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아장스망(Agencement), 삶이 바뀌는 새로운 배치

홍영수

질 들뢰즈와 팰릭스 가타리의 핵심 개념인 아장스망(Agencement)은 흔히 ‘배치’‘배열’, 다중체’로 번역된다. 단순한 사물을 정렬해서 배치하는 게 아니라 특정 지어진 목적이나 기능이 없이도 이질적인 요소들, 예를 들어 사물, 인간, 언어, 감정 등 전혀 다른 성격의 이질적인 것들이 우연이나 필연으로 만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힘이고, 또한 그것들이 얽혀 하나의 작동 체계를 이루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아장스망은 고정된 본성이나 구조가 아니라 새로운 요소들이 들어오고 빠져나가면서 새로운 배치의 성격으로 변하고, 우리가 어떤 ‘배열’과 ‘배치’ 안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들뢰즈의 아장스망 개념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어떤 배치와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라 ‘생성’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아장스망, 즉 다양한 배치에 결과이지만, 지금의 배치를 바꾸면 지금과는 또 다른 존재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학교 다닐 때 만났던 친구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했다. 그래서 과모임이 끝나면 2차의 술자리를 가지 않고 곧장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우연히 술자리에 자주 어울리면서 한두 잔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의 그 친구는 너무 술을 좋아한다. 그 친구의 부모님이나 주변의 그를 아는 지인들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술친구가 없다고 믿었는데, 어느 날부터 술을 마시게 된 것이다. 이렇듯 그 친구의 본성은 술을 못 마셨던 게 아니라 다양한 배치와 배열, 장소와 위치, 즉 술을 마시지 못한 차이 나는 친구 본성을 가로질러 친구들 사이의 다른 이질적인 술친구들을 만나 음주하게 된 것이다. 

 

들뢰즈의 아장스망 개념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어떤 배치와 어디에 속하는지에 따라 ‘생성’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아장스망, 즉 다양한 배치에 결과이지만, 지금의 배치를 바꾸면 지금과는 다른 또 다른 존재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흔히 사람이나 사물의 본성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데 들뢰즈는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선악, 미추, 고저장단 등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정된 게 아니라 어디에 연결되고 배치되는가에 따라 즉, 아장스망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망치가 강도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지만, 못을 박는 데 사용되면 유용한 도구가 되듯, 

이렇듯 망치의 본성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무엇을 만나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즉 어디에 배치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다. 

 

때론, 삶이 무료하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것은 지금의 아장스망이 나를 짓누르고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를 벗어나는 것을 들뢰즈는‘탈영토화‘라고 불렀다. 너무 익숙함에서 오는 지루함과 무료함을 벗어나 새로운 취미와 새로운 사람, 환경에서 탈영토화함으로써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혹시 지금의 삶이 답답하고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어떤 불편한 배치와 배열 속에 놓여 있는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린 늘 평소의 환경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환경에서 탈출하고픈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때의 탈출에서 새로운 삶의 아장스망이 시작된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무력감과 게으름은 단순히 의지력이 없고, 나이 듦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 젊은 날의 역동적이고, 활기차고 생산적인 배치에서 멀어지며 새로운 배치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었다고 쉬어 간다거나, 멈춘다거나, 정리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틀에 가두기보다는 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인 나라고 생각하자. 몸과 나이가 아니라 그 무엇을 만나 어떻게 접속하고 배치되느냐에 따라 새로운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은, 수많은 아장스망이지도 모른다, 들뢰즈가 얘기했듯이 ‘누구인가’보다 ‘어떤 배치에 속해 있는가’가 우리의 삶을 결정된다고 했듯이.

 

오늘 당장 책상 위에 놓인 연필통을 옮겨보고 책꽂이의 책들을 새롭게 배치해 보자. 그리고 창문을 열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혹시라도 마음을 붙잡고 있는 어느 단어 하나, 어떤 풍경 하나가 떠올려지면 바로 그것에서부터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6.03.09 10:59 수정 2026.03.0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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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