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영천 지역 의병 이정분 후손 추적

통영시 광도면 황리에 후손들 살고 있어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 영천 지역의 선비 최응사(崔應泗)는 의분을 참지 못하여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았다. 잠시 동안에 수백 명의 승려와 농민들이 의로운 깃발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 때 그의 나이 73세였다. 모여든 의병의 대열에는 이득룡(李 得龍), 이지암, 이영근(李榮根), 이정분(李廷芬) 등 경주 계연(鷄淵) 싸움에서 전사한 세칭 17의사 중 몇 명도 끼어 있었다.

 

최응사는 늙은 몸이라 직접 의병 대열에 참가하지 못하고 의병들의 추대로 중위장이 된 셋째 아들 벽남(擘南)에게 지휘를 맡겼다. 의병들은 말을 잡아 피를 나누어 마시며 나라를 위하여 함께 죽기로 맹세했다. 영천성을 수복하기 위한 전투에 참가하기 위하여 훈련을 마치고 떠나는 아들 최벽남 조카 최기남(崔起南) 손자 최율(崔율)을 격려하는 늙은 선비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 그 자체다. 의병들은 영천성을 탈환하고 다시 경주성으로 달려갔다.

 

최응사 가문 외에도 대를 이어 의병에 참가한 집안은 의사 이정분(李廷芬)의 영천이씨 가문을 들 수 있다. 이정분은 집안 조카인 이영근과 함께 참전하여 경주성 탈환 전투에서 51세의 나이에 전사했다. 그러자 그의 아들인 이제(李濟)는 의령의 의병장 곽재우 휘하로 달려가 제1차 진주성 싸움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이어서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처자를 남겨두고 장열히 전사했다. 영천이씨 가문은 실로 충절의 집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진=코스미안 뉴스 / 2004년 통영시 광도면 황리를 방문했을 때 취재에 응한 이형규 할아버지

 

이제(李濟)의 후손들이 지금 통영시 광도면 황리에 살고 있으며 필자는 이러한 사연을 알아내기 위해 2000년대 초에 황리를 세번 방문했으며, 경기도 성남 분당에 사는 영천이씨 종친회의 이봉규 선생으로 부터 족보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했다.

 

2004년에 통영시 광도면 황리를 방문했을 때 이형규 선생은 자신의 집안이 영천에서 통영으로 이주한 내력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돌감나무골로 안내하여 친천량해전 당시 춘원포(광도면 황리)로 상륙하여 전사했다는 원균 장군의 묘로 추정되는 묘소를 알려주었다.

 

작성 2026.05.19 11:26 수정 2026.05.1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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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