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역사] 86. 쇼토쿠(尚徳) 왕의 정복 정치와 쿠데타

기카이지마(鬼界島) 원정과 대외 과시 외교

재정 악화와 민심 이반, 폭군의 오명

카나마루(金丸)의 즉위와 제2쇼씨 왕조(第二尚氏王統) 수립

제1쇼씨 왕조(第一尚氏王統)의 마지막 군주 쇼토쿠(尚徳) 왕의 치세는 적극적인 군사 팽창과 외교적 과시가 추진된 시기였다. 

 

쇼토쿠(尚徳) 왕의 정복 정치와 쿠데타[이미지=AI 생성]

 

1466년 기카이지마 원정은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반복된 원정과 대규모 건립 사업은 재정을 악화시켰다. 1469년 그의 급사 이후 중신들은 세자의 즉위를 거부하고 카나마루(金丸)를 옹립하였다. 이로써 제1쇼씨 왕조는 붕괴하고 제2쇼씨 왕조가 성립하였다.

 

1461년 즉위한 쇼토쿠 왕은 적극적 대외 팽창 정책을 추진하였다. 1466년 그는 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기카이지마(鬼界島)를 정벌하였다. 이 친정은 주변 도서에 대한 직접 지배를 확대하려는 시도였다.

 

같은 해 선승 가이인 쇼코(芥隠承琥)를 일본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에게 사절로 파견하였다. 이는 국위 선양을 위한 외교적 행보였다. 또한 원정 승리를 기념하며 하치만구(八幡宮)를 건립하였다.

 

지속된 원정과 건립 사업은 왕부 재정에 부담을 주었다. 대신들은 위기를 경고하였으나 정책은 계속되었다. 민심은 점차 이반하였다. 쇼토쿠 왕은 폭군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대외 팽창은 성과를 보였으나, 내정은 불안정해졌다.

 

1469년 쇼토쿠 왕은 재위 9년 만에 사망하였다. 세자의 즉위가 예상되었으나, 최고위 법사(法司)와 중신들은 이를 거부하였다.

 

중신 아사토 우후야(安里大親)는 새로운 국왕 옹립을 제안하였다. 그 결과 카나마루(金丸)가 추대되었다.

카나마루는 이제나지마(伊是名島) 출신으로 왕부 요직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즉위 후 쇼엔(尚円)으로 개명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1쇼씨 왕조는 종결되었다.

 

1470년 즉위한 쇼엔은 전 왕조의 성씨인 쇼(尚)를 유지하였다. 이는 대외 관계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1472년 명나라로부터 중산왕(中山王)으로 책봉을 받았다. 왕조 교체 사실은 외부에 신중히 전달되었다.

제2쇼씨 왕조는 이후 장기간 지속되는 통치 기반을 마련하였다.


 

쇼토쿠 왕의 적극적 군사 팽창은 영토 확장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재정 악화와 내부 불만이 누적되었다. 1469년 급사 이후 쿠데타가 발생하며 제1쇼씨 왕조는 붕괴하였다. 카나마루의 즉위로 제2쇼씨 왕조가 수립되었다. 이 사건은 류큐 왕국 정치사에서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작성 2026.02.28 11:16 수정 2026.02.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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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