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은 늘 혈액 수급에 가장 가혹한 계절로 기록된다. 추위는 외출을 줄이고, 헌혈의 집 앞 대기 줄은 짧아진다. 이 공식은 오랫동안 반복돼 왔다. 그러나 올겨울, 익숙했던 장면이 잠시 달라졌다.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헌혈의 집 앞에 청소년들이 줄을 섰다. 조직된 동원도, 학교 과제도, 캠페인 일정도 아니었다. “피가 부족하다는 말을 보고 나왔다”는 설명이 전부였다.
이 장면이 주목받는 이유는 감동적인 미담이어서가 아니다. 사회가 보내는 신호에 여전히 반응하는 시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시민의식은 교과서 문장 속에서 길러지지 않는다. 불편을 감수하는 실제 선택을 통해 축적된다. 헌혈은 그 대표적인 예다. 시간을 내야 하고, 몸의 피로를 감수해야 하며, 즉각적인 보상은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움직였다.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늘 크다. 청년 세대의 이기심, 공동체 의식의 약화, 사회적 연대의 붕괴가 반복해서 언급된다. 그러나 미래는 이미 현재의 행동으로 말하고 있다. 한파 속 헌혈의 집에서, 희망은 소란 없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이름 없는 선택의 힘은 돌봄 현장에서도 드러난다. 요양원에서 전해지는 선행은 대부분 기록되지 않는다. 카메라도 없고, 기사 제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들이 없었다면 돌봄의 현장은 오래 버티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지역 요양원에 식사와 물품, 시간을 나누는 평범한 이웃들의 사례가 전해졌다. 이들은 거창한 기부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하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의 일상을 조금 줄였을 뿐이다.
공동체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제도는 설계될 수 있지만, 작동은 언제나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행정의 공백, 복지의 사각지대, 시스템이 미처 도달하지 못한 틈을 메우는 것은 늘 이름 없는 시민이다. 이 선택들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사회 유지 비용을 실제로 낮추기 때문이다. 조용한 선행은 위기를 지연시키고, 붕괴의 속도를 늦춘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들이 종종 ‘영웅담’으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선행이 뉴스가 되는 순간, 사회는 안도한다.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이 안심이 반복될수록 선행은 구조가 아닌 예외로 축소된다. 개인의 선택은 칭송받지만, 그 선택이 필요했던 조건은 검토되지 않는다.
선행이 영웅화될수록 사회는 역할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칭찬은 늘어나지만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다. 이름 없는 선행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선택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선행은 지속돼야 할 미덕이 아니라, 줄어들어야 할 사회적 비용에 가깝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박수가 아니라 질문이다. 왜 이 선택이 필요했는지, 왜 개인이 대신 감당해야 했는지, 어떤 구조가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 질문이 시작될 때, 선행은 미담을 넘어 공론이 된다. 그리고 사회는 비로소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
희망은 언제나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이 반복될 때 사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선행을 칭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선행이 필요 없도록 만드는 방향을 함께 묻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