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론
디카시는 21세기 디지털 환경 속에서 생성된 새로운 시 형식이다. 사진과 짧은 언술의 결합을 통해 감각과 정서, 의미의 층위를 확장하는 복합 예술로 평가받는다. 디카시 협회에서는 디카시의 본질을 “디카시는 결국 영상 기호와 언어 기호로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또한, “사진과 짧은 언술의 융합”이라는 형식적 특성을 강조한다. 이 주장은 디카시 창시자 이상옥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이러한 정의가 지닌 기호론적 환원과 형식 중심의 협소함을 지적한다. 디카시를 보다 더 이론적으로, 포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2. 영상 기호와 언어 기호로의 환원 문제
이러한 정의는 디카시의 두 구성 요소(사진과 언어)를 기호학적 틀로 설명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사진은 ‘영상 기호’, 텍스트는 ‘언어 기호’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는 타당하다. 이러한 접근은 디카시의 창작과 수용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상호 작용성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디카시는 단순히 ‘영상+언어’의 합이 아니다. 사진이 환기하는 현전성과 언어가 생성하는 지연된 의미망 사이의 간극, 나아가 이 간극에서 파생되는 긴장과 해석의 다층성이 디카시의 본질이다. 기호의 병치로 환원하는 순간, 디카시를 독립적인 시적 실험으로 자리매김하는 혼종적 시학(hybrid poetics)의 의미가 흐려진다.
3. 언술 개념의 협소함
그들은 “언술이란 결국 5행 이내의 사진과 어울린 시”라고 정의한다. 이는 디카시 창시자가 요구하는 규칙, 혹은 경험적 창작 규칙을 반영한 것이다. 이론적 정의로는 불충분하다. 언술은 단순히 행의 개수나 길이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의 시적 잠재성과 정서적 환기력에 의해 의미화가 이루어진다.
동일한 사진을 바탕으로 한 디카시라도 언어의 선택과 배열에 따라 기호의 층위와 해석 가능성은 무한히 달라진다. ‘5행 이내’라는 양적 제한을 본질로 규정하는 것은 디카시의 창작 가능성을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행은 의미 단위, 이미지 단위, 리듬 단위, 호흡 단위 등으로 나눈다는 것쯤은 시인이라면 잘 알 것이다. 시인의 자율성 문제를 제약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흔히 짧은 시는 10행 이내로 본다. 박목월의 시 「청노루」는 5연 10행이다. “머언 산 청운사 / 낡은 기와집 // 산은 자하산 / 봄눈 녹으면 // 느릅나무 /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 청노루 / 맑은 눈에 // 도는 / 구름”이 전문이다. 매우 간결한 5연 10행이다. 짧은 시어 배열로 하나의 장면화를 이룬 시이다. 즉, 짧은 시이다.
4. 디카시의 혼종성과 경험의 현전성
디카시는 무엇보다 혼종성과 경험의 현전성으로 정의해야 마땅하다. 디카시는 사진 매체가 지닌 즉각적 현전성(immediacy)과 언어의 지연된 해석(deferred interpretation)이 교차하여야 만, 독자에게 새로운 감각적·정서적 층위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디카시는 단순한 매체 융합이 아닌, 기호 간 상호 작용을 통해 생성하는 ‘시적 사건(poetic event)’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사진은 시적 맥락을 제공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언어가 촉발하는 상상력과 해석의 유동성 속에서 의미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5. 대안적 정의
이를 종합하면, 디카시를 다음과 같이 재정의할 수 있다. 디카시란, 사진이라는 매체가 제공하는 시각적 현전성과 언어가 지닌 시적 잠재력이 상호 작용하여 새로운 감각·정서·서사적 층위를 생성하는 복합 예술 형식이다.
이는 영상 기호와 언어 기호의 단순한 병치가 아닌, 시각적 기호인 사진과 언어 기호 간의 긴장과 교차, 수용자의 해석 행위를 통해 완성해 나가는 열린 시이다. 이 해석 행위는 사진과 단절 혹은 해체 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야 타당할 것이다.
6. 나가기
디카시 협회에서 주장하는 정의는 디카시를 형식적으로 단순화하여 설명하는 데는 일정한 효용성이 있다. 이를 기호학적 병치로 환원할 경우, 디카시가 지닌 시적 실험성, 매체 혼종성, 해석의 다층성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디카시는 영상과 언어가 융합된 산물이라는 주장은 폐기해야 마땅하다. 디카시는 시각적 기호인 사진과 언어 기호의 경계와 틈에서 발생하는 시적 의미와 정서의 유동성 속에 존재함을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디카시의 본질을 보다 정교하게 이해하려면, 기호론·수용 미학·매체 이론을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영상 기호+언어 기호’라는 이분법적 정의와 시적 언어를 ‘언술’로 격하하는 것은 재고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디카시의 현상과 가능성을 포획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지금까지 사진과 언어를 동일한 기호 체계로 취급하는 디카시론의 환원주의를 분석했다. 사진의 지시성(iconicity)과 언어의 자의성(arbitrariness)은 구조적으로 다르다. 이 차이를 삭제하는 순간, 디카시는 기호적 긴장을 상실한다. 결과적으로 사진은 설명의 대상으로, 언어는 해설로 기능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