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모음의 실종

이태상

요즘 미국에선 어린애들처럼 말장난이 유행이다. 문장이나 단어, 단체명에서 모음(母音)을 생략하고 자음(子音)만 나열하는 방식이다. 언어의 진화라기보다는 퇴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한두 가지 예를 들자면 원래는 ‘The Management’란 이름으로 출발한 록 밴드가 이제는 그냥 'MGMT'로 불리고, 텀블러나 플리커와 같은 회사 이름에서 모음 ‘에(e)’를 빼버리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와 같은 모음의 실종이 오늘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의 풍조를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음이 실종되면 점차 자음까지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언어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모음의 실종이 모성(母性)의 실종을 의미한다면 이는 동심(童心)의 실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어린이들의 지상천국은 사라지고 어른들의 지상지옥만 남게 될 것이다. 

 

그래도 비관하지 않고 간절히 바라는 바는, 그동안 행동 없이 말로만 뇌까려 온 사랑, 인권, 자유, 평등, 평화와 같은 언어는 몽땅 집어치우고, 묵묵히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와 자연의 계시라고 생각된다. 프랑스 시인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그의 시 ‘모음’에서 다섯 개의 모음인 ‘아 에 이 오 우’에 다섯 가지 색깔을 부여했다. ‘아’는 검은색, ‘에’는 하얀색, ‘이’는 빨간색, ‘오’는 파란색, ‘우’는 초록색을 배정하면서 언젠가는 그 이유를 밝힐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 후에 쓴 다른 시 ‘지옥의 한 계절’에서 “(모음들) 색깔을 내가 정했지만,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면서 거기에 대한 설명을 거부했다. 그 이유를 우리는 그가 남긴 말 한마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천재성은 마음 내키는 대로 동심을 되찾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는 말을 배우고 언어를 익히기 전에 천심(天心)인 우심(宇心) 곧 코스모스바다의 마음 해심(海心) 동심(童心)을 타고나지 않았던가.

 

뉴욕타임스 ‘사회적인 문답 칼럼’에 ‘단순히 고마우면 족하리’란 제하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매년 나는 장성한 딸에게 딸 생일과 크리스마스 때면 수표를 보냈다. 딸이 선물보다 돈으로 달라고 해서였다. 그러나 딸은 단 한 번도 수표를 잘 받았다는 말이 없다. 이렇기가 벌써 여러 해째이다. 딸이 돈을 받은 사실을 나는 내 은행 계좌에서 내가 끊은 수표 금액이 빠져나간 것을 보고서야 확인하게 된다. 나는 몇 년 전에 딸에게 수표 받으면 받았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라고 했더니 그 후로 얼마 동안은 그러더니 그쳤다. 내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데도 수표를 보내는 것은 나의 희생인데. 딸의 묵묵부답 침묵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한다. 딸이 수표를 잘 받았다는 감사의 말 한마디 할 성의조차 없다면 더 이상 수표를 보내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수표 대신 카드 한 장 보내고 말까요? 딸의 감정을 건드리고 싶지 않지만, 내가 이보다는 나은 딸로 키웠는데요.”

 

(응답자 주: 여러 해를 두고 매주 적어도 하나의 변조된 이 같은 내용의 질문을 받아왔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의 요점에 몇 차례 답한 바와 같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선물을 주는 것이다. 넌지시 귀띔해 보고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섭섭하거든 더 이상 선물을 보내지 말라. 하지만 이 문제의 근본이랄까 근원에 지금껏 나는 접근 하지 못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새로 갖게 된 이론은 이렇다. 받는 사람에게서 받았다는 연락이 없는데도 부모(또는 삼촌 아니면 할머니)가 해마다 선물을 보낸다면 어쩌면 수령자는 이를 선물로 여기지 않고, 당신의 딸이나 다른 사람들도 이를 선물이 아닌 마치 주식 배당금이나 사회보장 연금수표처럼 당연시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선물이 배달된다는 사실이 그들이 이런 믿음을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딸에게 다시 얘기해서 당신이 보내는 수표는 자동적이 아니고 자발적인 것임을 분명히 하시라. 당신의 살림이 빠듯해도 당신이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수표를 보내는 것이라고 딸에게 말씀하시라. 그래도 딸의 고맙다는 말이 없어 기분이 상하시거든 딸에게 좀 더 배려심을 가지라고 말씀해 보시고, 그래도 소용없거든 수표 대신 카드만 보내시라.”

 

이상과 같은 기사를 보면서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 나 반복되는 현상이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 2015년 한 주말 영화 ‘국제시장’을 웃다 울다 하며 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흥남철수, 베트남 전쟁, 파독, 이산가족 찾기 등 중장년층 그들의 이야기였다. 나 같은 노년층에게는 이 영화에서 직접 다루지 않은 일본강점기와 8·15 광복과 그 후 겪은 갈등과 혼란상이 그 배경으로 중복되어 겹쳐지는 영화였다. 나 자신에게 재삼 재사 다짐하는 뜻에서 몇 자 적어보리라.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진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이나 옛날 어느 가수의 노랫말 “떠날 때는 말 없이”를 상기하게 된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고 보아 온 어르신들의 “내가 (또는 우리가) 너희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어찌 키웠는데”란 공치사의 말씀을 지겨워했었다. 노년층은 물론 중장년층에게도 좀 심한 말이 되겠지만,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본능적으로 제 새끼를 위해 제 목숨 아끼지 않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지 않던가.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의 독백처럼 “내는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것이 참 다행이다.”

 

이는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말 아닌가. 미국 가수 척 윌리스(1926-1958)가 부른 노래 ‘내가 (누구를) 위해 사는데(1958)’의 노랫말처럼 말이다. 사랑이든 선물이든 도움이든 받을 때보다 줄 때 그 기쁨이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느니 차라리 내가 받는 편이 덜 괴롭지 않던가. 그래서 영어에도 “Virtue is its own reward”란 말이 있으리라. 

 

“저는 계획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천년만년 사는 게 아니잖아요.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죠. 오늘을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2014년 8월부터 6개월 동안 방영된 KBS2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가 종영된 후 탤런트 김현주가 한 말이다. 이 주말 연속극 제목 자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한 마디로 축약해 표현하고 있다. 우리 남-북한 동족끼리, 지구촌 한 인간 가족끼리 정말 왜 이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드라마였다. 1977년생인 김현주가 1996년 뮤직비디오 ‘인생을’ 그리고 1997년 MBC 미니시리즈 ‘내가 사는 이유’로 데뷔한 이후,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 및 뮤직비디오 제목들만으로도 우리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건지를 말해주고 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밖엔 난 몰라’, ‘햇빛 속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등 말이다. 특히 2000년 SBS 창사 1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덕이’에서 정귀덕 역으로 나온 김현주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건지를 너무도 실감 나게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그 어떤 모진 세상 풍파라도 착하고 씩씩한 마음 하나로 다 극복하는 찬란한 인간승리의 찐한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었다. 

 

김현주의 말처럼 오늘 당장 지금 잘 사는 게 중요하지. 단 한 번밖에 없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순간을 놓쳐버리고 ‘만일에 어쨌더라면’이라 잠꼬대 같은 소리로 단 한숨이라도 낭비하고 허비하지 말 일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not to waste your breath”가 되겠다. 그 한 예로 영어에 이런 속담이 있다. “아줌마에게 불알이 있었다면 아저씨가 됐을 텐데. If auntie had the balls she would have been uncle.” 우리말로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진다고 하던가. 

 

“당신은 나의 옛 모습이고 또 나의 모습이 되리라.” 한 무덤의 비석에 새겨진 비문이다.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내가 아직 살아있을 때 어떤 선물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자문해본다. 선물이란 남에게 주는 게 아니고 나 자신에게 주는 게 아닐까. 뿌리는 대로 거둔다고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리라. 사랑을 주면 사랑이 돌아오고, 미움을 주면 미움이 돌아오며, 선물은 씨앗처럼 가슴에 떨어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리라. 내가 죽어 땅속에 묻혀 흙이 되거나 불에 타 재가 되어 하늘로 증발해 나의 아니 우리 모두의 영원한 고향인 우주의 자궁 속으로 돌아간 다음에라도 말이어라. 

 

우리 칼릴 지브란(1883-1931)의 ‘예언자(1923)가 베푼다는 것에 대해 하는 말 좀 들어보리라.

 

당신이 가진 것을 줄 때 

이를 준다고 할 수 없고

당신 자신을 줄 때라야

참으로 주는 것이 되리오.

 

오늘 많이 모아 놓는 것 

다 내일을 위해서라지만

아무런 자취도 남지 않는 

세월이란 모래밭 속에다

재산이란 뼈를 묻어둔들

어디에 쓸 데 있으리오.

 

뭐가 모자랄까 걱정함이

다름 아닌 그 모자람이오.

우물에 샘이 넘치는데도

혹 목마를까 걱정이라면

그런 갈증 어찌 가시리오.

 

많은 것 갖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주는 일 거의 없고

더러 좀 베푼다고 하더라도

생색을 내기 위해서라면

그 선심조차 욕될 것이오.

 

가진 것 별로 없어도 

그래도 다 주는 사람

따뜻한 가슴 속에는

삶의 샘 넘쳐 흐르리. 

 

기쁜 마음으로 주는 이

즐거움의 열매 거두지만

싫은 마음으로 주는 이

괴로운 가시넝쿨뿐이리.

 

준다는 기쁨도 즐거움도

모르고 그저 베푸는 이

산골짜기에 피는 꽃들이

그 향기로운 숨 내쉬듯 

그렇게 자연스러움이리.

 

참으로 너그러운 이에겐

받아 줄 사람 찾는 것이 

더할 수 없는 기쁨이리. 

 

세상에 아낄 것 무엇이오.

당신이 가진 것 모두다

싫든 좋든 그 언젠가는 

다 남겨 놓고 떠나는데 

당신이 살아 주고받는 

삶의 기쁨 나눌 일이오. 

 

당신이 세상 떠난 다음

벌어질 당신 유산 싸움

불씨 남겨 놓지 말리오. 

 

때때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줄 만한 사람에게만 주고

받을 만한 사람만 받으리.

 

사람 봐 베풀라고 하지만

과수원에 있는 나무들과

풀밭의 젖소들과 양들은 

그런 말 절대 안 하지요.

 

과일이고 우유고 털이고

가진 것 다 남에게 줘야

제가 사는 줄 잘 알지요.

끝내 지니고만 있다가는

썩어 없어지게 될 것을.

 

살아 숨 쉬면서 제 목숨 

받아 누리는 사람이면

그 누구라도 그 뭣이든

떳떳이 받을 수 있으리.

저 큰 강물과 바닷물이

시냇물 다 받아들이듯.

 

우리가 주고받는 것이 

참으로는 우리 숨일 뿐.

날숨인가 하면 들숨이고

들숨인가 하면 날숨이리.

 

우리 모두 누구나가 다

사랑의 이슬 맺힌 삶을

받아 누리는 물방울들로

모든 것 다 내주는 땅과 

끝도 한도 모르는 하늘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

우리의 넉넉함 나누리오. 

 

아, 그래서 영국의 시인 존 던(1592-1631)도 사람은 아무도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 한 몸과 한마음이라고, 서로 서로의 분신이라고, 네 삶과 네 죽음이 내 삶과 내 죽음이라고 다음과 같이 읊었으리라.

 

‘No Man is an Island’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any manne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아, 또 그래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인디언들도 이런 주문을 외었으리.

 

“The rivers don’t drink their own water; 

the trees don’t eat their own fruits. 

 

The sun doesn’t shine for itself;

the flowers don’t give their fragrance

to themselves.

 

To live for others is nature’s way….

 

Life is good when you are happy;

but life is much better when others are happy 

because of you!

 

Who doesn’t live to serve, 

doesn’t deserve to live.

Our nature is service.”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6.05.02 10:41 수정 2026.05.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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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