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늘 이런 기쁨이다.
자연을 만나는 일,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생성과 소멸의 교차점에 서 보는 것이다.
바다를 향해 휴거하는 저 고기들
바다 바람은 고기들을 구덕구덕 말리며
세상과의 안녕을 고하지만
바다와 고기와 완도항구는 하나의 풍경을 이루어 낸다.
모든 삶과 죽음이 윤회를 거듭하듯이…….
먼 우주
어딘가에서 지구를 향해 달려오다가
그물에 걸려 박제된 이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가여운 가오리를 보며
한참을 웃다가 또 한참을 고민했다.
정말 이티가 아닐까 하고…….
초여름의 보리는 참 곱다.
황금빛 머리채를 흔들어대며
바람과 한바탕 춤을 추고 난 들판으로
유월의 태양이 내린다.
섬에선 맥주보리도 저 홀로
익어가는 법을 알고 있다.
바다 향기에 취해 춤을 추다가
익다가 그렇게 자연이 되어 간다.
길 위에서 길을 찾아 떠난다.
황톳길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저 먼 곳으로의 그리움을 삭히지만
돌아갈 사람과 돌아올 사람들은 여전히
저 서편제 황톳길을 걸었을 것이다.
길 위의 길은 거기 늘 그렇게 있었을 것이므로…….
바다는
때때로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 놓다가도
어느새 구름과 바람으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는
저 먼 수평선 끝으로 사라져 버리곤 한다.
그래서 바다는 예측과 억측 사이에서
전설을 만들어 내고설화를 꿈꾸며
사람들의 환상의 중심에 서 있곤 한다.
혼자 떠난 여행은 그래서 즐겁다.
바다를 거닐다가 심심하면 조개껍질을 줍고
소라를 귀에 대면 바다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멀리 아주 먼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라껍질과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섬은 풍요롭다.
들판이 익어가는 소리가 풍요롭고
동글동글 내리는 햇살이 풍요롭고
그 들판을 내달리는 바람이 풍요롭다.
그래서 섬은 하나도 외롭지 않은데
사람들은 섬이 외롭다고 한다.
산책길에 소를 몰고 가는 할머니를 만났다.
저 소는 몇 살이나 되었을까 궁금했다.
내심 마음속으로 열 살 쯤 되지 않았을까
짐작하고 할머니에게 다가가 물어 보았다
‘삼년 지났지라’
오! 삼년밖에 지나지 않은
저 늠름한 소가 기특해서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기소가 기다리는지 바쁜 발걸음을 옮기는
어미 소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저녁 산책에서 돌아오며 만난 노을이
붉게 타다가 바다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바다로 달려가는 저 황토 언덕을 넘어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게으르고 만만하고 시시껄렁한
섬의 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자의 농담도 자연이 되는 청산도에서
나도 청산도가 되었는지 모른다.