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굴’의 정체성과 ‘실리’의 교차로에서 테헤란이 건네는 고백
창밖으로 보이는 테헤란의 하늘은 언제나처럼 매캐한 매연과 설산의 차가운 공기가 기묘하게 섞여 있다. 2026년 2월 11일, 이 도시의 심장인 아자디 광장은 다시 한번 거대한 인간의 바다가 되었다. 혁명 47주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땅의 사람들은 '신의 통치'와 '인간의 욕망'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왔다. 누군가에게는 서구의 제국주의에 맞선 자부심의 역사였고, 누군가에게는 닫힌 세계 속에서 숨죽여야 했던 인고의 세월이었다. 오늘, 우리는 단순히 수만 명의 인파가 모였다는 뉴스의 단편을 넘어, 그들의 눈동자 속에 담긴 진실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 그들은 47년 전의 불길을 끄지 않는가
이란 혁명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2,500년 왕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종교가 국가의 근간이 되는 전무후무한 실험이었다. 1979년의 그 뜨거웠던 열망이 4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혁명 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면에는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이란적인 것'을 지키겠다는 지독한 고집, 즉 '불굴(Non-submission)'의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강력한 경제 제재와 외교적 고립을 일종의 '영적인 시련'으로 받아들였다.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이 외친 "우리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발언은 정치적 수사를 넘어, 이란인들이 공유하는 생존 본능의 발현이다. 그들은 압박이 강해질수록 내부적으로 더욱 단단하게 결속되는 독특한 '레지임 레지티머시(Regime Legitimacy)'를 구축해왔다. 이러한 심리적 방어막은 이란이 핵 협상이라는 거대한 장기판 위에서 서구의 파상 공세에 맞서 '주권'이라는 마지막 말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된다.
차도르 아래 MZ세대가 꿈꾸는 세상
지금 테헤란의 거리를 걷다 보면 기묘한 괴리감을 마주하게 된다. 광장에서는 미국을 규탄하는 구호가 울려 퍼지지만, 골목 안 카페에서는 스타벅스를 흉내 낸 커피를 마시며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청년들이 가득하다. 47주년을 맞이한 이란 사회의 진짜 주인공은 이제 혁명을 직접 겪지 않은 MZ세대다. 이들은 국가가 정의하는 '명예로운 저항'도 소중히 여기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삶의 질과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에도 민감하다.
페제슈키안 대통령이 핵 프로그램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핵무기 보유 의사가 없다"라고 선제적인 제안을 던진 것은, 이러한 내부의 변화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무한한 대결이 아니라, 국가적 존엄을 지키면서도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실리적인 평화'다. 따라서 이란 지도부는 외부로는 '강경한 저항'의 표정을 짓고, 내부로는 '실용적 협상'의 길을 모색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것은 체제 유지와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이란식 '정치적 서바이벌'의 핵심이다.
튀르키예라는 창구와 시장통의 속삭임
"중동의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습니다." 광장에서 만난 한 노인은 완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란은 자신들의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튀르키예를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했다.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이란의 입장을 이해하는 튀르키예는 이란에 있어 숨통과 같은 존재다. 하칸 피단 외교장관과 같은 인물들이 막후에서 움직이며 서구와 이란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이 지역이 더 이상 강대국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겠다는 강력한 '역내 자결주의'의 표현이다.
하지만 테헤란의 전통 시장인 바자르(Bazaar)에서 만난 상인들의 목소리는 조금 더 절박하다. "우리는 자부심을 먹고 살 수 없습니다. 협상이 타결되어 물가가 안정되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혁명 기념일의 화려한 불꽃놀이 아래에는 고물가와 환율 폭락을 견뎌내야 하는 서민들의 눈물이 흐른다. 이들에게 협상은 정치적 승리가 아니라, 내일의 빵을 담보하는 생존의 문제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조롱'으로 맞받아치는 대범함 뒤에는, 삶의 무게를 짊어진 가장들의 무거운 어깨가 있다.
인간의 영혼이 다른 영혼에게 건네는 안부
이란 혁명 47년은 우리에게 묻는다. 국가의 존엄과 개인의 행복은 과연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이란이 선택한 '명예로운 저항'은 고귀하지만, 그 대가가 민초들의 끝없는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서글픈 진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이제 국제 사회는 이란을 단순히 '악의 축'이나 '문제아'로 볼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꿈틀대는 변화의 욕구와 인간적인 고뇌를 마주해야 한다.
결국, 모든 정치적 합의의 끝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서구는 이란의 자존심을 짓밟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세계의 일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세련된 외교적 해법을 고민해야 하고, 이란은 혁명의 가치가 시대의 흐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유연함을 발휘해야 한다. 47년 전 그들이 꿈꿨던 이상이 오늘날의 절망이 되지 않기를, 테헤란의 붉은 노을을 보며 간절히 소망해 본다. 차도르 아래 숨겨진 그들의 미소가 언젠가 온전한 자유의 빛을 발하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