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는 것인가, 해석하는 것인가
— 시각과 인식이 만든 예술의 과학
인간의 인식 체계에서 ‘보는 것’은 단순한 감각 행위를 넘어선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시각’이 단지 외부 세계를 반영하는 창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도구라고 주장해 왔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에서 인간이 보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그림자라고 말했다. 이는 시각이 실제보다 해석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현대 인식론에서도 ‘보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빛의 수용이 아니다. 눈은 외부 세계를 수용하는 도구이지만, 그 결과를 ‘의미’로 변환하는 것은 뇌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주관적 인식의 결과물이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지각은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참여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존재이자, 동시에 그 세계를 해석하고 만들어내는 존재다. 결국 시각은 존재와 세계의 관계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행위인 셈이다.
과학은 철학의 직관을 실험으로 증명해왔다. 신경과학의 발전은 ‘보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복잡한 뇌의 해석 과정인지를 드러냈다.
인간의 눈은 약 1억 2천만 개의 간상세포와 6백만 개의 원추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빛의 강도와 색을 감지할 뿐이다. 시신경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후두엽의 시각피질(V1)로 전달되고, 그곳에서 형태, 색, 움직임, 깊이 등으로 분리된 다음 통합된다.
놀라운 점은, 이 과정이 기계적인 ‘입력-출력’이 아니라 예측 기반의 해석이라는 것이다. 뇌는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맥락을 통해 이미지를 ‘추론’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그림자를 보고 물체의 형태를 유추하거나, 흐릿한 선으로도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은 뇌가 ‘패턴 인식’과 ‘기대’를 기반으로 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는 행위는 감각이 아니라 인지적 해석의 결과다.
이러한 발견은 예술가들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과 색의 인식 과정을 탐구하며, “사람이 실제로 보는 것은 사물의 형태가 아니라 빛의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학이 시각의 메커니즘을 분석했다면, 예술은 그 과정을 감성적으로 재현했다.
예술은 ‘보는 행위’를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인식’으로 발전시켜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원근법을 통해 인간의 눈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탐구했다. 그러나 현대 예술은 그 반대로, 원근법을 깨뜨리고 ‘보는 틀’을 해체했다.
피카소의 큐비즘은 바로 그 혁명적인 전환의 상징이었다. 그는 한 시점의 시각이 아닌, 여러 시점의 인식을 한 화면에 담았다. 즉, 인간의 시각이 결코 단일한 객관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시간적이며 해석적인 것임을 예술로 표현했다.
또한 초현실주의는 과학적 합리주의를 넘어 무의식과 꿈의 이미지를 통해 ‘내면의 시각’을 표현했다. 이는 인간의 인식이 외부의 빛뿐 아니라 내면의 심상, 기억, 상상력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예술철학자 넬슨 굿맨은 “예술은 세계를 모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를 ‘만드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즉, 예술은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시각적 언어이다. 과학이 ‘보이는 법’을 연구한다면, 예술은 ‘보이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인간의 ‘시각’을 모방하고 있다. 딥러닝 기반의 컴퓨터 비전 기술은 수백만 개의 이미지를 학습해 사물, 얼굴, 감정까지 인식한다. 그러나 이 인식은 진정한 의미의 ‘보기’일까?
AI는 통계적 패턴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분류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경험적 맥락이 없다. 인간의 시각은 단지 물리적 형태를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감정, 문화적 배경이 결합된 총체적 인식이다. 따라서 AI가 보는 ‘고양이’와 인간이 보는 ‘고양이’는 전혀 다른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상상력을 보완하며, 우리가 보지 못한 세계를 시각화한다. 예술가들은 AI를 ‘제2의 눈’으로 삼아, 인간 인식의 한계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보는 주체가 인간이 아닐 때, 인식은 어떻게 변할까?”
AI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인간의 의식 없는 ‘기계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 결과를 해석하는 순간, 다시 인식의 고리가 완성된다.
결국 예술과 과학,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시각은 더 이상 눈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다.
우리가 세계를 본다는 것은, 곧 세계를 해석한다는 뜻이다. 시각은 객관적인 사실의 반영이 아니라, 경험과 기억, 문화, 감정이 결합된 복합적 인식의 산물이다. 과학은 그 과정을 해부하고, 예술은 그것을 재창조한다.
인간의 시각은 한계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AI 시대의 기술적 시각이 인간의 감각을 대체할 수 없듯, ‘보는 것’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해석 행위로 남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이다.
보는 것은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인식하는 철학적 행위이다.
예술과 과학, 철학은 이 행위를 통해 서로를 비추며 인간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