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계! 유리의 꽃으로 피어나다…모래에서 디지털까지 5천 년 유리 문명의 현재

강원도 삼척 ‘도계유리나라’, 산업 유산을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다

고대 권력의 상징에서 첨단 전략 소재까지, 유리 진화사의 집약

폐광 지역의 변신…유리 문화공간이 지역 재생 모델로 주목

도계유리나라 입구에서

 

도계! 유리의 꽃으로 피어나다…모래에서 디지털까지 5천 년 유리 문명의 현재

 

 

산업의 기억 위에 피어난 유리 문화

 

강원도 삼척 도계에 자리한 ‘도계유리나라’는 단순한 전시 시설이 아니다. “도계! 유리의 꽃으로 피어나다”라는 주제로 조성된 이 공간은 과거 석탄 산업 중심지였던 지역의 역사 위에 세워진 상징적 장소다. 한때 광산과 철길, 탄광촌의 불빛으로 활기를 띠던 도계는 산업 구조 변화 이후 침체를 겪었다. 그러나 지역은 멈추지 않았다. 산업의 흔적을 지우는 대신, 기억 위에 새로운 문화를 쌓는 방식을 선택했다.

유리는 그 전환의 매개가 되었다. 모래에서 출발해 첨단 디지털 산업의 핵심 소재로 자리한 유리는, 변화와 재구성의 상징이다. 도계유리나라는 바로 그 상징성을 공간으로 구현한 사례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라, 산업 유산을 문화 자산으로 전환한 지역 재생의 실험장이자 플랫폼이다.

 

5천 년 유리 문명, 권력의 상징에서 생활재로

 

유리의 역사는 약 4,500년 전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초기 유리는 장신구와 의례용 공예품으로 사용됐다. 제작 기술이 제한적이었던 당시 유리는 희귀한 물질이었고, 곧 권력과 신성을 상징하는 매개체였다.

로마 시대에 접어들며 상황은 달라졌다. 유리 불기 기법이 확산되면서 생산 효율이 높아졌고, 병과 잔, 저장 용기로 활용 범위가 확대됐다. 기술 혁신은 물질의 사회적 위상을 바꾸는 동력이 되었다. 유리는 더 이상 왕권의 상징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중세 시대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 사례다. 빛은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가 되었고, 색유리는 신앙과 건축을 결합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산업혁명 이후 대형 판유리 제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도시는 투명성과 개방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재편됐다. 유리는 공간 개념 자체를 바꾸는 요소로 작용했다.

 

한반도 유리 교역의 흔적, 세계와 연결된 고대 네트워크

 

한반도 역시 유리 문명의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유리 구슬과 유리잔은 국제 교역망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고대 한반도가 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다.

유리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상징하는 매개였으며, 문화 교류의 산물이었다. 유리 구슬 하나에는 당시의 해상·육상 교역로, 기술 전파, 정치적 관계가 압축되어 있다.

도계유리나라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풀어낸다. 관람객은 유리 제작 과정을 직접 체험하며 물질의 변화를 경험한다. 이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역사와 기술을 이해하는 교육적 콘텐츠로 기능한다.

 

디지털 시대 전략 소재로 부상한 유리

 

현대 산업에서 유리는 전략 자원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건축용 판유리와 자동차 안전유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필수 기반을 형성했다. 이후 디스플레이 산업이 성장하면서 초박형 강화유리가 스마트 기기의 핵심 소재로 활용됐다.

최근에는 반도체 패키징 기판 분야에서도 유리 소재 적용 가능성이 논의된다. 초고순도 실리카 확보와 정밀 가공 기술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로 평가된다. 유리는 투명하지만, 산업적 가치 측면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물질이다.

모래에서 시작된 물질이 인공지능과 반도체 기술의 기반으로 확장된 과정은 산업 진화의 축소판과 같다. 기술의 발전은 유리를 단순 소재에서 전략 자원으로 전환시켰다.

 

유리정원박물관
유리나라정원에 나무조형물
유리나라정원에 삼척의 환선굴에서만 서식하는 환선장님딱정벌레를 일반적인 조형기법에 유리를 이용한 모자이크기법을 접목하여 제작한 작품
유리나라정원에 병오년응 상징하는 말이 유리기법으로 만들어진 조형물

 

폐광 지역의 변신, 문화 플랫폼으로 재탄생

 

도계유리나라는 이러한 유리 문명의 흐름을 지역 서사와 결합했다. 과거 석탄 산업 중심지였던 도계의 정체성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산업의 기억 위에 문화 콘텐츠를 더했다. 이는 산업 유산을 문화 자산으로 전환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유리라는 소재의 상징성이다. 투명하지만 강인한 특성은 변화와 재도약을 상징한다. 폐광이라는 상처를 안은 지역이 문화 공간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은 유리의 물성 변화와 닮아 있다.

이 공간은 관광 자원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산업 도시의 기억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경제적 활력을 모색하는 모델로 의미를 지닌다.

 

깨지기 쉬운 물질, 그러나 축적된 문명

 

유리는 깨지기 쉬운 소재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수천 년 문명의 축적이 담겨 있다. 도계유리나라는 그 축적된 시간을 공간으로 구현한 사례다.

과거 산업 도시의 기억 위에 피어난 유리 문화공간은 지역과 산업, 역사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로 기능한다. 모래에서 시작해 디지털 기술의 기반이 된 유리처럼, 지역 역시 새로운 가치로 재구성되고 있다.

도계의 변화는 단순한 관광 개발이 아니다. 이는 산업 유산을 문화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실험이며, 지역 재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유리는 더 이상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의 흐름과 지역의 미래를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다.

작성 2026.02.15 00:17 수정 2026.02.1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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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