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리는 오늘이, 가장 깊은 깨달음이 되는 순간
더 나은 삶을 향한 조바심, 흔들리는 마음, 그리고 끝내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통해 시작한 내면 여행은 불안의 끝에서 만나는 가장 조용한 확신이었다. 때론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때론 다시 걷기도 하면서 그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서 말이나 된 구슬을 꿰어 ‘진리 찾아 구만리’를 만들어 냈다. 전승선 시인의 ‘진리 찾아 구만리’는 강원도 깊은 산골 구만리 산골서재에서 불안과 고독으로 점철된 질문들을 쏟아내며 시간을 견디고 삶을 버티면서 찾아낸 시다. 시인은 일상의 미세한 결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끝내 닿을 수 없기에 더 멀어져 가는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다가 미처 붙잡지 못했던 감정의 순간들을 길어 올리며 흔들림, 불안, 기대, 깨달음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다정함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먼 길을 돌아온 사람만이 아는 진실을 이 시집에 풀어놓았다.
‘진리 찾아 구만리’는 내면으로 흐르는 질문과 침묵을 오래 응시한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언어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존재를 향한 탐구가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구만리 깊은 산골서재에서 언어의 불씨를 따뜻하게 피우며 진리를 찾지만, 진리 없는 진리가 진짜 진리라는 걸 깨닫게 된다. 밤에 별들이 까닭없이 반짝이고 낮에 꽃이 까닭없이 피듯이 삶은 나와 함께 까닭없이 흐르고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때로는 고요한 물결처럼, 때로는 거센 바람처럼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하며 찾고 또 찾았다. ‘진리 찾아 구만리’는 그 고요한 전환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진리라는 상투적이고 오래된 질문을 다시 독자에게 건넨다.
❙출판사 서평
우리는 끝내 묻게 된다
이 흔들림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이 불안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진리 찾아 구만리’는 질문을 멈추지 않은 마음의 기록이다. 그런데 그 기록은 지루하거나 난해하지 않다. 오히려 쉽고 재밌고 명랑하다. 전승선 시인은 강원도 깊은 산골 구만리에서 아이처럼 고독의 밀도를 파헤치다가 다시 조립하는 블록쌓기 놀이에 푹 빠져 살았다. 자발적 가난이 주는 텅 빔과 성찰은 다시 시로 부활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시인은 “진리야, 정해진 대로 너의 길을 가라. 즐거운 마음으로 내 곁을 돌고 돌아 멀리 아주 멀리 떠나가도 좋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진리가 조용히 곁에 앉아 “지금의 당신도 충분하다”라고 속삭인다. 시인은 늘 바깥을 향하던 물음을 안으로 되돌려 지금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있느냐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나는 새로워지고 길은 다시 시작된다네
생명은 나에게 맞는 영혼에 이끌려 가듯
의지를 일으켜 벌떡 일어날 때라네
마음에 빨대 꽂아 쌓아 올린 어리석은
내 관념의 유토피아여, 이제 안녕
- ‘말미암아’ p.27
사소하며 자연스럽고 은밀하며 날카로운 시어는 때론 아프게 찌르기도 하고 따뜻하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삶의 모순과 인간의 불완전함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기어이 숨통을 풀어 놓는다. 그래서 시원하게 숨 한번 쉬고 하늘 한번 올려다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진리 찾아 구만리’는 그렇게 ‘찾는 자’의 기록이며 ‘질문하는 자’의 노래다. 잘살고 있는지, 더 나아질 수 있는지, 끝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오호라, 나의 직업은 인간이었다네
인간은 살아서 맛보는 진리의 맛이라네
나는 인간이라는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완성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네
“자, 이제 불량품 제로에 도전해 보세”
- ‘내 직업은 인간’ p.90
그냥 버티지 않아도 괜찮고 삶은 이미 우리와 함께 흐르고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다워지는 것이라고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전한다. ‘진리 찾아 구만리’을 읽고 나면 삶을 바라보는 눈이 아주 조금, 하지만 분명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오래 그대 곁에 머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