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울산 중구 ‘무직라움’ 조은혜 대표 |
울산 중구 한 조용한 공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최신 신디사이저와 피아노, 그리고 작업용 장비들이 자리한 음악 작업실이 펼쳐진다. 학원이라는 이름 대신 ‘라움(공간)’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조은혜 대표는 웃으며 답했다. “여기는 학원 보다는, 음악을 깊이 있게 나누는 공간이에요.”
▲ 사진 = 무직라움 수업 모습 |
17년간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던 그녀는 지난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다수를 대상으로 한 수업을 정리하고, 1대1 레슨과 음원 제작에 집중하는 공간 ‘무직라움’을 새롭게 시작했다. “학원에서는 여러 명을 동시에 가르쳐야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한 사람을 더 가까이에서, 더 깊이 있게 만나고 싶었어요. 1대1로 수업하니까 학생도 훨씬 만족도가 높고, 저 역시 훨씬 심도 있게 가르칠 수 있더라고요.”
▲ 사진 = 무직라움 수업 모습 |
현재 무직라움에는 초등학생부터 60대 성인, 외국인 수강생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찾는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음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다.
조 대표의 음악 인생은 초등학교 3학년, 교회 반주로 시작됐다. “아무도 코드 반주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때는 체계적으로 배울 곳이 없었거든요. 혼자 터득하며 시작했죠.”
![]() ▲ 사진 = 무직라움 수업 모습 |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전공 선생님을 만나 체계적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울산예고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선배들의 연주를 중심으로 반주 활동을 이어갔고, 대학원생은 물론 타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무대를 넓히며 경험을 쌓아갔다.
“성악과 과대표가 직접 찾아와 학생들 졸업 연주를 모두 맡아달라고 할 정도로 반주를 많이 했어요. 어쩔 수 없이 거절한 적도 많았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어요.”
▲ 사진 = 조은혜 대표 반주 모습 |
대학 시절에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경험도 있다. 반주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작곡과 동기의 난도 높은 곡을 단 일주일 만에 완성해 연주했던 일이다. 그 연주는 교수의 극찬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폴란드 교수의 작품을 초연(처음 연주)하는 기회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은 연주자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 ▲ 사진 = 조은혜 대표 버스킹 |
독일 유학도 이어졌다. “독일 땅만 밟고 오자는 생각이었는데, 대학 시험을 한 번에 붙으면서 공부를 계속하게 됐어요.” 유학 시절 만난 뛰어난 동료들 속에서 그녀는 ‘진짜 잘하는 사람’을 보았고,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가졌다.
이후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다시 반주를 전공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고, 서울 생활을 마친 뒤 고향 울산으로 돌아왔다.
울산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그녀는 굵직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CBS 전국 콩쿠르에서 제자가 재즈 피아노 부문 1등을 차지한 것이다. 서울 예술고, 리라아트고 등 유명 예술고 학생들이 참가한 대회에서 초등학생이 본선에 오르고 1등까지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 사진 = 조은혜 대표 반주 음원 |
“그때 심사위원 선생님들이 ‘정말 잘 가르쳤다’고 해주셨어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내가 재즈를 가르치는 게 맞는지 확인받는 순간이었죠.”
이후 그녀는 재즈를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배운 내용을 그대로 제자들에게 전수하며 함께 성장했다.
조 대표가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음원 제작’이다. 학생들이 각자 방식대로 연습하며 한계를 겪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고민했다. “아이에게 맞는 음원을 만들어주면, 거기에 맞춰 연습할 수 있지 않을까?”
![]() ▲ 음원 제작중인 조은혜 대표 (사진 = 무직라움) |
두 달간 관련 과정을 배우고, 이후에는 유튜브와 독학으로 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만든 음원과 편곡 작업은 어느 교수의 눈에 띄어 교재 5권의 음원 제작 및 편곡 작업에 참여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현재도 다양한 편곡·음원 제작 의뢰를 받고 있다.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람을 느꼈지만 어느 순간 전환점이 찾아왔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문득 허무함이 왔어요. 아이들은 자라고 떠나고, 나는 남지 않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제 작업을 남기고 싶었어요.” 그 결심이 무직라움의 출발점이었다.
▲ 사진 = 거제시 합창제 |
무직라움의 가장 큰 강점은 ‘경계를 나누지 않는 교육’이다. “사람들이 클래식과 실용음악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해요. 분명 차이는 있지만, 기본은 클래식이라고 생각해요.”
클래식 전공자의 탄탄한 테크닉 위에 재즈 코드 이해와 미디 활용까지 더한다. 교회 반주에서 어려움을 겪는 클래식 전공자, 테크닉이 부족한 실용음악 전공자 모두에게 균형 잡힌 접근을 제안한다.
공간 한쪽에는 최신형 신디사이저가 구비돼 있다. 학생들은 실제 장비를 직접 다뤄보며 실전 감각을 익힌다. “어디 가서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어요.”
▲ 사진 = 무직라움 |
울산 동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던 시절, “콩쿠르 1등을 해보고 싶다”고 남구에서 찾아온 학생이 있었다. 조 원장의 가르침을 받고 두 달이 지나자 참가한 모든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후 제주 국제학교로 진학한 그 학생은 훗날 “선생님께 배운 미디와 음악적 접근이 국제학교 수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해왔다.
또 한 명의 학생은 중학교 2학년 때 느린 연주 실력으로 오디션을 봤지만, 조 대표는 “진흙 속의 진주”라고 표현할 만큼 소리의 아름다움을 알아봤다. 그 학생은 울산예고를 거쳐 부산예고로 편입했고, 유학까지 이어갔다. 훗날 공연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의 반가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 울산솔리스트앙상블 정기연주회 (사진 = 무직라움) |
현재 그녀는 울산문화재단에 독주회를 신청해둔 상태다. 단순한 연주회가 아니다. “피아노 협주곡을 오케스트라 대신 제가 직접 제작한 오케스트라 음원과 함께 연주해보고 싶어요. 세상에 한 번도 없었던 형태의 독주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확장 계획은 아직 없다. “이 공간이 좋아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오고,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자리거든요.”
▲ 사진 = 무직라움 |
조은혜 대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음악을 한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힘들 때, 외로울 때, 음악은 늘 제 친구였어요. 잘 쳐야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각자의 수준에서 가장 아름답게 완성된 곡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무직라움은 단순히 피아노를 배우는 공간이 아니다. 음악을 통해 자신만의 소리를 찾고, 삶의 위로를 만나는 곳이다. 울산 중구의 작은 공간에서, 오늘도 누군가의 인생에 음악이 더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