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에는 평산 신씨 열녀각이 하나 있다. 이 열녀각을 1967년에 중수하게 된 사연이 밝혀져 화제다. 그동안 열녀각의 주인공이 영산신씨로 잘못 알려져 있었던 것을 지역 선비였던 해산 이은춘이 평산 신씨 양금으로 바로잡고, 전국 유림들에게 통문을 돌려 성금을 모아 열녀각을 중수했다.
당시 해산 이은춘은 경남 창원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마전리에 살고 있었던 이름난 선비였다. 그가 열녀각 중수를 위해 전국 유림들에게 돌린 통문이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烈女閣通文
惟我坊內深里村 有一烈女旌閭顔之曰 故烈婦靈山辛氏之閭 傳聞此烈女事行則 居在右村 元來無子女 無族戚 但夫婦相依生活中 忽然一夜 有虎而來 噬夫而去 孑孑單身手 無所持扶執虎尾咬尾噬脚 虎死夫死自身亦死 矣厥後 歲久無旌表之典 烈女靈魂 自現于官 自官擧報于朝 特賜旌表之典 立閭于深里村 伊來數百年累次重建 而顔之曰 如石矣傾年關覽于舊漆原邑誌 該烈女姓申氏貫平山名良金 昭詳載在 鳴呼昔者羊公穀梁以尹氏 卒爲正卿左氏以尹氏 卒爲隱母 一以男子 一以婦人 二說皆傳聞 傳聞不可信云云也 由此觀之 今吾坊之靈山辛氏傳聞 邑誌之平山申氏史筆也 傳聞不可信 史筆可信也 故依邑誌改修則 文之筆之 刻之與木材之 所要金額多大 矣玆以仰懇望須諸賢 以追慕之誠 多小援助 千萬伏望 檀紀四千二百八十九年 九月
海山 李殷春"
"우리 지방 내의 심리촌에 열녀 정려각(旌閭閣)이 하나 있는데 현판에 ‘고 열부영산신씨지여(故 烈婦靈山辛氏之閭)’라고 씌어있다. 이 열녀의 행위를 전해 들으면 우촌(右村)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원래 자녀도 없고 친척도 없이 다만 두 부부가 의지하고 살아가던 중 홀연히 어느 날 밤에 호랑이가 와서 남편을 물고 가거늘, 혈혈단신에 맨손으로 호랑이 꼬리를 잡고 쫓아가면서 꼬리를 물고 다리를 물고 늘어지니 호랑이도 죽고 남편도 죽고 또한 자신도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도 이를 나타내는 정표 하나 없으니 열녀의 영혼이 스스로 관가에 나타났고, 관가에서는 이를 조정에 보고하여 특별히 정표의 은전을 받아 심리촌에 정려각을 세우게 되었다. 이렇게 수백 년을 지내오면서 여러 번 중건을 하여도 위와 같이 현판은 그대로였는데, 최근에 옛날 칠원읍지를 열람해 보니 해당 열녀의 성은 신(申)씨요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이름은 양금(良金)이라고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아! 옛날 양공곡양(羊公穀梁; 춘추곡양전에 나오는 책 이름)에는 윤씨(尹氏)로서 마침내 정경(正卿)을 삼았다 하였고, 좌씨(左氏;좌시공양전)에는 마침내 은모(隱母)로 삼았다 하였으니, 한 군데서는 남자라 하였고 다른 쪽에서는 부인이라 하는 등 두 군데의 말이 모두 전해오는 소문이라, 전해오는 소문은 가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우리 지방에 전해오는 영산신씨(靈山辛氏)는 전해오는 소문이지만, 읍지에 나오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는 역사의 기록이라, 소문은 믿을 것이 못되지만 역사의 기록은 가히 믿을 만하므로 읍지에 의하여 다시 고쳐 쓰려면 글을 짓고 붓으로 쓰고 다시 새겨야 할 것이다. 나무의 재목도 소요되니 금액이 많이 들 것이다. 이에 우러러 바라옵건대 모든 어진 현인들은 추모하는 정으로 다소나마 도움을 주시기를 엎드려 바라옵니다. 단기 4289년 9월 해산 이은춘"
이렇게 하여 심리 마을의 열녀각은 1967년에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작은 열녀각이 낡아 폐허가 되기 전에 성금을 모아 중건하면서 열녀의 성씨와 이름을 바로잡은 것은 향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산 이은춘은 이순신전략연구소 이봉수 소장의 증조부로 1882년에 태어나 1967년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퇴계 이황과 한강 정구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맥을 잇고 있으며, 서부 경남 지역의 남명 조식 문인들과도 교류했던 지역의 선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