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여계봉 대기자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늘 이맘때만 되면 김용택 시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에 나오는 이 구절이 떠올라 가슴이 벌렁거린다. 섬진강은 한반도의 뭍에 봄이 상륙하는 관문이다. 봄의 화신이 백운산 자락의 동백 숲에 온기를 불어넣으면 붉은 동백은 강변의 매화를 깨우고, 섬진강은 매화 향을 가득 담고 유유히 흐른다. 이윽고 매화는 산수유를 재촉하고, 산수유의 노란 영혼은 벚꽃을 부드러운 숨결로 어루만져 꽃망울이 터져 나오게 한다.

 

천천히 올라오는 봄기운에 가만히 몸을 맡겨도 되지만, 홍매가 전하는 꽃향기를 맡아야만 봄인 줄 아는 성미 때문에 남도를 향해 먼 길 떠난다.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들판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너른 들을 덮고 있던 겨울옷을 걷어내고, 새순이 돋아나는 나무 밑으로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풀들이 기지개를 켠다. 봄을 향해 달려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 산자락은 연두와 초록이 번지고 있다. 한 구비 도는 산길에서 섬진강과 마을 풍경을 보면서 매화밭에 들어서니 경기민요 매화타령이 절로 나온다. 

 

″좋구나 매화로다 어야디야 어허야 에 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백매화가 단아하고 청아하다면 홍매화는 열정적이다. 야윈 듯 가지 위에 점점이 붉은색에 흰색 물감을 조금 떨어뜨린 듯한 화사한 홍매화는 청명한 봄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매화 중에서도 으뜸인 홍매화는 짙은 화장을 한 여인의 상큼한 미소를 닮았다. 화려한 빛깔로 유혹하는 여인의 미소는 언제나 뭇 남정네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영화 취화선의 촬영지이기도 한 푸른 왕대숲이 하얗게 뒤덮은 매화꽃을 더욱 희게 보이게 한다. 

 

 

겨우내 움츠렸던 꽃망울을 터트리며 활짝 핀 매화는 오늘따라 더욱 도도하다. 넉넉한 꽃잎이 그러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그러하고, 맑은 향이 그러하다. 경봉 스님은 생전에 ″향기에도 소리가 있다″라고 설하지 않았던가. 지금 매화 향은 봄을 노래하고 있다.

 

백운산 자락 12만 평 동산에 마치 흰 눈이 내린 듯 온통 매화로 뒤덮여 있다. 투박한 돌담과 초가집 그리고 매화꽃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봄을 시샘하는 차가운 강바람이 산자락으로 달려오지만 만개한 매화꽃은 전혀 개의치 않고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봄의 예감은 아롱거리는 햇살에 스며오고, 봄의 기쁨은 벙그는 매화 꽃송이 따라 피어난다. 현란한 색과 강렬한 향에 취해 무릉도원에서 무아지경에 빠져 길을 잃을 것 같다. 

 

 

매화마을을 뒤로하고 강가로 내려선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 팔공산 옥녀봉 아래에서 발원한 물이 계곡에서 급하게 흐르거나 밭을 만나고 들을 적신 뒤 남해로 220㎞ 대장정, 마지막 느림의 미학을 풀어놓는다. 수월정(水月亭)에서 섬진강을 바라본다. 이제 매화꽃이 져서 이 강물이 서러움으로 흐르면 어떤 물빛이 내 가슴을 적셔줄까. 섬진강의 푸른 물결과 황금빛 모래 위로 흩날리는 홍매화 꽃은 한 폭의 수채화다. 강 건너로 보이는 하동읍내의 섬진강변에 펼쳐진 흰 모래밭과 울창한 송림 때문에 옛날부터 하동을 ′백사청송(白沙靑松)의 고을′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매화 떠나보내는 강가에서 유려하게 흐르는 물빛 가득한 섬진강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봄물 오른 푸른 갈잎 서걱대는 섬진강가에 서 보았는가 

초봄 흐린 날, 청매실 마을에서 붉디붉은 매화 속살을 보았는가 

강물에 그림자 드리워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가 매화나무를 보았는가 

강가에 서서 서럽게 떠내려간 홍매화 꽃잎처럼 붉게 울어 보았는가 

 

이제 꽃이 지면 꽃 피던 가지에는 그리움이 물 오른다

지는 노을이 번지는 강가에 서면 서러움이 그리움 되고

바람결에 매화 향 담은 강물은 세상 모든 그리움도 같이 담고 흐른다 

 

눈물에 젖지 않고, 그리움 스며있지 않고, 서러운 빛 빠진 강이라면

내 다시는 섬진강을 찾지 않으리.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6.03.30 11:18 수정 2026.03.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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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