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대 칼럼] 일흔 중반의 첫 경험

문용대

사람들은 나이 칠십을 고희(古稀)라 부르며 삶의 매듭을 지으려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일터로 향하는 현역이다. 반백 년 넘게 조직의 일원으로, 때로는 내 사업의 주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육십 년. 강산이 여섯 번 변하는 동안 숱한 위기와 변화를 겪으며 이제는 내 몸 구석구석 모르는 사정이 없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칠십육 년을 함께한 사랑니 하나가 이토록 낯설고 깊은 고통을 안겨줄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치아 건강만큼은 타고난 복을 누리며 산다고 자부해 왔다. 사십 대인 딸아이만 해도 어릴 적부터 교정을 하고, 수시로 치과를 오가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지만 한편으로는 탈 없이 버텨준 내 잇발이 고맙기만 했다. 칠십 중반이 되도록 치과 신세를 거의 지지 않았으니 치통은 내게 늘 먼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꽤나 오래 버티며 살아왔다. 직장의 풍랑을 지나 내 사업에 몸을 던졌고, 다시 조직으로 돌아오기까지 스스로를 다잡으며 견뎌왔다. 사스와 메르스, 그리고 길었던 코로나19의 시간 속에서도 나는 진통제 한 알 찾지 않았다. 약보다 몸과 마음의 힘을 더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일터를 지켜온 나만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잇몸 깊은 곳 어금니에서 시작된 통증은 내 자존심을 한순간에 허물어뜨렸다. 평생 멀리했던 진통제, 밤잠을 설치다 심야에 어렵게 구해 온 타이레놀 한 알을 손에 올려놓았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용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약이 아니라, 오래 버텨온 나 자신에게 건네는 작은 허락 같았다. 60년의 긍지가 하얀 알약 하나에 실려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찾아간 치과병원, 발치하기 위해 마취가 퍼지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사십 분은 유난히 길었다. 이윽고 시작된 발치. 오랫동안 제 자리를 지켜온 이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의사는 힘을 다했고, 나 역시 온몸에 힘을 준 채 버텼다. 턱 근육이 결딴이라도 날 것 같았지만 끝내 뽑혀 나왔다.

 

그 다음의 과정은 더 큰 인내를 요구했다. 피와 침을 뱉지 말고 삼키라는 의사의 지시는 고역이었다. 비릿한 액체를 입안 가득 머금고 억지로 삼키며 압력을 죽여야 하는 그 시간은 위기 속에서 입술을 깨물며 버티던 일들을 떠올리게 했다. 갈증이 나도 빨대를 쓸 수 없어 물 한 모금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사흘 동안 부드러운 두부와 계란국으로 허기를 달래며 버텼다. 다행히 이제는 극심했던 통증이 가라앉고, 굳어 있던 턱의 감각도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

 

남들은 진작에, 혹은 청년 시절에 겪었을 사랑니 발치. 나는 아프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루다가 이제야 그 때를 마주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지만, 내게 사랑니는 칠십육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 때를 만난 셈이다. 남은 세 개의 사랑니가 앞으로 또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일을 겪으며, 인생은 끝날 때까지 처음 겪는 일들이 연속된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그 앞에서 60년의 경력조차 겸허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칠십육 세의 봄, 나는 평생의 고집 같던 진통제 한 알을 삼키고 오랜 세월 함께한 사랑니 하나를 기꺼이 내주었다. 그 대가로 묵직한 통증 대신 새살이 돋아날 가벼운 빈자리를 얻었다. 내일 아침 다시 일터로 향하는 길, 남은 세 개의 사랑니가 무탈하기를 바라며 신발 끈을 조여 맨다. 60년의 세월이 그러했듯, 남은 길도 묵묵하고 겸손하게 걸어가려 한다.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소설문학상 수상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코스미안뉴스, 브레이크뉴스 고정 필진

한국예인문학, 지필문학, 대한문학, 각종 문학카페 활동

대한문학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수필집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영원을 향한 선택’

이메일 : myd1800@hanmail.net

 

작성 2026.05.14 11:38 수정 2026.05.14 11:38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정명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