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맛있는 개똥철학] 학술용병

전명희

학자는 진리를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다. 진리의 순례자는 어떤 직업보다 순수하고 정의로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학문도 사고파는 시장이 되었고, 연구실에는 자본의 냄새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기업의 돈으로 논문을 쓰고, 누군가는 권력의 입맛에 맞춰 통계를 다듬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존재해야 할 지식이, 이제는 누군가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방패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전문가 의견’이라 부르지만, 때로 그 안에는 양심보다 돈으로 점철된 계약서가 먼저 들어 있다.

 

‘학술용병’은 총 대신 논문을 들고 싸우는 사람들이다. 연구자들이 강의나, 공동연구 등 실질적 참여가 부족한데도 숫자로 거짓을 포장하고, 어려운 용어로 탐욕을 숨기며 소속만 보란 듯이 기재한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이 악당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번듯한 교수 명함과 권위 있는 학회 이름 뒤에 숨어, 사회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결국 가장 비싼 대가는 학생들과 국민들이 치른다. 진실을 믿지 못하는 사회는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흔들리기 때문이다.

 

학문은 밥그릇이 아니라 양심의 싸움이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학자는 권력의 식탁에 앉는 사람이 아니라, 촛불 옆에서 끝까지 질문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돈을 따라가는 지식은 오래 남지 못하지만, 진실을 따라간 한 문장은 시대를 넘어 살아남는 법이다. 인간은 결국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보다, 그 앎을 누구를 위해 사용했느냐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학술용병이 위험한 이유는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다. 진실의 절반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새빨간 거짓보다, 교묘하게 편집된 사실에 더 쉽게 속는다. 통계 하나를 빼고, 조건 하나를 숨기고, 불편한 연구 결과를 침묵 속에 묻어버리면 거짓은 어느새 ‘권위’라는 옷을 입는다. 그래서 시대는 가끔 무식한 사람보다, 양심 없는 똑똑한 사람 때문에, 더 깊이 병든다.

 

지식은 칼과 같다. 굶주린 사람의 빵을 자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등을 찌를 수도 있다. 결국 학문의 품격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끝까지 인간 편에 서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역사 속 위대한 학자들이 존경받는 이유도 논문 편수가 아니라, 진실 앞에서 권력과 거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는 시대를 바꿀 수 있지만, 인간의 양심만이 시대를 구원한다.

 

우리는 늘 “먹고살아야지”라고 말하며 양심의 가격표를 붙이려 한다. 그러나 학문이 권력의 하청업체가 되는 순간, 사회는 생각하는 힘을 잃는다. 그때부터 대학은 진리를 묻는 공간이 아니라 스펙을 찍어내는 공장이 되고, 지식인은 시대의 등불이 아니라 광고판이 된다. 그래서 어떤 시대의 수준은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끝까지 팔리지 않은 지식인의 숫자로 결정된다. 학자의 본질을 잊은 대학이 지성의 전당으로 다시 우뚝 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실을 연구하면 학자, 

학문을 납품하면 학술용병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6.05.15 11:42 수정 2026.05.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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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