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면 글이 보인다”라고 말하니 뜬금없는 얘기로 들린다. 혹자는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또는 필자의 정신상태가 예사롭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어느 상황이든지 제목이 내용을 충실히 담지 못했거나, 의미 있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필자에게 귀책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잘못은 있을 수 있으나 오류는 없다는 점. 산과 글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높이 올라갈수록 글이 잘 보이게 된다.
산행의 맛은 어느 순간 탁 트인 조망을 갖게 된다는 것.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인내를 발휘하던 심신이 탁 트인 전경을 보게 되는 순간엔 모든 것을 잊게 된다. 결코, 낮은 고도에서 전망이 좋을 수는 없다. 높이 올라가면서 어느 순간 산 아래를 내려다볼 기회가 주어지며 시야는 넓어진다.
미국에서는 대학입학 자격요건으로서 에세이 쓰기를 포함한다. 글에 담겨있는 지원자의 아이디어와 창의성, 지적 편력(遍歷), 관점과 비전, 논리성과 필력까지의 모든 것을 길지 않은 글에서 다 파악할 수 있다. 얼마 전 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에세이 책을 끄집어냈다.
문득 읽어보고 싶던 생각이 들어서, 미국이민. 죽음과 이별. 가족. 자화상. 스포츠와 야외활동. 창의적 생각. 직장업무. 해외여행. 쓰기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각 대학 지원자들의 에세이 모음을 읽어보았다. 그 중엔 명확한 관점과 논리적 전개를 보여주는 스마트한 하버드, 예일대 지원자의 글과 같은 대학 지원자면서도 글이 그다지 어필하지 않는 필자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뛰어난 지방대생의 글도 있었다.
놀랄만한 일은 내게 있었다. 글의 전개가 한 눈에 들어오는 특이한 변화를 감지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읽어내지 못했던 다른 글의 장. 단점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스스로 글을 써가면서 취약점을 파악하고 보완해가는 자정 노력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쓰고 나면 또 고칠 것이 눈에 띄고, 미흡하여 지우고 다시 쓰는 우둔한 작업. 그렇지만 그 작업이 의미 있고 좋게 느껴진다. 부족함을 알고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는 작업이 가치 있게 느껴진다.
글 여행 속에서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진리. 기본적인 것은 늘 부족함을 느끼고 고심하며 나아간다는 것이지만,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이 어느 정도 고도를 오르면 자신만의 즐거움과 관점, 색깔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떤 글에는 과욕이, 어떤 글에는 조바심이, 또 어떤 글에는 상업성이, 또 다른 글에선 교만과 공명심, 지적 허영을 보이는 현란한 수사가 있다. 하지만 수많은 진실하고 정직하며 번득이는 지혜를 안겨주는 많은 글. 말없이 채찍질하고, 성찰하며, 통찰하는 묵묵한 글들이, 삶을 윤기 있고 풍요롭게 한다. 거칠고 성긴 나의 글도 언젠가는 그 가운데 속하기를 소망한다.
[신연강] 인문 작가 / 문학박사
전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