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맛있는 개똥철학] 자연지능과 인공지능

전명희

요즘 입에 달고 사는 ‘인공지능’은 그야말로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더 정확하게,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우리를 재촉하며 끊임없이 문명 안으로 밀어 넣는다. 문제는 그 속도가 우리의 감각을 앞질러 버린다는 데 있다. 생각을 대신해 주고 선택을 추천해 주고 판단을 정리해 주지만, 그 사이에서 우리는 점점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은 중립적이지 않다. 

 

인공지능이 빼앗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감각의 주권’이다. 손끝의 클릭으로 세상을 호출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에는 접속하지 못한다. 그렇게 삶은 풍요로워지지 않고, 단지 과잉된다. 채워질수록 비어가는 아이러니다. 인간은 점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작동하는 존재’로 변해간다. 인공지능은 우리를 대신해 생각할 수 있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마저 넘겨주기 시작할 때다. 판단을 위임하고, 감각을 외주화하며, 결국 선택의 책임까지 내려놓는 순간, 인간은 편리함과 맞바꾼 빈 껍데기가 된다.

 

반면 태어날 때부터 몸에 새겨진 자연지능은 인간 내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살아 있음의 감각’이다.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하며 배가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쉬듯 배운 적 없어도 가능한 지혜다. 자연지능은 우리를 느리게 하지만, 깊은 사색의 공간을 준다. 또한 인간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통해 삶을 배운다. 몸이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무너지면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안다. 

 

자연지능은 오래된 숲과 같다. 말없이 서로를 살피고, 스스로 균형을 맞추며, 필요 이상을 탐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정답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틀림 속에서 방향을 얻고,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살아 있는 삶에는 설명할 수 없는 평온이 있다. 숨 쉬는 법을 알고, 아픈 곳을 먼저 감지하며, 사랑해야 할 순간을 어렴풋이 알아챈다. 많이 갖지 않아도 괜찮고,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한 상태다. 이미 있는 것을 느끼는 능력은 자연지능에서 온다. 가장 본질적인 ‘나로 존재하는 힘’이 자연지능이다. 느끼고, 머뭇거리고, 때로는 틀리며 스스로를 완성해 가는 과정, 그 안에서만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을 추앙하며 살아가고 있다. 깊이보다 속도에 익숙해지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를 고민하기보다 무엇이 최적의 답인지를 요구한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우리의 두뇌는 점점 깡통이 되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실수할 자유를 잃고 선택할 권리를 포기하며 마침내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정확한 삶’을 살기 위해 ‘진짜 삶’을 희생하고 있지는 않은 것일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을 더 믿을 것인가. 알고리즘의 추천인가, 아니면 내 몸의 떨림인가. 데이터의 정답인가, 아니면 내 삶의 망설임인가. 이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게 물어볼 때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답을 주지만

자연지능은 삶을 준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6.04.17 10:26 수정 2026.04.17 10:26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