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時論] 전쟁은 현실, 평화는 꿈?

여계봉 대기자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했다. 이어 이란 최고지도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트럼프는 이란 공습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이란의 핵 시설과 군사 시설을 타격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미국 대법원의 관세 위헌 판결, 엡스타인 사건, 2026년 미국 중간선거 공화당 대참패 예측, 트럼프의 지지율 급락 등의 악재 등을 한꺼번에 돌파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만회하려는 '실질적 몸부림'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신냉전의 파고 속에서 국제 질서의 도덕적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과거부터 미국과 유럽, 우리나라와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천명해 오던 '규범에 기반한 질서(Rules-Based Odrer)'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Policy)'를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의 거대한 실리 앞에 '규범에 기반한 질서'는 그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미국의 이란 공습을 두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 러-우크라이나 전쟁도 특별하지 않은 '또 하나의 전쟁'일 뿐이라고 동일시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이 규범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자주 규범을 바꾸거나, 때론 무시한다는 여론도 지배적이다.

 

우리 인류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전쟁 연구가들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황허 유역 등에서 문명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이래로 지난 3,400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겨우 268년이라고 한다. 지난 20세기도 100년 내내 전쟁으로 얼룩졌다. <파리 대왕>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 소설가 윌리엄 골딩이 "20세기는 폭력의 세기"라고 한탄했듯이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 발칸 내전 등 지역과 이념, 인종과 종교를 불문하고 유혈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70억 인구가 살아가는 21세기 오늘의 세계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한 해 동안에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은 전쟁들이 해마다 15건 정도 벌어지고 있다. 전쟁이 낳은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민간인 희생자가 군인 사망자보다 더 많다는 점이다. 한 전쟁 연구에 따르면, 1900~95년 사이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총 1억 970만 명이며, 이 가운데 민간인이 6,200만 명으로 전투원보다 더 많이 죽었다고 한다. 민간인 희생자의 상당수는 무차별 포격과 공습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휴전국이기 때문에 이 전쟁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전쟁의 비극과 참혹한 실상은 우리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를 겪었다는 것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지난 3,000년간 인간은 평화를 꿈꿔왔지만, 전쟁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파괴하며 아직도 우리 곁에 맴돌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정전이 아닌 휴전상태가 지속되는 중이다. 인류 역사상 전쟁은 한시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평화라는 이상이 전쟁이라는 현실에 번번이 밀려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인간은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존경은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권력 쟁탈 3,000년』에서 "전쟁은 수평선에 걸린 불길한 먹구름처럼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라고 언급한 저자 조너선 홀스래그는 BC 1,000년부터 지금까지, 3,000년 동안의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살펴보며 전쟁이 평화보다 우세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몇 가지 반복되는 원인′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 방대한 역사 안에서 시대와 지역을 가로질러 반복돼 온 패턴을 찾아내고, 전쟁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을 뒤흔들며, 국제정치의 본질을 파헤치는 질문을 던진다. 상업과 무역은 정말로 국제 평화를 증진할까? 민주주의와 참여가 전쟁을 예방할 수 있을까.

 

전쟁은 권력에서 비롯되는 보편적 죄악인가. 지정학적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지금, 저자는 인간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선택해 왔는가를 규명하며 우리가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는 "전쟁은 어쩌다 실수로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닌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사건이며, 평화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도덕'이나 '이상'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 "라고 말한다. 저자는 3,000년 동안의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조감하며 "인간의 도덕성에 기대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전쟁과 평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는 충족되지 않으며, 발전은 새로운 욕망을 낳는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지만, 전쟁의 결과는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끝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세계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조너선 홀스래그가 내린 결론처럼 '전쟁의 공포'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가? 좀 더 도덕적인 방법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는 없을까.

 

유감스럽게도 미국의 이란 공습 실시간 속보를 보며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 걱정은 '국제 정세의 불안'이 아니라 바로 '국내‧외 주가 급락'이었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예속되어 있는 우리는 실시간으로 자신의 자산 변동을 확인하면서 살아간다. 전쟁이 일어나면 환율과 유가가 널뛰기하고 주식시장은 큰 혼란에 빠진다. 그러다 보니 전쟁 국가의 주민들 고통은 뒷전이고 자기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 변화와 개인의 자산 손익부터 따져본다. 전쟁 지역에서 신음하고 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은 여러 가지 경제 지표의 수치 뒤로 스크린 되어 가려져 버리고 만다.

 

'법'이 아닌 '원초적 힘'으로 '위선'을 떠는 세상에서 '문명과 야만'의 기로에서 서 있는 지금의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6.03.04 11:44 수정 2026.03.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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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