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가 이성의 상징이라면 가슴은 감성의 상징이다. 머리가 이해타산을 계산하는 계산기라면 가슴은 사랑의 원천이다. 그래서 머리 돌아가는 대로 행동하면 적은 이익 소리를 챙기겠지만 큰 것을 잃는 대실을 하게 되는가 보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거슨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판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미국 정부와 사기업들이 공모해서 빈곤층을 체계적으로 속이고 착취한다면서 그 세 분야로 주정부의 복권 판매와 봉급날의 급전대여 그리고 도박을 언급했다.
특히 로또가 정치적 부패의 온상이라며 복권에 당첨되면 일하지 않고 일확천금할 수 있다면서 주정부들이 수입을 올리고, 급전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이 신용조사 없이 봉급날에 갚겠다고 돈을 빌리지만 세 자릿수 이자 때문에 큰 빚을 지게 되는가 하면, 리조트에 있든 도박장들을 중산층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지역 쇼핑센터로 이전시켜 도박벽을 조장하는데 정부와 비즈니스가 결탁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사행심리가 머리를 굴리는 잔꾀라면 가슴에서 샘솟는 사랑의 베풂은 통 큰 기쁨이다. 그 한 예를 들어보자. 요즘 미국에서 음식값의 50배를 팁으로 남긴 남성이 화제다. 일리노이주 프랭크포트의 식당 ‘스모키 바비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브렌든 모틸(19)은 최근 한 남자 손님이 남겨두고 간 영수증을 확인하고 놀랐다. 식대 20달러의 50배에 달하는 1,000달러를 팁으로 지불했기 때문이다.
ABC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에서 식대의 15-20%를 팁으로 놓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손님은 5,000%나 되는 팁을 놓고 갔다. 모틸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저 얼떨떨했다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면서 손님과 짧은 대화를 나눴을 뿐이라고 말했다. 영수증 옆에는 친절한 서비스에 감사한다는 인사와 함께 친절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알리고 싶었다는 내용의 메모가 놓여 있었다. 그 남성은 세상이 너무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때가 있다.
사람들이 서로를 좀 더 평화롭게 대했으면 좋겠다면서 내가 먼저 친절을 베풂으로써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후한 팁을 놓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모틸에게 네 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이 팁이 그 꿈을 이루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행운을 빌었다. 대학에 진학해 회계학을 전공할 예정인 모틸은 이 돈을 등록금에 보태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예로 최근 터키의 한 신혼부부가 결혼식 날 피로연으로 시리아 난민 4,000여 명에게 식사대접을 한 사연을 외신들이 전했다. 주인공은 7월 30일 터키 국경 도시 킬리스에서 결혼식을 올린 페툴라 유줌쿠오글루와 에스라 폴랏 부부다.
지난 1월 행방불명돼 이슬람 국가(IS)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김모(17)군이 IS 점령지로 가기 전 묵어 우리 한국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킬리스는 내전에 휩싸인 시리아를 떠나온 난민 수만 명이 거주하는 피난처이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이벤트는 터키의 비영리 국제구호단체 '킴세욕무'(터키어로 '누구 없어요'라는 뜻)의 자원봉사자인 신랑 페툴라의 아버지가 피로연 대신 난민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자고 제안해 성사됐다.
아버지 알리 페툴라는 바로 옆에 굶주린 사람들이 있는데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성대한 피로연을 여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해 아들 부부에게 이런 제안을 했고, 아들 내외 두 사람도 흔쾌히 동의해 이동식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킴세욕무’를 통해 난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게 되었다.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는 이 남성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신비롭게도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지녔을 개연성이 있는 '또 하나의 지구'가 태양계 밖에서 최초로 발견됐다는 뉴스다.
지구에서 1,400광년(1경3,254조km)거리에 있는 이 행성은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 행성들 중 크기와 궤도 등 특성이 지구와 가장 비슷해 ‘지구 2.0’의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7월 23일 전 세계에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브리핑을 통해 항성 ‘케플러-452’와 그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 ‘케플러-452b’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백조자리에 있는 항성 케플러-452는 분광형으로 볼 때 태양과 같은 'G2'형이며, 온도는 태양과 비슷하고 지름은 10% 더 크고 밝기는 20% 더 밝다.
이 항성의 나이는 60억 년으로 우리 태양(45억 년)보다 15억 년 더 오래됐다. 그 주변을 도는 행성 케플러-452b는 지름이 지구의 1.6배이며, 공전 궤도는 액체 상태의 물이 표면에 존재할 수 있는 '거주 가능 구역'내에 있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며 지구 크기와 비슷한 외계 행성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케플러-452b는 또 지금까지 발견된 거주 가능 구역 행성 중 가장 크기가 작다. 케플러-452b의 공전주기는 385일로 지구보다 약 5% 길고, 이 행성과 그 모항성 케플러-452의 거리는 지구-태양 간의 거리보다 5% 멀다. 이 행성의 질량과 화학적 조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과거 연구 경험으로 보면 이 정도 크기의 행성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바위로 돼 있을 개연성이 상당히 있다.
케플러-452b의 발견을 계기로 지금까지 확인된 행성의 수는 1,030개로 늘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로 돌아와서 인간 사회를 좀 살펴보자. 일찍이 공자는 인간 사회에서 뭣보다 중요한 것이 어질 인仁이라고 했다. 공자의 사상을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충忠, 효孝, 인仁, 의義, 신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가운데 글자가 인仁인데 이 글자를 눈여겨보자. 사람 인人에다 둘 이二를 합한 것으로 두 사람 사이 대인관계에 있어야 할 충의忠義, 효의孝義, 인의仁義, 신의信義를 뜻한다.
그런데 이 의義는 양羊이 나 아我 위에 있는 형상이다. 태곳적 옛날부터 양이란 동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순결과 친절과 어질고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이웃에게 언제나 사심 없이 순수하고 친절하고 착하고 아름답게 대하라는 지침인 것 같다. 여기서 효孝자를 보면 자식이 연로한 노인을 업는다는 경로사상을 의미하는가 보다. 그렇다면 이 인仁이야말로 참 '사랑'의 큰 개념으로 진정코 삶에 의의意義를 부여하는 것이리라.
공자가 기독교의 신을 실직자로 만들었다. 17-18세기 유럽 사상사에서 공자철학의 족적을 탐사해 온 황태연(60)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종교에 속박돼 있던 유럽인들에게 인본주의를 일깨우고, 신의 계율 없이도 윤리 도덕을 준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불러일으킨 인본주의가 곧 아시아에서 건너간 공자철학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공자철학의 사상사적 의미를 지닌 책이 지난 5월 출간된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다.
정치철학자이자 동서양철학을 하나로 꿰는 황 교수가 김종록(52-문화국가연구소장) 작가와 함께 썼다. 대만에서 중국어판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김종록이 묻고 황태연이 답하는 방식으로 공자철학의 의미를 짚어본다. 장세정 기자의 인터뷰 기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공자철학 이전 유럽에서 경험주의가 득세할 때는 평화스러웠는데, 합리주의가 득세하면 재앙을 초래하기도 했다는 김종록 작가의 말에 황태연 교수는 응답한다.
“합리주의는 결과적으로 나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나쁘다. 인간은 감성과 이성이 반반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은 감성이다. 감각과 감정의 능력을 감성이라고 부른다. 감성의 보조재나 보강재로 보면 이성은 좋은 거다. 그런데 인간은 80-90%가 감성적 존재인데 이성이 감성을 대체할 때 합리주의는 감성을 억압하게 된다. 감성을 합리주의로 대체해 그것으로 사회체제와 정치체제를 만들면 사람은 어떻게 되겠나. 공산주의나 히틀러의 나치즘도 합리주의의 산물인데 이것들이 인간을 억압하고 인권을 침해했다.”
흥미롭게도 중앙일보 ‘삶의 향기’ 칼럼에서 전수경 화가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감성적인 그림을 그린다.
“무덥다. 몸에 걸친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 누구나 벌거벗은 채 태어나고 죽어 염할 때 벗겨진다. 가리면서 삶이 시작되고 벗으면서 삶이 끝난다. 목욕이나 사랑을 나눌 때 벌어지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가렸을 때뿐이다. 가리는 것과 벗는 것, 그 중간 수위가 노출이다. 예술과 외설의 한계는 여전히 종잡기 힘들다. 예술의 노출은 진실을 드러내고 자유로워지려는 열망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그것이 특정한 개념과 형식 없이 까발려지고 방종하게 되면 외설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그 분수령은 어디쯤일까. 샤넬(코르셋과 긴 치마에 갇혀 있던 유럽 여성들의 몸을 해방시킨 혁명가, 프랑스의 코코 샤넬)은 럭셔리는 빈곤함의 반대말이 아니라 천박함의 반대말'이라며 자신을 드러내는 건 사치가 아니라고 노출을 옹호했다. 속옷의 노출은 곧 단정치 못하거나 야한 것으로 취급돼 왔다. 이 금기를 깬 인물이 레슬리 웩스너다. 그는 파산 직전의 빅토리아 시크릿을 인수해 세계 최고의 속옷 체인으로 일구었다. 그의 성공은 발상과 관점의 전환에서 비롯됐다. 그는 숨기고 가려져야 할 속옷을 드러내게 했다. 짙은 색 브라의 끈을 어깨에 노출시켰고, 여성 팬티의 아름다운 레이스를 겉옷 밖으로 드러내게 했다. 그뿐 아니라 란제리 패션쇼를 열어 여성에게 속옷은 숨기고 싶은 게 아니라 은근히 뽐내고 싶은 품목임을 증명했다. 웩스너에게 붙은 '여성의 마음을 훔친 남자'라는 별명이 전혀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필자는 화가다. 자화상과 누드 크로키는 숙명이자 일상다반사다. 모이레(지난해 6월 바젤아트페어에 초대받지 않은 스위스의 행위 미술가 밀로 모이레가 하이힐을 신고 검정 핸드백만 맨 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온 전시장을 누볐다. 그녀의 몸에는 부위마다 브라, 셔츠, 바지와 같은 단어들만 쓰였다. 옷으로 몸을 가리는 허위를 비꼬았다. 그녀의 천연덕스러운 돌출행동은 하나의 사건으로 비쳤고,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음)의 맨몸 행위예술을 일견 지지하고, 샤넬과 웩스너의 과감한 노출 발언도 옹호하는 쪽이다. 자, 이제 맨몸의 신비로운 여체를 연상시키는 강기원 시인의 시 ‘복숭아’를 음미해보자.
사랑은 그러니까 과일 같은 것
사과 멜론 수박 배 감 다 아니고
예민한 복숭아 손을 잡고 있으면 손목이,
가슴을 대고 있으면 달아오른 심장이,
하나가 되었을 땐 뇌수마저 상해 가는 것
사랑한다 속삭이며 서로의 살점을 남김없이 빨아먹는 것
앙상한 늑골만 남을 때까지
그래, 마지막까지 함께 썩어 가는 것
썩어 갈수록 향기가 진해지는 것
그러나 복숭아를 먹을 때 사랑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너무도 감성적인 시를 장석주 시인은 또 이렇게 변주한다.
“사랑은 영혼을 교란시킨다. 전대미문의 혼란을 겪는다. 사랑은 방향감각을 잃고 갈팡질팡하며, 비현실적 환상 속을 헤매 일상이 뒤죽박죽 엉키게 만든다. 사랑이란 뇌수마저 송두리째 서서히 물크러지며 상해 가는 것이거나 상대 살점을 남김없이 빨아 먹는 것이다. 사랑이 깊으면 광기도 깊다. 썩어 가는 과일이 그렇듯 무르익은 사랑의 향기도 진동한다. 하지만 어떤 사랑이든지 사랑은 불완전한 완전이고, 두 번 반복되지 않는 기적이다. 사랑하면 신의 영역까지 넘본다. 제 사랑을 감히 '영원'과 '불사'에 매달고 끌어달라고 간청한다.”
한 친구가 임태주 시인의 ‘어머니의 편지’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읽고 큰 감동을 받아왔겠지만, 더 좀 나누고 싶어 옮겨 본다.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