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율동시회] 또 하나의 길

진정희

 

또 하나의 길

 

 

떠나기 전날 

깊어가는 밤바람이 창문을 흔들어

낡은 고무신으로 길 따라나섰지요

풀숲을 헤치며 달빛 따라 걸었어요

 

돌아오는 길, 구름이 달빛마저 삼켜버려

발등이 풀 넝쿨에 걸려 넘어졌어요

세찬 바람이 회오리처럼 덮쳤어요

 

하지만 나는 바람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요

 

풀잎 탓을 하며 풀잎 때문에 넘어졌노라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미소 지으며 그마저도 하늘이 내린

또 하나의 길이었노라 생각하고 싶어요

 

달빛과 함께 고무신에 묻어온 

풀잎 스러지는 소리와 바람

그 길 또한 소중한 나의 성소였으니까요

 

 

[진정희]

2002년 《한국문인》 등단

시집 『귀로에』

율동시회 회원

 

작성 2026.04.01 09:51 수정 2026.04.0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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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