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고속도로를 달렸다. 복잡하게 갈라지는 분기점 위로 분홍색과 초록색 유도선이 또렷한 길잡이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 선을 따라갈 때마다, 누군가 참 다정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했다. 나같이 길 위에서 머뭇거리는 초행길 운전자에게 이 선은 단순한 안내선이 아니라, 불안을 걷어내 주는 든든한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이 선 뒤에는 한 사람의 치열한 사투가 있었다. 한국도로공사 윤석덕 차장, 분홍·초록색 노면 유도선을 우리 도로에 처음 입힌 주인공이다. 2011년, 영동고속도로 안산분기점에서 반복되는 사망 사고를 지켜보며 그는 도로공사 직원으로서 무거운 부담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로 시설이 미비해서 아까운 생명을 잃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이 깊어가던 저녁, 거실에서 아이들이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선을 긋고 있었다. 고사리손이 거침없이 그려내는 알록달록한 선을 본 순간, ‘도로에도 색을 입히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혁신으로 가는 길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혔다. 당시 도로교통법상 허용된 색은 백색, 황색, 청색뿐이었다. 이와 다른 색 분홍과 초록은 전례 없는 ‘불법’이었고, 주변에서는 “사고 나면 네가 책임질 거냐”, “운전자들이 헷갈려 물병을 던질 거다”라는 냉소와 비난이 쏟아졌다. 감사원 감사까지 각오해야 했던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그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확신 하나로 롤러 자루를 잡았다.
결국 안산분기점에 첫 선이 그려졌고, 결과는 기적 같았다. 설치 전 연간 20여 건에 달하던 사고가 설치 후 6개월 동안 단 3건으로 급감했다. 이후 전국 고속도로 분기점으로 확대되자 사고율이 27% 감소했고, 서울 시내 교차로에서는 사고가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거대한 예산이나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페인트 한 통과 롤러 자루가 수많은 생명을 지켜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셈이다. 누리꾼들이 그를 향해 “국회의원 백 명보다 낫다”는 찬사를 보낸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 작은 선 하나가 세상을 바꾸었다. 한국도로공사는 내부 지침을 세웠고, 정부는 관리 매뉴얼을 제작했다. 마침내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어 분홍색과 초록색이 공식 차선으로 인정받으면서, 색깔 유도선은 제도권 안으로 당당히 들어왔다. 이제 우리는 어느 고속도로에서나 이 ‘다정한 길잡이’를 만난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생명을 지키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꿈꾸는 진짜 혁신의 얼굴이다.
윤석덕 차장은 이 공로로 국민훈장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사고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당연하다”고 담담히 말했다한다. 나는 고속도로 분기점에 들어설 때마다 그 선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못한다. 저 분홍색과 초록색은 타인의 아픔을 끝내 자기 책임으로 바꾸어 낸 다정한 배려이며, 비난과 냉소를 헤치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용기’의 빛깔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선을 따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하루를 더 안전하게 해 줄 작은 선 하나를 긋고 있는가. 나 자신에게 묻는다. 상식의 경계를 한 걸음 넘어 세상을 밝히려 했던 한 사람의 진심 덕분에 우리의 길이 이토록 따뜻해졌음에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문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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