사하던 휴는 교통사고가 아닌 사람이 죽인 것 같은 흔적을 발견한다.
루퍼스에게 호기심을 보이던 이웃집 소녀 트레이시와 루퍼스는 가까워진다. 그러나 트레이시의 전 남친 클레이의 질투로 루퍼스와 클레이는 큰 싸움을 하게 되고 루퍼스는 감춰진 야생이 깨어나 죽기 직전까지 클레이를 짓밟는다. 이 일을 계기로 루퍼스와 트레이시는 더욱 가까워진다. 그러던 중 트럭 운전사에게 성폭행당할 위기에 처한 루퍼스는 트럭 운전사를 죽여버리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사람들은 루퍼스를 의심하게 되고 사실을 알게 된 트레이시는 다시는 살인을 하지 말라는 루퍼스에게 다짐을 받아낸다.
한편 휴는 죽은 노파의 감식 결과 노파가 한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 기록을 보고 어떻게 세계 최고령 노파와 여행을 떠난 것인지 그리고 너는 과연 누구이냐며 이 이상한 상황을 추궁한다.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루퍼스는 사실 죽지 않는 존재였다. 그는 과거 잔혹한 실험의 희생자였다. 그를 가둬두고 실험한 제약회사가 그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루퍼스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인간의 따뜻함과 정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과 고통스러운 과거에 괴로워하며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을 모르는 루퍼스는 몇 차례의 살인을 저지르는 위험한 존재이지만 휴와 그의 아내는 루퍼스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르친다.
휴와 그의 아내는 죽은 아들의 빈 자리를, 루퍼스를 통해 위로받는다. 그리고 루퍼스에게 있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거나 묻어 버리며 평범하게 살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루퍼스는 다른 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 앞에 루퍼스를 실험했던 브리스톨 앤더슨 제약회사 직원 반두센이 나타난다. 반두센은 루퍼스를 회사로 다시 데려가려고 한다. 루퍼스가 반두센에게 말한다.
“누구도 영원히 살아선 안 돼”
십대 상태로 영원히 살아야 하는 루퍼스는 수많은 시간을 겪었으면서도 여자 친구 트레이시에게 강한 질투를 느끼는 여전히 미성숙하고 몸도 마음도 덜 성장한 소년이었다. 때론 흔들리고 때론 방황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루퍼스에게 산전수전 다 겪은 트레이시는 말한다.
“섹스와 사랑을 혼동하지 마”
반두센은 휴를 찾아가 루퍼스를 데려가겠다고 하자 휴는 설사 루퍼스가 괴물일지언정 실험실 쥐가 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며 당장 이 마을을 떠나라고 경고한다. 우여곡절 끝에 휴는 루퍼스의 어두운 기록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루퍼스는 이 마을에서 휴가족과 함께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루퍼스처럼 젊음을 유지한 채 영원히 살아간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뱀파이어 같은 초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건 인간 삶에서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삶은 있는 그대로 따뜻함 하나면 된다. 소년 루시퍼의 초록색 눈동자, 곱슬머리, 얇은 입술, 깊은 눈은 참 인상적이다. 뭐랄까. 따뜻하면서 차갑고 차가우면서도 매력적인 모습이다. 색다른 주제를 잘 표현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인간이란 뭘까 하는 의문부호가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