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라는 타국에서 온 며느리들의 효행 이야기를 읽었다. 한일 관계는 오랫동안 복잡한 역사의 무게를 짊어져 왔다. 이 책의 머리말은 그 무게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이제는 서로의 미래를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할 때라고 조용히 말한다. 그 손을 먼저 내밀어 온기를 전한 이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낯선 땅, 낯선 가족, 낯선 언어 속에서도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며 살아온 일본 며느리들의 삶.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부끄러웠다.
'효(孝)'라는 글자를 오래 들여다본다. 늙을 노(老)와 아들 자(子)가 합쳐진 글자다. 늙은 부모를 아이가 등에 업고 떠받치는 모양이다. 단순하지만 깊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당연한 마음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잊힌 진심을 타향에서 온 이들의 삶을 통해 다시금 일깨워 준다.
책 속 열한 편의 이야기 중 세 편이 마음에 머물렀다.
첫 번째는 다나카 하나에 씨의 이야기다. 1992년 한국으로 시집온 그는 시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집에서 모시기로 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이고, 길을 잃은 시어머니를 찾아 동네를 헤맸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그것을 '희생'이라 부르지 않았다. 시어머니를 가리켜 "우리 여섯째 아이"라고 불렀던 그. 효란 특별한 누군가가 하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곁에 끝까지 머무는 일임을 그는 삶으로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고자이 야스요 씨의 울림이다. 그는 일본의 과거에 미안한 마음을 품고 한국행을 택했다. 말도 문화도 서툴렀던 그에게 시어머니는 말 대신 '밥'으로 진심을 전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며느리의 생일이면 꼭 미역국을 끓여 주었고, 자신은 누룽지를 먹을지언정 갓 지은 따뜻한 밥은 늘 며느리 앞에 놓았다. 그 밥 한 그릇이 두 나라 사이의 깊은 골을 조금씩 메워 갔을 것이다. 야스요 씨는 그 사랑을 이웃 봉사로 되돌려주며 30년 세월을 채웠다. 효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번져 나가는 숭고한 과정이었다.
세 번째로 아오야나기 히토미 씨의 이야기는 고요하면서도 길게 남는다. 오랜 간병 끝에 시어머니를 보내드린 후에도 그는 그 사랑을 잊지 않았다. 임종 전 시어머니가 남긴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그 기억이 자신을 지탱해 준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효는 생전의 도리만을 뜻하지 않았다. 떠난 이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 마음의 결을 이어가는 것까지가 효의 완성임을 깨달았다.
이 책에는 대통령상이나 장관상 등을 받은 여러 일본 며느리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회가 이들의 헌신을 알아본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가족의 의미가 파편화되는 오늘날,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우리는 과연 부모님을 얼마나 마음 다해 모시고 있는가."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미역국 한 그릇, 누룽지 한 숟가락. 그 소박한 밥상 위에 국적도 혈연도, 과거의 상처도 없었다. 효는 거창한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함께 밥을 먹고, 곁을 지키고, 잊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지금은 곁에 안 계시지만, 오랫동안 전화기 한 번 들지 못했던 부모님을 떠올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룬 안부, 입 안에서만 맴돌다 흩어진 "고마워요"라는 말. 효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그저 곁에 있는 전화기를 드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효경》에서는 "효는 덕의 근본이며, 모든 가르침은 효로 인해 생긴다"고 했다. 책 속의 며느리들은 그 문장을 삶의 궤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국경을 넘고, 언어를 넘고, 역사의 아픔마저 넘어서. 그들의 조용하고도 단단한 사랑이 나의 메마른 마음 위에 오래도록 머문다.
[문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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