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나는 몰랐네

곽흥렬

몇 해 전 낙향한 뒤로 전에 없던 습관 하나가 새로이 생겨났다. 지난날의 영상이 박제된 내 고장 이곳저곳을, 마음이 가자는 대로 내맡겨 따라다니며 옛 추억의 필름을 되감아 보는 일이다. 이 일은 대도시에서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시골살이의 소소한 행복감을 선사해준다. 

 

오늘은 읍내 나들이 나온 길에 어린 시절 두어 차례 들른 적이 있는 K 성당을 한번 둘러보고 싶어졌다. 중학 때 대처로 나가 공부하느라 고향을 떠난 이후 학업을 마치고도 생업에 끄달려 어정쩡하게 눌러앉아 지낸 삼십여 년간의 타관살이, 그동안 강산이 세 번도 더 바뀔 만한 시간이 흘렀으니 K 성당은 지금쯤 얼마나 달라져 있으려나. 

 

고요로운 경내에 혹여 훼방꾼이라도 될까 봐 발소리를 죽여가며 가만가만 고양이 걸음을 내디딘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정원의 꽃과 나무에 눈을 맞추고, 경당이며 종탑, 성모상, 사제관 그리고 쓰임새 모를 시설물 들을 찬찬히 살피면서 상념의 뜰을 거닐고 있었다. 

 

그때였다. 옥타브를 한껏 높인 여자의 가시 돋친 독설이 느닷없이 날아와 뒤통수에 꽂혔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욧!”

 

흠칫 놀라 고개가 반사적으로 소리를 좇아 돌아갔다. 삼십 대 중반쯤의 한 수녀가 도끼눈을 한 채 노려보고 서 있었다. 톡 쏘아붙이는 말투에, 그 순간 꼭 여색을 탐하려다 들켜 치한으로 몰린 것 같은 황망한 기분이 되었다. 어이쿠야 싶어, 비대발괄하는 푸념을 얼버무리며 총총걸음으로 거기서 빠져나왔다. 

 

몇 차례 심호흡으로 가슴의 울렁거림이 조금 가라앉자, 불현듯 절집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굳이 편 가르기를 하자는 심산은 아니지만, 절집의 모습과 묘한 대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절집은 성당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자주 찾는다. 두 번째 서른 살도 훌쩍 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온 나라 골 곳에 흩어져 있는 가람들을 걸음한 횟수를 손꼽아보면 줄잡아 수백, 아니 수천 번은 되었을 듯싶다. 그럼에도 입때껏 단 한 번도 애먼 사람을 그처럼 매몰차게 몰아세워 무안케 만드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절집에 갈 때면 학승들이 참선 수행하는 공간에 방문객의 접근을 통제하는 팻말이 붙어 있는 광경을 일상다반으로 목격하게 된다. 

 

‘여기는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이니 외부인의 출입을 금합니다’

 

이런 경고문을 만나면 누구든 알아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반응일 터이다. 아무리 곰곰이 되짚어보아도 성당에서는 지금껏 절집에서와 같은 팻말을 본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네 저 달이 날 속일 줄” 이렇게 노래한 어느 유행가 가사 한 소절이 생각났다. 그 유행가 가사에다 개사改詞를 해서 불러보아도 영 불편한 심기는 가시지 않았다. ‘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네 그 수녀가 날 쏘아붙일 줄’ 

 

과문의 소치인진 모르겠으되, 외부인의 접근을 제한하는 팻말이 없기에 당연히 아무라도 들고남이 자유로울 것으로 알았다. 아니 설사 나의 무단출입이 분별없는 행동이었다 치부하더라도, 보다 살가운 목소리로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더라면 좀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는 수녀님들의 생활 공간이니 일반인이 허락 없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만일 그랬다면 내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했을 게 틀림없다. 미안한 마음은커녕, 부글거리는 모욕감으로 자칫 내면의 통제력을 잃을 수도 있었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나달이 흘러갔다. 그 수녀분은 아마도 그날의 일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는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가슴에 새겨진 내상內傷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다 낯선 곳을 들르게 되는 날이면, 문득문득 K 성당에서의 당황스러웠던 장면이 되살아나 나도 모르게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면서 누구한테 피치 못하게 무언가를 지적하거나 허물을 타일러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는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 것인지, 새삼 마음 자세를 가다듬곤 한다.

 

훗입맛이 씁쓸하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수상

유혜자수필문학상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6.06.24 10:30 수정 2026.06.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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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