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사람들을 만나면“사회복지사가 직업인데요”하면, 하나같이 “복 받겠다”고 말한다.
매일 봉사하며 사는거 아닌가, 늘 복을 짓는 좋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고, 그런 말 많이 듣는다.
그 말도 맞는 것도 같다. 잘살고 있으니 말이다. 30년을 오지 않는 복을 기다리는지, 와 있는 복을 모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전히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복지정책이나 프로그램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사회복지사라는 타이틀 안에서 ‘먹고 사는 일’은 다르다.
사회복지사로 30년쯤 되어 보니 이제 알겠다.
이 일도 결국, 거대한 조직안에서 일하는 것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을 하고 경쟁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로써 사명으로 경쟁적 직장에서 생활이 생각보다 힘든 이유
1. 복짓는 것보다, 방어하는 자세로 일한다
사회복지사는 업무강도가 사실 높다. 일반 직장생활은 성과를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사회복지사는 투입대비 산출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지만 일반 직장인의 평가기준과 다른 사회적 평가를 받게 된다.
반면 사회복지사라는 타이틀이 항상 선한 이미지를 주고 있고, 관심분야에서 직접적으로 소외계층에 대한 서비스를 실시하기에 만족감은 크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사람은 늘 부족한 상태이기에 구직하기에도 좋은 편이다.
깡 없이는 직장생활은 어렵고, 건강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앉아 있으나 디스크 터지는 환경이다.
아이 병원한번, 나 콧물감기 처방받으러 외출 할때도 “보고와 결재”, 대신 업무해줄 동료의 “동의와 이해”를 거켜야 한다.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지키기도 힘들다. 쉼이 없으니 사실 건강은 나빠지고 늘 피곤함에서 허우적 거린다.
2. ‘외로움’이 일상이 된다.
늘 알콜중독, 빈곤, 사기, 가정폭력이 일어나며, 항의와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과중한 업무로 야근하는 날이 수시로 생긴다.
혼자 야근을 할 때도 있고 아이를 데리고 와서 같이 할 때도 있고 일을 집으로 가지고 갈 때도 있고 일꺼리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사회복지사의 죽음은 뉴스거리로 지나쳐 버리고 근무환경은 개선되지 않았고,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전국적으로 업무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산발적으로 났을 뿐이다.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가 사실 사회복지사의 삶을 바꾸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대상자 중심으로만 복지정책을 펴나가면 사회복지사는 또 죽어나갈 것인데 그 처우도 좀 생각해달라고 외쳐보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도 없다.
육체적으로 많이 병들고 정신적으로도 메너리즘에 빠져버려 외로움을 감각하는 것 조차 서툰, 조용한 일상을 지내고 있다.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릴까봐 생각보다 불안하다.
3. 사람을 잘 믿지 못한다
늘 신체적, 감정적 공격과 위협을 받는 것이 일상이라 사람과 관계 맺는 게 어렵다.
직장내에서 경쟁적 관계와 서비스대상자의 위협이나 공격이 모든 순간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매일의 경쟁과 가끔 일어나는 공격과 무작위의 감정표출자, 스토커들을 만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서로 조심스럽고,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까지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감정적으로 믿음과 신뢰를 주기가 힘들다.
경쟁관계의 사람들과의 가식적인 말투나 직급별로 방향성이 다름에서 오는 대화의 벽이 있다.
우린 서로 겉으론 건강하고 괜찮아 보여도, 마음 속은 자주 외롭고, 괴롭고, 힘들고, 운다.
4. 사회복지하느라 가정복지는 어렵다.
4살짜리 딸이 아프다고 해도 바로 병원에 데려갈 수가 없다.
너만 애키우냐, 근무시간에또, 그럼 누가 대신해… 아이있는 여직원이라는게 ‘내가 죄인이다’ 라는 생각으로 주위에 대신 어린이집에 가주거나. 병원에 데려갈 사람을 찾아야 했다.
가까이에서 친정엄마라도 있어주면 좋으련만, 시어머니는 갑작스런 이런 부탁을 하면 퇴근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계속 전화를 해서 “언제 올꺼냐” “애가 아픈데 언제 오냐”며 채근하여 너무 불편했다. 마음 좀 편히 부탁할 사람이 필요함이 직장인에겐 더 크게 다가오는 시절이였다. 딸이 성인인 요즘 가끔은 “딸은 결혼하더라도 자식은 낳지 않았으면...” 이라는 생각이 든다.
5. 사회복지는 복이 아니라, 경쟁과 성과의 직장이다.
사회복지의 대상자들은 필요하면 찾아오고 귀찮으면 잠수를 타지만, 나는 그들과 줄달리기를 하듯 놓았다 당겼다하는 일을 해야 한다.
예전보다 많은 정보들이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어 편해진 것도 있지만, 불편도 크다.
“나를 언제돌보아주었냐”는 것에 대하여 공식적인 내역을 남겨야하는 작업이 계속되어야 하니 시간이 부족하고, 글쓰기도 어렵고, 업무량의 증가로 스트레스도 심각하다.
매일 복과 좋은 일이라는 핑크빛 사회적 패르소나와 따박따박 지급되는 급여 속에서 산다는 것은 사실 꽤나 좋은 일이라 본다 해도, 그 안에서 성과를 내고 나의 생계를 위하여 공격적인 사람들을 수년간 마주하며 사표를 던지지 않고 견디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1990년대 중반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생소했다 시절이였다.
산골 작은 군에 처음 사회복지사로 입사하였을땐 모든 게 새로웠다.
기안을 하고, 건물을 짓고, 사례관리를 하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대상자를 보면서 나에게 조차 감탄했다.
‘나는 사회복지사다’는 말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은 무뎌지고, 현실은 험악해지고 몇 번의 신체적 공격으로 병원에서 치료도 받으니 나의 직업의 어두운 면이 더 또렷하게 도드라졌다.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을 하든 결국 비슷한 문제와 마주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현정 작가의 ‘외로움의 모양’이라는 책의 글이 떠오른다.
‘시린 공기 – 아무도 날 이해해 주지 않아’에서처럼 “부모님이 원하는 공무원이 돼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잘못된 행정처리에 불만을 제기하면 특이한 사람 까다로운 사람 취급 받았다”라며 지쳐가던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보기 좋은 허울보다는 외로움이 컷다는 이야기. 지금은 그 직장인으로써 공정함을 펼쳐야하는 공직자로써 마음이 이해된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수요도 많고 미래의 사라지지 않는 직업 순위에 들어갈 정도로 유망한 직업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라는 집단 안에서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한 현실이다.
8시간 근무라는 워라밸과 안정성을 기대하며 왔지만, 막상 일하면 8시간 근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가 많고 정책이 수시로 바뀌니 직업적 안정성도 그렇게 높지 않다. 그 만큰 한국사회에서 평균 직장인으로 멘탈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도 많다.
사회복지사로써 선택이 30년을 재직했지만 잘 했는지 옳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도 나는 사회복지사로써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지치고, 외롭고, 막막하지만 그래도 당장은 그만두고 사회복지계를 떠날 생각이 없다.
이게 내가 살아온 삶이고 아직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니까.
김수현
▷1996년 -현재 공무원(사회복지) 재직
▷한국사례관리학회 회원
▷한마음의집 운영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