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Ⅲ. 이론적 배경
1. 이론적 배경: 포스트모더니즘 + 해체주의 + 메타텍스트성
‘복합 다중 시’는 전통적인 시 갈래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시적 형식(정형시, 산문시, 해체시, 메타시 등)과 주제(개인·사회·문학·언어)를 다층적으로, 복합적으로 구성한 현대 실험시이다.
이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장르 혼성, 해체, 다성성(polyphony), 자기반성(meta-reflection) 등의 전략을 통합하여 시적 언어의 해체와 생성, 정체성과 현실의 다층 구조를 동시에 드러낸다.

‘복합 다중 시’는 이 시집의 핵심 문학적 전략과 장르적 구조를 정확하게 명명하는 용어이다. 단일 양식이나 사조로 환원할 수 없는 구조를 지녔다. 그 자체가 시와 비평, 문학 제도와 사회 현실, 정형과 탈형식, 서정과 해체가 교차하는 ‘다중적 시의 복합체’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장르 혼성, 패러디, 비약적 상상력을 통한 경계 해체를 핵심으로 한다. 해체주의(데리다)는 언어가 결코 고정된 의미를 담보할 수 없으며, 기표와 기의 사이의 무한한 미끄러짐 속에서 독자가 의미를 구성함을 강조한다. 메타시적 구조는 시가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조망하는 시도로, 시의 존재론적 위기를 해석학적으로 노출시킨다.
‘복합 다중 시론(complex-multiplex poetics)’은 이러한 이론적 바탕 위에 복합적 구조와 다중화의 형식, 발화 주체 배치, 청자와 독자 참여 형식, 시인의 철학을 ‘다중 구조’로 번역해 나간다.
다성성(polyphony)은 본래 바흐친(Mikhail Bakhtin, 1895~1975)의 도스토옙스키 소설 분석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인물 간의 대등한 담론적 위치와 이질적 세계관의 병존을 가리킨다. 그러나 시에서의 다성성은 단지 복수 화자의 존재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다. 시적 언어는 다양한 갈래, 기호, 맥락, 사회적 발화를 흡수하며 다성적, 다의적, 다층적으로 작동한다.
‘복합 다중’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다성성(Polyphony), 다의성(Ambiguity / Polysemy), 다층성(Multilayeredness / Stratification) 등을 보다 확장한 차원이다. 이때의 ‘복합’은 시가 다양한 기호 체계(텍스트, 심상, 담론 등)를 통섭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중’은 단지 복수성 이상의 상호 충돌성과 자기 분열을 포함한다.
‘복합 다중 시론’은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을 핵심 원리로 삼는다. 시가 자기 자신의 언어, 구조, 의미 작용을 반성적으로 응시한다. 이를 수행하는 경우, 그것을 단순한 메타시(meta-poetry) 이상의 존재로 간주할 수 있다.
여기서 시는 시론적 사유를 포함한 창작 행위이다. 창작은 동시에 비평과 이론의 실천이다. 이러한 ‘자기 지시적 시학’은 루만(Niklas Luhmann, 1927~1998)의 ‘자기 기술 체계’ 이론과도 접점을 갖는다. 루만에 따르면 예술은 외부 세계를 반영하기보다 스스로 작동 원리를 구성하고, 그 구성 과정을 통해 자기 지시적 의미 생산을 실현한다.
‘복합 다중 시론’의 또 다른 핵심은 기호적 자율성과 정치적 실천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전제이다. 전통적 시론은 이 둘을 대립적으로 보았다. 순수시론은 자율성을, 참여시는 실천성을 중시한다. 그러나 현대시는 이 두 측면을 동시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즉, 시는 고유한 기호 체계로서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기호 구조를 통해 정치적·윤리적·사회적 발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보드리야르의 기호학, 들뢰즈의 리좀 이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개념과 만나는 지점이다.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의 ‘대상 a(objet petit a)’ 개념은 시 속에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의 잔여를 기호화함으로써, 텍스트의 미끄러짐과 독자 해석의 불완전성을 설명한다. 리쾨르(Paul Ricœur, 1913~2005)의 ‘해석학적 순환’ 이론은 독자가 텍스트 전후 맥락을 반복적으로 순환하며 의미를 구성해 내는 과정을 제시한다. ‘복합 다중 시’의 다층적 의미 생성 방식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특히, 라캉의 ‘대상 a’는 욕망의 구조를 지배하는 결핍의 기호이다. 『수선화 꽃잎만 더듬는 늪에 던지는 돌』은 이상적인 수용과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지만, 그 대상은 결코 현현되지 않는다. 이로써 시는 욕망의 반복된 미끄러짐을 통해 독자 해석의 불완결성과 기표 체계의 해체를 유도한다.
이론가들은 ‘복합 다중 시론’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그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복합 다중 시론’은 전통적인 시학적 틀을 넘어선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시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이다. 기존의 시 이론이 단일하거나 특정한 범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복합 다중 시론’은 다양한 이론적, 형식적 접근을 통합, 복합, 나아가 융합하여 시의 의미 생산을 향해 더 넓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이 개념은 다른 이론적 틀과 다르다. 복잡한 시적 실험을 해석하는 데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시집에서 이를 어떻게 구체화했는지, 실험적 형식과 내용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궁금하다면 시집을 읽어 봐야 할 것이다.
2. 탈경계 메타시: 시에 대한 시, 자의식 내재
시집 제1부 「탈경계 메타시」는 자타가 시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위선을 낱낱이 드러낸다. 아래 시를 읽어 본다.
가짜 시인은 / 산문에 행갈이만 하면 진짜 시인 줄 안다. // 일기문을 / 자전의 글을 / 시라 한다. // 가짜 시인들은 심심풀이로 / 시에 / 고춧가루 / 소금을 / 뿌려 댄다.
-「탈경계 메타시 2—시는 다 죽었다 카이」에서
“산문에 행갈이만 하면 진짜 시인 줄 안다.”라는 시행은 한국 문학 단체의 현실을 풍자하면서 시의 본질과 형식을 되묻는 탈장르적 질문이다. 이는 시의 형식이 아니라, 진정성과 문학적 정서의 농도가 시를 구성한다. 그 정서를 탈진술적 심상으로 환원하면서도, 때로는 환원을 거부하고, 직접적 진술의 리듬으로 산문과 운문, 시의 내재율과 시조의 운율을 넘나든다. 이러한 ‘메타시’는 전통적 시 이론으로는 포섭하기 쉽지 않다. 시론 자체를 시로 재전유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산문시와 운문시의 경계를 흐린다. 내용적으로는 문학상, 표절, 주술적 영감에 기대는 작법, 심지어 시인의 의도와 무관한 무조건적 구두점 생략까지도 비판한다. 플라톤이 영감설을 옹호했다고 오판하는 강단 비평가나 문인들을 비판한다. 시인 추방론조차 모르는 자라고 비판한다. 이는 시인의 자격과 상상력의 윤리적 책임이다. 시의 미학과 윤리, 언어와 제도, 형식과 내용의 이중 결합을 복합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기획이다. 탈경계 메타시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 시에 대한 시, 시에 대한 시론, 시론에 대한 시, 시인에 대한 시, 동시대 시인들의 자아에 대한 자아비판이라는 점에서 자기 반영적 메타 언어의 정점에 놓인다. 여기서 언어는 구어체, 순우리말, 사투리, 풍자적 장치를 결합하여 제도권의 시 담론을 비튼다.
3. 형식적 복합성: 산문시, 메타시, 시조, 풍자시의 병렬
이 시집에서 주목할 점은 문학 갈래의 복합성과 그 형식 실험이다. 산문시와 시조의 병치 구조를 채택했다. 「탈경계 메타시 1~15」에서는 구어체와 산문 구조를 따르지만, 내포한 리듬 구조는 시조의 정형성으로 버무려 놓았다. 제4부의 「엇노리 시조」는 두 편의 연작 시조이다. 각각에 ‘2연시조’로 엮었다. 그 내부 언어는 풍자체이다.
「탈경계 메타시」의 연작에는 꼬집고, 비틀고, 쑤셔 대는 풍자성을 장치했다. 제3부 「뒷골목에는」의 시들은 시조, 동시, 풍자, 퀴즈형 시 등을 혼합한다. 「뒷골목에는 8」의 부제는 「화성이 태양을 쉰네 바퀴 돌 무렵 한국사 출제 중」이다. 미래 역사 시험 문제 형식의 시이다. 즉, 기성품(ready-made)을 모방하여 시를 정치 풍자의 도구로 사용한다. 100여 년 뒤, 미래의 역사 문제가 있는 다음 쪽 여백 아래 작은 글씨로 “참고 도서에 실린 이름을 본다. / ‘굥…… 뭐야. 한국 성이 왜 이래! 오자인가?’”라며 청자 혹은 독자의 독백 반응을 끌어들인다. 아래 시도 독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2022~2025년에 한반도에서 가장 가짓조디를 많이 한 혀를 고르시오.
① 청와대 혀
② 서초동 혀
③ 여의도 혀
④ 광화문 혀
⑤ 용산 혀
“굥 선생, 가끔 구라 쳐?”
“쳐!”
“인간이면 누구나 치지. 가끔!”
“가짓조디가 모국어인 사람도 있었다지?”
-「뒷골목에는 9—수성이 태양을 팔백사십 바퀴 돌 무렵 공동 출제하는 혀」에서
인용 시도 200여 년 뒤, 미래의 역사 시험 문제 형식을 취한다. 즉, 기성품을 모방하여 시를 정치 풍자의 도구로 사용한다. 문제가 있는 다음 쪽 여백 아래 작은 글씨로 “굥 선생, 가끔 구라 쳐?” / “쳐!” / “인간이면 누구나 치지. 가끔!” / “가짓조디가 모국어인 사람도 있었다지?”라는 대화문이 있다.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생성형 AI와 인간과의 대화이다. 달리 보면, 인간 출제자 간의 대화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를 상상한다면, 쉽게 읽힐 수밖에 없다.
메타시에 자의식을 내재시켰다. 「시인의 말」부터 「탈경계 메타시 1~15」는 시집 내부에서 시에 대한 명시적 비평을 수행한다. 특히 「탈경계 메타시 2―시는 다 죽었다 카이」는 시적 자의식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시의 죽음을 선언하는 동시에 그 죽음을 거부하는 시적 아이러니를 구현한다.
4. 시적 자아의 다성적 구조
이 시집에서 ‘나’는 하나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자아를 시마다 등장시켜, ‘복합 다중 시’에서 시적 주체 자아의 기능을 다중화한다.

특히 ‘시집’이 말하는 시는, 시 자체가 주체이다. 시가 말하는 메타 텍스트적 서사이다. 시인-시-독자의 삼각관계를 전복하는 구조로 기능한다. 이는 시의 말하기 주체를 다중화시키는 기법이다.
5. 기호 실험과 의미의 해체
이 시집은 기호학적 실험을 통해 시어를 해체하고, 시의 ‘읽기’ 자체를 해부한다. 마침표와 쉼표에 대해 「탈경계 메타시 7―시적 허용과 시인의 의도」에서는 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무작위로 마침표를 생략하는 행위가 의미의 무책임한 탈의미화임을 비판한다. 이는 데리다(Jacques Derrida)적 해체주의가 가지는 ‘의미의 미끄러짐(slippage of meaning)’에 대한 윤리적 응시이다.
인용, 패러디, 전도 관점에서 장자, 공자, 플라톤, 서정주, 박두진 등의 고전 문헌을 끌어와 오마주와 패러디의 절묘함과 함께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재맥락화한다. 이는 텍스트의 권위를 해체하고, 새로운 독자 해석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제3부 「뒷골목에는 8—화성이 태양을 쉰네 바퀴 돌 무렵 한국사 출제 중」에서 문제의 다음 쪽 여백 아래 ‘굥…… 뭐야. 한국 성이 왜 이래! 오자인가?’라는 청자 혹은 독자의 독백 반응에서 ‘굥’, 「뒷골목에는 9—수성이 태양을 팔백사십 바퀴 돌 무렵 공동 출제하는 혀」에서 문제의 다음 쪽 여백 아래 작은 글씨로 “굥 선생, 가끔 구라 쳐?”의 ‘굥’도 기호 실험이면서 의미의 해체이다. ‘굥’을 거꾸로 읽어도, 바로 읽어도 의미의 미끄러짐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6. 시집의 멍울: 시집의 오브제화와 문학 자본주의
제2부 「시집의 멍울」은 ‘시집’이라는 물리적 대상에 생명과 감정을 부여한다. 시집은 냄비 받침대로, 화상 흉터를 입은 존재로, 강아지 장난감으로 전락한 현실을 비판한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시집의 생산과 소비 형태를 고발한다. 이 시편들은 시집을 ‘읽는 대상’이 아니라 ‘버려지는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사회 구조에 대한 풍자이자 슬픔이다. 이러한 의인화 전략은 시집이라는 텍스트를 사회적 오브제로 다루면서 문학의 물화(物化), 즉 자본주의적 전락을 형상화한다. 시집이 선물용, 장식용, 쓰레기 취급을 받는 현실은 단지 문학의 위상 저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과 정서, 예술의 고유한 지위가 자본의 질서 안에서 소외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복합 다중 시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편들은 ‘문학에 대한 사회학적 풍자’와 ‘시적 정서의 메타 의식’의 중첩 지점이다.
시집은 어떻게 고전의 상상력, 즉, 장자의 상상력과 접속하면서 다시 읽힐 수 있는 지점을 살핀다. 이는 예술의 무용성과 생명성을 동시에 사유하는 기획이다. 결국, 문학의 죽음을 넘어서는 자가 치유의 기능을 포착해 나가는 방식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