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의 독립운동가

‘국제사회에 독립청원’ 파리장서운동 참여한 <이명균‧장석영‧유진태 선생> 선정

파리장서(국립한국문학관)

 

3‧1운동 후 프랑스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리자 독립청원서를 전달하여 한일강제병합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한 이명균(1968년 독립장), 장석영(1980년 독립장), 유진태(1993년 애국장) 선생을 ‘2026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국가보훈부가 밝혔다. 파리장서운동은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를 계기로, 한국 유림들이 국제사회에 독립을 청원하고자 전개한 외교적 독립운동이다. 

 

2·8독립선언과 3·1운동으로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유림 세력 또한 독립청원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장문의 독립청원서, 즉 ‘파리장서’를 작성하고 전국 유림 대표 137명의 서명을 받아 국제사회에 발송하였다. 장서에는 한일병합의 강제성과 부당성을 비판하고, 한국 민족이 독립국으로서 존속할 정당한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 운동은 단순한 청원에 그치지 않고, 국제여론을 활용하기 위한 외교 독립운동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또한 준비 과정에서 문서 작성, 서명자 모집, 전달 경로 확보 등 조직적인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관련 인물들은 일제의 탄압으로 체포·투옥되는 등 큰 희생을 겪었다.

 

이명균(1863~1923) 선생은 경북 지역 유림으로, 광흥학교 설립 후원과 조선총독 암살 시도 등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3·1운동 이후에는 장서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조선독립후원의용단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 독립자금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이 과정에서 체포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장석영(1851~1926) 선생은 파리장서 초안을 작성한 핵심 인물로, 3·1운동 소식을 접한 뒤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을 제출하자는 제안에 호응하여 장서를 집필하였다. 그의 초안은 일본의 침략을 강하게 규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운동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에도 항일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였다.

 

유진태(1872~1942) 선생은 조직과 연계를 담당한 실무적 핵심 인물로, 평안도 지역 서명자를 규합하는 책임을 맡아 활동하면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추진되던 장서운동을 연결하여 통합을 이루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해외의 독립운동가와도 연계하여 문서 전달을 지원하였다. 이후 계몽운동을 펼치고 신간회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3·1운동이 국내외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독립 의지를 표출한 사건이라면, 파리장서운동은 이를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호소한 시도였다. 또한, 파리장서운동은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제국주의 지배의 부당성을 국제 여론에 호소한 점에서 보편적 가치 실현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정부는 애국지사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이명균 선생, 장석영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유진태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작성 2026.04.02 11:04 수정 2026.04.0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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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