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복합 다중 시론(複合多重 詩論)의 시적 실험과 탐색(5)

『수선화 꽃잎만 더듬는 늪에 던지는 돌』의 실험 시학

Ⅴ. 복합 다중 시론에 대한 의문과 해명

 

문학이 자기 언어를 의심하고, 해체하며,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도를 할 때 종종 반발이 발생한다. 이 시집 또한 그러하다. 전통적 의미의 정서적 서정이나 독자 친화적 서사를 기대한 이들에게 난해하고 차가우며, 자폐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되묻는다. 문학이란 반드시 이해 가능하고 감정적 공명을 중심으로만 기능해야 하는가? ‘복합 다중 시론’은 그 질문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문학의 윤곽을 그린다.

 

이 시집은 분명한 이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수용 미학, 구조주의 등이 텍스트 내외부에서 활발히 작동한다. 하지만 이 시집은 이론의 예속물이 아니다. 오히려 이론을 시의 내부로 끌어들여, 시가 이론을 ‘살아 있는 언어’로 변환하는 데 성공한 사례이다. 독자는 단순히 해석의 소비자가 아니라, 그 이론적 장치를 작동시키는 참여자이다. 이 시집은 독자를 감상자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역사 문제를 풀게 함으로써 텍스트의 협력적 공동 제작자로 탈바꿈시킨다.

 

이 시는 정서 자체를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정서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식화하고, 재생산하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해체할 뿐이다. 지금, 여기의 정서는 종종 상품화되고, 정치화되며, 특정 코드로 유통된다. 이 시집은 그러한 ‘정서의 산업화’에 반기를 들고, 감정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정서가 발화되는 조건 자체를 묻는다. 이는 단지 감정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감성의 발생과 구조를 시적 언어로 다시 쓰는 정서적 작업이다.

 

실험은 언제나 낯선 지점에 머물러야 한다는 요구는 오히려 실험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이 시집은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복은 자폐가 아니라, 실험적 시도가 자기 구조를 비평하는 과정이다. 그 반복 속에서 층위의 변화와 의미의 깊이를 형성한다. 기호의 전유와 전복, 화자의 분열, 문법의 파괴는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반복한다. 그 안에서 항상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것은 오히려 ‘실험의 내적 논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너무 열려 있어서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라는 식의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텍스트의 열린 구조를 곡해한 결과이다. ‘복합 다중 시론’은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지만, 결코 무질서를 조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해석 권력, 즉 저자 중심주의와 폐쇄적 비평 담론에 도전한다. 독자는 의미를 찾기보다는 생성한다. 읽기란 해석의 완결이 아니라, 갱신과 변주의 과정이다. 이 시집은 ‘이해하는 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의미를 호출하는 시’이다.

 

이 시집을 문학 제도와 동떨어져 있다며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전략적 긴장이다. 이 시집은 문학 제도 바깥에서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균열을 유도하는 텍스트이다. 전통적 독법과 비평 틀, 갈래 구분에 균열을 일으키며, 독자와 비평가에게 새로운 문학적 감수성을 요청한다. 이는 시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문학적 실천이다.

 

이 시집은 쉬운 시도도, 쉬운 읽기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필요한 시도이며, 더 오래 읽혀야 할 시집이다. 이 시집의 시도는 문학이 자기 언어를 점검하고, 독자와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려는 것과 관련이 깊다. 이는 시의 영역을 넘어서, 문학의 존재 방식 자체를 다시 묻는 일이다. ‘복합 다중 시론’은 하나의 방법론이 아니라, 문학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되살리려는 급진적 요청이다. 이러한 시도가 때로 낯설고 불편할지라도, 그것이 던지는 질문의 힘을 외면할 수 없다.

 

‘복합 다중 시론’은 자의식 과잉이고, 개념이 불분명하다며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복합 다중 시론’은 자의식 과잉이 아니라 ‘시가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메타시적 실험’이라는 문학적 정당성 위에 선 명확한 전략이다. 자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곧 시가 자신을 반성하고, 언어와 형식, 사회적 맥락에 대한 자기비판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이는 현대 예술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단지 난해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의식 과잉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또한, ‘복합 다중 시론’은 기존의 시 이론들(다성성, 혼종성, 참여시, 해체시 등)의 특징을 융합하고 확장하여 새로운 해석 모델을 제시한다. 개념이 불분명한 것이 아니라, 단일 범주로 환원할 수 없는 시학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복합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회 비판을 선언적으로 표현한다며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선언적 표현은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의도적 장치’이다. 즉, 시 속에서 직접적인 비판 언어는 현실 제도의 부조리를 환기하는 도구이다. 메타시 구조 안에서 ‘과잉된 진술’ 자체가 시적 아이러니와 비판 효과를 창출한다. 게다가 선언적 표현은 시 전체의 리듬이나 은유, 다중 구조 속에서 상징적으로 중화되거나 반어적으로 해석되며, 단순한 메시지 전달을 넘어서는 층위를 구성한다. 예컨대 “산문에 행갈이만 하면 진짜 시인 줄 안다.”는 직설은 현실 문학 단체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다. 동시에 시 형식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이론적 배경의 나열이 과도하고, 철학적 인용이 무비판적이다며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의 혼성성’은 ‘복합 다중 시론’의 핵심이다. 다양한 철학 이론(데리다, 라캉, 들뢰즈, 루만 등)의 인용은 단순한 지식 과시가 아니라, 시의 복잡한 의미 작용을 해명하기 위한 해석학적 장치이다. 예컨대 라캉의 ‘대상 a’를 통해 욕망의 미끄러짐과 시 해석의 불완결성을 보여 주는 것은, 시의 구조 자체가 결코 완결을 이루지 않는다. 독자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생성’이라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철학 이름만 인용’한 것이 아니다. 시 해석의 정합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리적 장치이다.

 

형식 실험의 과잉으로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며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형식 실험은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낯설게 하기’ 전략을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과 인식 전환을 유도한다. 이는 시의 기능을 감상에서 ‘사유와 각성’으로 전환하는 현대적 미학 실천이다. 산문시, 시조, 퀴즈형 시, 정치 풍자, 방언 등의 결합은 단지 파괴적 실험이 아니다. 다양한 미적 층위가 상호 충돌하면서 새로운 시적 긴장을 생산하는 장치이다. 특히 시집의 구성이 독자에게 다양한 접근 방식(시험 문제, 시 해설 포함 등)을 열어 둔다. 이는 수용 미학의 관점에서 독자의 능동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복합 다중 시론’이 기존 시론과 중복이다며 지적할 수 있다. ‘복합 다중 시론’은 단순히 기존의 다성성 시론(바흐친), 혼종성 시론(포스트모더니즘)과 유사한 이론이 아니다. 이론 간 단순 병렬이 아니다. 이질적 사조들을 충돌시키며 ‘하나의 시 안에 시론·비평·형식 실험·사회 비판이 공존하는 복합 구조’를 제시한다. 다성성 시론은 주로 소설의 화자 구조에서, 혼종성 시론은 주로 미학적 혼합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복합 다중 시론’은 자기 지시적 시론과 윤리적 실천성까지 포괄한다. 즉, 시가 스스로를 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와 독자, 제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새로운 형식의 시학이다.

 

독자의 해석 가능성을 너무 의도적으로 설계한 시적 구조는 텍스트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이다. ‘복합 다중 시’는 ‘해석의 자율성’을 구조 자체로 보장한다. 읽는 순서에 따라 시의 의미가 달라지고, 화자 간의 충돌이나 갈래 간의 대립은 단일한 의미를 거부한다. 이는 해석을 강요하는 구조가 아니다. 해석의 가능성 공간을 확장하는 전략이다. 독자가 시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과 맥락에 따라 의미를 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는 리쾨르(Paul Ricoeur, 1913~2005)의 해석학,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2002)의 수용 미학 이론에도 부합한다.

 

시집 전체가 지나치게 개념적이고 실험적이어서 정서의 전달이 약하다며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은 실험적이지만, 정서의 배제를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서는 ‘직접 진술의 형식’ 또는 ‘은유적 해체 구조’ 속에 새로운 방식으로 내재해 있다. 예컨대 시집 의인화 파트(「시집의 멍울」)에서 시집이 유린당하고 외면받는 묘사는, 정서의 깊이를 메타적 구조로 재현한 것이다. 정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이 부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새로운 감각적 리듬과 구조 속에 녹여 내는 것이 이 시집의 실험적 미학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6.03.18 11:45 수정 2026.03.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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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