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인생과 예술의 본질을 꿰뚫는 궁극적인 물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미루고 살아간다.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그저 바쁜 일상에 휩쓸려 본질을 묻는 일 없이 하루를 흘려보낸다.
음악을 가르치면서, 음악으로 먹고살면서도, 우리는 정작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그리고 질문 없는 삶은 언젠가, 지침과 회의감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혹시 지금 이 책을 펼치며,
“어떻게 하면 학원이 잘 운영될까?”,
“아이들을 어떻게 모을까?”,
“당장 필요한 운영 팁은 무엇일까?”만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은 어쩌면 당신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당장 필요한 기술만 찾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지금 덮어도 좋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음악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음악을 하는가,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정직하게 마주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왜냐하면 그 질문과 씨름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만의 길, 자기만의 방법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방법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본질을 꿰뚫은 사람의 방법은 얄팍하지 않다. 그의 방식은 흉내 내기 어려운 깊이와 진정성을 지닌다. 그 길은 늦어 보여도 단단하며, 그 가르침은 느려 보여도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당장 쓸 수 있는 ‘기술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 질문의 무게를 견디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동행의 책’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때때로 지치고, 이유 없이 방황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지 음악학원 운영자만을 위한 물음이 아니다. 음악을 배우는 이, 가르치는 이, 음악을 업으로 삼은 모든 이가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다.
나는 믿는다. 어떤 일을 시작함에 있어, 그 일이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자문하지 않은 채 나아가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다. 방향 없이 걷는 여정은 결국 지치게 되어 있고, 의미 없는 노력은 쉽게 좌절로 이어진다.
나에게 음악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과 매 순간 마주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리고 이 책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는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 음악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면, 이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 물음 없이는,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 해도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왜 여기에 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그리고 결국, 회의감 속에서 방향을 잃고 말 것이다.
나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성한 영역이며, 그 무엇으로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세계다. 때로는 행복이고, 때로는 경이로움이며, 어떤 날에는 신적인 감정 그 자체로 다가온다. 이성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차원의 감동과 깨달음이 음악 속에 존재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로 채워지길 원하고, 또 그 채워진 것을 세상 밖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위적인 채움과 배출은 언제나 한계를 가지며, 때로는 인간을 더 깊은 고립과 왜곡된 쾌락 속으로 밀어 넣는다. 특히, 어떤 이는 황홀경의 상태를 외부적 자극이나 약물에 의존해 얻으려 한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결국 육체와 정신, 영혼을 빠르게 파멸시키고 만다.
반면에 음악은 그와 다르다. 음악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채우고, 건강하게 흘러나오게 한다. 어느 순간 감정을 정제하고, 고통을 승화시키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게 한다. 그렇기에 음악은 인간에게 있어 단순한 예술을 넘어, 존재의 깊은 차원을 터치하는 궁극적인 도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은 다르다. 들을수록 내면이 맑아지고,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는 과정을 아무리 반복해도, 그 안에는 부작용이 없다.
나는 지금껏 클래식 음악을 너무 많이 들어서 정신이 병들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클래식 음악은 사람의 정서를 정화시키고,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며, 궁극적으로 안락함과 행복감을 증진시킨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그 음악이 주는 깊은 감정의 울림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나의 삶을 움직이는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준다.
나에게 음악이란 단지 직업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이다. 음악을 한다는 그 자체가 삶이며 기쁨이고, 음악 없는 하루는 상상할 수 없다. 나는 단 하루도 음악 없이 살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모든 인간은, 그 장르가 무엇이든 음악을 필요로 한다. 음악은 인류의 언어보다 앞서 존재했고, 우리는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끊임없이 음악과 함께 살아간다. 때론 거리에서, 때론 커피숍에서, 어떤 날은 조용한 공간의 ‘침묵 속 음악’조차 우리의 마음을 다스린다.
심지어 사람과의 대화 속에도 고유한 리듬과 음률이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 말의 높낮이와 떨림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만의 ‘음악’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음악은 삶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동반자다. 태어나기도 전, 많은 어머니들이 태아에게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려 애쓴다.
태아는 그렇게 세상과의 첫 만남을 음악으로 시작한다. 태어나 성장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회복하며 살아가는 모든 순간, 음악은 늘 곁에 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이별의 순간, 장례식장에 울려 퍼지는 종교 음악 속에서조차 음악은 우리를 품는다.
음악은 단지 순간의 감상이 아니라, 존재의 흐름 전체에 녹아든 신비한 언어다. 삶과 죽음을 잇는 다리이며,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궁극의 예술이다.
나는 유년 시절 잠시 클래식 음악, 특히 피아노를 배우다가 그만두려는 아이와 부모들을 자주 만난다.
그럴 때면 나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인간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음악과 함께합니다. 음악은 인간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안정된 정서는 학습의 깊이와 지속성을 높인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를 가장 자연스럽게 제공해주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을 삶 속에 깊이 스며들게 하는 일이다.
한국 사회에 ‘노래방’이라는 문화가 뿌리내린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감정을 해소하고, 기쁨을 회복한다. 이는 단순한 사회현상이 아니라, 음악이 인간의 정서와 행복감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가장 순수하고 고차원적인 감정의 통로로 작용한다. 이러한 경험을 꾸준히 접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정서적 안정감과 감성의 깊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아이의 정서적 성장과 건강한 인격 발달을 위해, 피아노를 놓지 마십시오. 이 선택은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감성적인 호소가 아니다. 과학적 연구와 심리학적 근거에 의해 이미 입증되고 검증된 사실이다. 나는 클래식 음악의 힘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 확신을 바탕으로, 많은 부모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 속에서 부모의 인식이 바뀌고, 그 변화는 결국 아이들이 음악을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클래식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이들 또한,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 질문과 마주하지 않고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단지 운영 전략과 커리큘럼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음악을 한다는 것, 그것은 단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과 마주하는 태도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다.
음악교육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먼저 이 질문과 씨름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이가 음악학원 창업을 준비 중이든, 이미 운영 중이든, 지금 이 순간부터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과거에 마주했던 질문이라 할지라도, 지금 그 질문을 놓고 있다면 다시금 그 물음과 마주해야 한다.
“나는 왜 음악을 하는가?”
“나는 왜 음악학원을 운영하는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사람은 더 좋은 음악인이 되기 위해, 더 깊이 있는 교육자가 되기 위해, 더 나은 아카데미 운영자가 되기 위해 애쓰게 될 것이다. 반면, 방법만을 좇는 사람은 늘 우왕좌왕하게 마련이다.
방법은 외부에서 빌릴 수 있지만, 그 방법을 흔들림 없이 붙잡을 수 있는 중심은 오직 질문에서 온다. 질문이 깊은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질문이 있는 사람은 결국 길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